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웨이 일색 공연장은 그만…피아노들의 ‘전쟁’

임석규 2022. 11. 2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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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예술의전당 음악당에 있는 피아노 12대는 모두 스타인웨이(D274)다.

국내 대표적 클래식 공연장 피아노가 스타인웨이 일색인 것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스타인웨이는 '전세계 프로 피아니스트의 97%가 선택하는 피아노'라고 자랑한다.

"피아노마다 지닌 고유한 소리 색깔이 있어요. 청중이나 연주자가 여러 음색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게 좋지요." 최 감독은 "스타인웨이가 정말 뛰어난 악기지만 국내 공연장은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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뵈젠도르퍼·야마하·파치올리 등 도전장
피아니스트 임현정이 지난 15일 오스트리아 피아노 뵈젠도르퍼(280VC)와 일본 야마하(CFX) 그랜드피아노를 각각 연주한 뒤 소리의 특질을 설명하고 있다. 야마하코리아 제공

#1. 조붓한 공연장에 2대의 그랜드피아노가 나란히 놓여 있다. 일본 야마하(CFX)와 오스트리아 뵈젠도르퍼(280VC), 2억~3억원을 호가하는 고급 피아노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이 두 피아노를 번갈아 연주하고 소리에 대한 느낌을 얘기했다. 야마하뮤직코리아가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야마하홀에서 진행한 두 피아노 시연 행사였다. 먼저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과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화 <시네마 천국> 주제곡을 연주했다. “‘시네마 천국’ 같은 멜랑콜리하면서도 향수가 담긴 선율, 순수하고 애틋한 멜로디는 뵈젠도르퍼로 연주하면 천상의 소리가 나와요. 라흐마니노프 광시곡은 오케스트라의 크고 웅장하면서 풍부한 소리를 내야 하는데 여기엔 야마하가 좋았어요.”

임현정은 이어 가브리엘 포레의 ‘꿈을 꾼 후에’를 뵈젠도르퍼로 연주했다. “깨끗하고 순수한 멜로디 라인과 신비하면서도 비현실적인 반주가 공존하는 곡인데, 뵈젠도르퍼는 이걸 거뜬히 해내네요.” 다음엔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가운데 ‘사랑의 죽음’. “죽음의 드라마를 표현해야 하는 곡엔 야마하가 더 어울려요. 야마하에선 경험 많고 고생도 많이 해본 어른의 소리가 나와요.” 임현정은 “어디까지나 개인적 소감”이라면서도 “피아노도 저마다의 특질이 있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언드라시 시프는 지난 6일 롯데콘서트홀 리사이틀에서 오스트리아 피아노 뵈젠도르퍼를 대여해 연주했다. 야마하코리아 제공

#2. 지난 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언드라시 시프의 리사이틀. 무대에 뵈젠도르퍼(280VC)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시프의 요구에 따라 미리 대여해 준비한 피아노다. ‘피아니스트들의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이 거장은 뵈젠도르퍼를 애용한다. 장장 4시간에 이른 이날 공연은 설명을 곁들인 ‘렉처 콘서트’였는데, ‘칸타빌레’(노래하는 듯이)가 열쇳말이었다. 그는 “모든 악기는 인간 목소리를 닮도록 애써야 한다”고 했다. 뵈젠도르퍼야말로 ‘노래하는 악기’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건반 반응이 즉각적이면서 정교해요. 공명은 놀랍도록 따뜻하고 투명합니다.”

그렇다고 그가 이 악기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바흐를 연주할 땐 스타인웨이를 더 많이 사용한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 음반에서도 곡의 성격에 따라 스타인웨이와 뵈젠도르퍼를 나눠 연주했다. “뵈젠도르퍼는 고음역에서 스타인웨이만큼 울림의 반향이 짱짱하지는 않아요. 음색이 전체 음역에 고르게 평준화되어 있지도 않고요. 스타인웨이가 산문적이라면 뵈젠도르퍼의 음색은 시적입니다.” 시프는 스타인웨이를 표준어, 뵈젠도르퍼를 사투리에 비유하기도 했다.

서울 예술의전당이 12대 보유하고 있는 그랜드피아노 스타인웨이 D274. 한국스타인웨이 제공

서울 예술의전당 음악당에 있는 피아노 12대는 모두 스타인웨이(D274)다. 롯데콘서트홀에 있는 피아노 4대도 스타인웨이다. 국내 대표적 클래식 공연장 피아노가 스타인웨이 일색인 것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스타인웨이는 ‘전세계 프로 피아니스트의 97%가 선택하는 피아노’라고 자랑한다. 물론 스타인웨이는 자타가 공인하는 탁월한 피아노다. 하지만 스타인웨이의 ‘무대 독점’이 소리의 표준화, 음악의 다양성 상실로 이어질 위험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콩쿠르를 비판하며 획일화된 음악을 거부해온 시프가 뵈젠도르퍼에 주목하는 데엔 이를 경고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피아노가 연주장에서 공존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미하일 플레트네프는 6년 동안 피아노 앞에 앉지 않았는데, “현대 피아노의 음질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일본 제품 ‘가와이 시게루’ 피아노를 통해 ‘다른 소리’를 접한 뒤에야 피아노 연주를 재개했다.

오스트리아 뵈젠도르퍼 피아노. 야먀하뮤직코리아 제공

피아노는 민감한 악기다. 같은 브랜드, 동일한 모델의 피아노라도 부품 마모 정도에 따라 조금씩 다른 소리가 난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마음에 드는 피아노를 만나는 일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도 훨씬 드문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톤마이스터’ 최진 감독은 ‘피아노 음색의 다양성’을 강조한다. “피아노마다 지닌 고유한 소리 색깔이 있어요. 청중이나 연주자가 여러 음색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게 좋지요.” 최 감독은 “스타인웨이가 정말 뛰어난 악기지만 국내 공연장은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아쉬워했다. 피아니스트 조은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스타인웨이를 선호한다”면서도 “모든 콘서트홀의 피아노가 다 스타인웨이일 필요는 없다. 가능하다면 연주자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피아노 브랜드들의 각축장’이 된 명성 있는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도 스타인웨이의 압도적 우위가 미세하게 흔들릴 조짐이 보인다. 스타인웨이, 야마하, 가와이, 뵈젠도르퍼, 베히슈타인, 파치올리 등의 브랜드가 저마다 자사 제작 피아노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물밑에서 전투라도 치르듯 경쟁한다. 우승 가능성 있는 연주자가 자사 브랜드를 채택하도록 ‘특수임무’를 부여받은 팀(AR·Artist Team)을 꾸리기도 한다. 유망한 연주자에겐 최고 음향 전문가를 지원하고, 연주 기회 등 각종 편의도 아끼지 않는다.

이탈리아 파치올리 피아노. 누리집 갈무리

스타인웨이의 아성이 여전하지만, 야마하를 필두로 다른 피아노 브랜드들의 도전도 만만찮다. 지난해 쇼팽 콩쿠르 우승자 브루스 리우가 연주한 피아노는 이탈리아 브랜드 파치올리였다. 3위, 5위 연주자도 이 피아노를 선택하면서 ‘파치올리의 우승’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요즘 ‘가장 핫한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다닐 트리포노프도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 당시 파치올리로 연주했다. 강력한 타건의 보리스 베레좁스키, 탁월한 바흐 연주자 앤절라 휴잇도 파치올리를 사랑한다. 2010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 율리아나 아브제예바(율리안나 아브데예바)는 야마하 피아노로 연주했다. 빌헬름 바크하우스, 프리드리히 굴다, 파울 바두라스코다, 앙드레 프레빈, 발렌티나 리시차 등은 뵈젠도르퍼를 즐겨 연주했다. 국내에선 정명훈, 최희연, 김정원 등이 뵈젠도르퍼를 애용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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