[팀장 칼럼] 코스트코 핫도그가 37년째 2000원인 이유

김은영 기자 2022. 11. 24.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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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인상을 두고 다양한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가격을 유지하는 대신 제품의 크기나 용량을 줄여 파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가격이 올랐는데도 기존보다 품질이나 맛이 떨어지는 스킴플레이션(Skimpflation) 등이 그것이다.

최근엔 기업들의 탐욕으로 물가가 오른다는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탐욕을 의미하는 그리드(Greed)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고환율과 코로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핑계로 기업들이 가격을 과도하게 올려 인플레이션이 가팔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원자잿값이 오르면 소비자 가격이 오르는 건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이런 용어들이 계속 등장하는 걸 보면 가격 인상을 ‘공급자의 꼼수’라고 여기는 시각이 많은 듯하다. 공급망 불안이 발생하기 전부터 소비재 기업들이 용량을 줄이거나 가격을 높이는 일은 빈번했기 때문이다.

특히 식품업계에서 과대 포장은 늘 비난의 대상이었다. 오죽하면 “질소를 샀는데 과자가 덤으로 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2014년에는 이를 풍자하기 위해 한 대학생이 봉지 과자 160여 개를 이어 붙여 만든 뗏목을 타고 한강을 건너 화제를 모았다.

올해도 많은 식품업체가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햇반과 라면 등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는 간편식부터 식용유, 고추장, 과자, 유제품, 커피까지 오르지 않은 품목이 없다.

그 결과 대부분 식품업체는 3분기 매출이 두 자릿수 증가했다. CJ제일제당과 SPC삼립, 오리온, 빙그레, 하이트진로 등은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최대 67% 늘었다.

오뚜기, 동원F&B, 농심 등은 가격을 올렸지만, 고환율과 생산 비용의 상승으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소비자에게 전가한 가격 인상의 부담이 결국 기업의 이익으로 돌아올 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를 보는 소비자들의 시선은 탐탁지 않다. 특히 초코파이, 신라면, 불닭볶음면 등 수십 년간 시장을 지배하고, ‘K-푸드 아이콘’으로 대접 받는 제품들이 가격을 올리고 용량을 줄여가는 모습은 비겁해 보이기까지 하다.

한 소비자는 “오랜 시간 국민에게 사랑받으며 규모의 경제를 이룬 유명 제품이 공급망 문제로 흔들릴 정도면, 회사가 경영을 잘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격 인상을 당연하게 여기는 기업들의 태도도 아쉽다. 슬쩍 가격을 올린 후 이유를 물으면 “공급망 문제로 불가피하게 가격을 인상하게 됐다”는 변명만 되풀이 하니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2016년 일본 아이스크림 업체 아카기유업은 국민 아이스크림이라 불리는 ‘가리가리군’의 가격을 10엔(당시 약 100원) 올리면서 대대적인 사죄 광고를 냈다. 이노우에 히데키 회장은 “25년간 버텼지만 어쩔 수 없었다”라며 직원 수십 명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일각에선 그 광고비면 가격을 안 올리겠다고 비난했지만, 대다수 소비자는 “오죽하면 그랬을까”라며 회사를 옹호했다. 가격이 인상된 가리가리군의 판매도 늘었다.

브랜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가격을 고수하는 곳도 있다.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는 푸드코트에서 판매하는 핫도그 가격을 37년째 1.5불(약 2000원)로 유지하고 있다. 리처드 갤런티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9월 한 인터뷰에서 “죽어도 핫도그 가격은 못 올린다”라고 말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핫도그 가격을 지키는 이유는 좋은 물건을 가장 싸게 공급하겠다는 코스트코의 철학을 지키기 위해서다.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인플레이션 시대. 환율이 내려가고 원자재 가격이 안정되면 기업들이 다시 가격을 내릴 거라고 기대하는 순진한 이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소비재 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는 얕다. 기록적인 물가 상승으로 많은 유통·제조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가격 인상만이 능사인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김은영 생활경제부 채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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