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않는 죽음들[메디칼럼](21)

2022. 11. 24.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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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단어, 또는 죽어가는 과정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격리돼 있어 늘 낯설게 느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의사, 그중에서도 장기이식을 하는 외과의사이기 때문에 죽음을 자주 대한다. 내가 보는 죽음은 대개 어떤 의미에서 비슷하다. 여러 이유로 뇌사에 빠진 사람들, 또는 수술 후 회복하지 못하고 중환자실에서 연명치료를 받다가 포기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중환자실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이는 사랑하는 가족이 보는 앞에서 이별하는 경우는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매우 드물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가족과 대화하며 죽음 맞은 간암환자 약 15년 전, 외과 전공의 과정에 있을 때의 일이다. 당시 근무지는 간이식을 활발히 하는 병원이었다. 간이식 파트에서 순환근무하던 3년차 레지던트의 주된 업무는 어떻게든 간이식 환자를 많이 확보하는 일이었다. 40대 남자 환자가 혹시 간이식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응급실에 왔다. 환자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다. 다른 병원에서 찍은 CT상 간경화가 심해보였다. 간이식을 하는 교수님 이름으로 입원시켜 얼른 검사를 했다. 조영제를 넣지 않은 CT에서는 간경화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조영제를 넣은 CT로 자세히 보니 간세포암 또는 간내담관암이 간 전체에 퍼져 있었다. 마치 간경화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간이식은 전혀 시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담당 교수님도 환자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기에 그 환자의 치료는 오롯이 내 몫이 됐다. 금방이라도 돌아가실 것 같았기에 퇴원시킬 수도 없었다. 병실도 없어 병동의 치료실 한구석에 환자 침대를 둘 수밖에 없었다. 환자분은 정신이 또렷했다. 상황을 설명하자 이해를 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환자의 상태가 더욱더 나빠졌다. 아내분과 자녀들이 남편이자 아버지 옆을 지키고 있었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환자와 대화를 했다. “여보, 천국에서 만나자. 나도 금방 따라갈게.” “아빠 사랑해요” 마지막까지 그렇게 가족과 대화하면서 돌아가신 분은 그때 처음 봤다. 비록 제대로 된 병실도 드리지 못했고, 너무 바쁜 스케줄에 몇 번 찾아뵙지도 못했지만, 그 환자의 임종 과정만큼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평안해보였던 에티오피아 교민의 시신 외과 전문의가 되고 나서 군의관으로 가는 대신 국제협력의사를 지원해 에티오피아에서 2년 반 동안 근무했다. 에티오피아의 공립병원에서 근무한 지 몇개월 되지 않아 한국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다. 교민 한분이 에티오피아의 시골에서 교통사고 후에 사망했다고 했다. 대사관 직원분과 같이 가서 어떻게 돌아가신 건지 상황파악을 해줄 수 있겠냐는 요청이었다. 국제협력의사는 외교부 소속이라 어떻게 보면 명령 같기도 했다. 그다음날 아침 일찍 대사관의 랜드크루저를 타고 ‘데브라 마르코스’라는 에티오피아의 작은 도시로 출발했다. 10시간 이상 차를 타고 가 데브라 마르코스에 도착했다.

그날은 근처 호텔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일찍 시신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가서 고인을 담당했던 의사들과 면담하고 차트를 확인했다. 시신을 검시하기 위해 시신을 안치해둔 곳으로 갔다. 냉동창고 같은 곳은 없었다. 워낙 건조한 곳이었다. 그냥 어떤 가건물 같은 공간의 한 곳에 시신을 보관하고 있었다. 시신을 좀 보자고 하자 의과대학생들 몇명이 시신이 있는 관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말이 관이지 거의 나무로 만든 상자처럼 보였다. 관을 열고 시신을 보니, 표정은 매우 평안해 보였다. 특별한 외상의 흔적도 없었다. 흉관을 삽입한 흔적이 있었고, 몸이 약간 부어 있다는 점 말고는 특이사항이 없었다. 어두컴컴한 시체안치실이 아닌 적도에 가까운 에티오피아의 강렬한 태양 아래 누워 있는 시신의 검시는 뭔가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그렇다고 그리 무섭거나 기괴한 장면도 아니었다. 검시를 끝내고 다시 수도인 아디스아바바로 돌아와 보고서를 작성했다.

“구역질 이후에 호흡곤란 및 흉통이 악화됐다는 점, 가래의 양이 많고 점성이 증가했다는 점, 열이 발생했다는 점, 담당의 중 한명이 흡인성 폐렴을 의심했다는 점, 증상 발생 이후 급격히 증상이 악화돼 고인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점에서 흡인성 폐렴을 포함하는 급성 폐렴이 직접적인 사인일 수 있음./ 또 다른 가능성으로 시신의 얼굴이 부어 있고, 들어간 수액의 양과 소변량이 확인되지 않는 점으로 보아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과도한 수액 공급에 의한 폐부종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음./ 시신의 가슴에 있는 흉관 삽입부의 상처와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흉관 삽입 시술은 적절했고, 흉관 삽입이 직접적인 사인과 관련된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음.”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고인은 60년 이후에 에티오피아의 시골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하리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죽음은 언제 어디서나 불쑥 찾아올 수도 있는 불청객이다.

성대한 파티도 깨지 못한 ‘죽은 이의 평화’ 캐서린 맨스필드라는 미국 작가가 쓴 ‘가든파티’라는 단편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어느 부잣집에서 초여름의 한없이 맑고 상쾌한 아침에 가든파티를 예년처럼 여는데, 아랫동네 가난한 마을의 마차꾼이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주인공인 로라는 감수성이 풍부한 10대 소녀였다. 가까운 곳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가든파티 개최는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럴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한 가족은 성대한 가든파티를 치른다. 파티가 끝난 후 로라는 남은 음식을 들고 상갓집을 방문한다. 화려한 파티복을 입은 채 상갓집에 가는 게 마음에 걸린 로라는 음식만 놓고 도망치듯 돌아오고 싶었으나, 유가족들의 권유로 침대에 누워 있는 죽은 사람을 보게 된다. 이 세상을 떠난 그 사람은 아주 평화로운 자태로 다시는 깨지 않을 꿈을 꾸고 있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떠난, 죽은 이의 평화를 깰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든파티의 시끄러운 음악도, 맛있는 음식도 이제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부잣집의 귀한 딸 로라는 살아 있는 것, 그것도 풍족하게 사는 일이 더 우월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했지만, 죽은 사람을 본 후 진정한 평화는 죽음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았을까.

죽음을 터부시하고 마치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은 너무나 충격적이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걸 망각하고 살 뿐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지금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한다는 것은 언제나 진리인 듯하다.

최병현 양산부산대병원 간담췌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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