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 이야기] 종이 위의 극장 같은 '케이러의 세계지도'

최선웅 2022. 11.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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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피터르 판덴 케이러가 제작한 세계지도(출처: Courtesy of Sutro Library, California State Library).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립 대학교 캠퍼스 내에 위치한 수트로 도서관Sutro Library에는 17세기 초의 초대형 세계지도 한 점이 소장되어 있다. 이 세계지도는 샌프란시스코 시장을 지낸 기업가이자 자선가인 아돌프 수트로Adolph Sutro가 19세기 후반에 유럽의 어딘가에서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이상의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다. 수트로 도서관이 현 위치로 이전하기 전까지 이 세계지도는 도서관 복도 후미진 곳에 걸려 있었으나, 지금은 최상의 상태로 보관되어 있다.

네덜란드 판덴 케이러가 제작

이 세계지도는 네덜란드 지도제작의 황금시대에 지도제작자 피터르 판덴 케이러Pieter van den Keere에 의해 제작되었다. 판덴 케이러는 1571년 지금의 벨기에 헨트Ghent에서 금속활자를 만드는 펀치커터punchcutter인 헨드릭 판덴 케이러Hendrik van den Keere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나이 13세 때인 1584년에는 네덜란드 독립전쟁(80년 전쟁)으로 헨트가 스페인에 점령당하자 많은 개신교 신자들과 함께 영국 런던으로 피신했다. 이때 유명한 지도제작인 요도쿠스 혼디우스Jodocus Hondius도 함께 갔다.

런던에 체재하는 동안 그의 누이 콜레트 판덴 케이러Colette van den Keere는 요도쿠스 혼디우스와 결혼해서 자연스럽게 판덴 케이러는 매형인 혼디우스에게 동판조각과 지도제작을 배우게 되었다. 9년 뒤인 1593년 네덜란드가 평온을 되찾자 판덴 케이러는 혼디우스와 함께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다. 판덴 케이러는 1599년 헨트 출신의 안나 부르츠Anna Burts와 결혼하고, 1609년부터 판화 활동과 출판을 시작했다. 그 뒤 1623년에 아내가 죽자, 호른Hoorn 출신의 미망인 안나 위넨스 판 헨트Anna Winnens van Gent와 재혼했다.

이 시기에 판덴 케이러는 네덜란드의 아틀라스와 혼디우스가 출판한 작은 지도용 동판을 비롯해 수많은 판화를 제작했다. 특히 1617년에 출간된 <저지 게르마니아Germania Inferior>는 네덜란드 최초의 아틀라스이다. 그가 제작한 지도는 대부분 낱장 지도이거나 사본만 남아 있지만, 그는 종종 유명 지도제작자들을 위해 지도를 제작하는 일도 있었다. 유명한 지도로는 영국 왕립지리학회Royal Geographical Society에 소장되어 있는 1608년 판 요도쿠스 혼디우스의 메르카토르 도법 세계지도이다.

판덴 케이러가 1611년에 제작한 세계지도는 1980년,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귄터 쉴데르Günter Schilder 박사가 복제판을 작성하고, 미술사학자 제임스 웰루James Welu가 지도에 대한 상징성과 장식에 대해 집필한 <The world map of 1611 by Pieter van den Keere>가 출판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세계지도의 제목은 '최고의 작가들로부터 가져온 새로운 세계지도'라고 번역되는 'Nova totius orbis mappa ex optimus auctoribus desumta'이다. 지도의 크기는 가로 197cmㆍ세로 126cm로 장대해 8장의 시트로 나눠 제작하고, 좌ㆍ우단에 있는 인물 장식화를 따로 4장으로 제작해 총 12시트를 각각 인쇄한 뒤 연접하고 배접했다.

요도쿠스 혼디우스의 지도와 유사

지도는 당시 유행하던 양반구형으로, 그 형식과 지형적인 표현은 놀랍게도 1611년 같은 해에 제작된 요도쿠스 혼디우스의 세계지도와 매우 유사하다. 대양에는 방위반과 함께 항정선rhumb line이 교차하며, 빈 곳에는 각종 선박과 해양괴물 등이 그려져 있다. 북아메리카에 캘리포니아는 반도로 표시되고, 영국의 탐험항해가 헨리 허드슨Henry Hudson이 항해한 정보가 나타나 있다. 남아메리카 남단에는 마젤란해협만 그려져 있고, 최남단에는 미지의 대륙의 일부분인 '마젤란의 땅Magallanika'이 그려져 있다.

동반구 북쪽에는 네덜란드가 인도양 항로보다 짧은 북극항로 개척을 위해 1594년 빌렘 바렌츠Willem Barentsz가 탐사에 나서면서 도달한 노바야제믈랴섬Novaya Zemlya이 그려져 있다. 아시아 동쪽의 지리정보도 매우 정확해졌으나, 조선은 여전히 'Corea Insula'라고 섬으로 표시되어 있다. 또한 1545년 스페인의 탐험가 이뇨고 오르티스 드 레테스Yñigo Ortiz de Retez가 처음 상륙하면서 이름 지은 '뉴기니Nueva Guinea'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연결되어 있다.

지도 내에는 풍부한 상상력으로 장식된 카르투슈cartouche와 상징적인 그림이 다수 그려져 있고, 양반구의 가장자리는 물론 지도를 둘러싸고 세계 각지의 인물과 도시, 풍경을 그린 40개의 그림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어 마치 종이 위의 극장을 방불케 한다. 테두리의 장식화는 동판을 부식시키는 에칭Etching 기법에 의한 것으로 조각가 클라에스 얀스 비셔르Claes Jansz Visscher의 작품이다. 양반구 사이 위쪽 그림 아시아 쪽에 그의 사인이 있다.

북아메리카에 있는 카르투슈에는 마젤란을 중심으로, 왼쪽에 아메리고 베스푸치, 오른쪽에 콜럼버스가 지도를 펼쳐 놓고 얘기를 나누고 있다. 남태평양에 그려진 큰 우의화寓意畵는 1609년에 스페인과 네덜란드 사이에 협정된 휴전을 암시하는 것으로, 평화의 상징은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 정의의 상징은 전쟁을 쇠사슬로 묶고 있다. 하단 네 곳의 카르투슈는 실수인지 아니면 미완성인지 텍스트가 없이 비어 있다.

인도양 남쪽에 그려진 가장 큰 삽화는 커다란 천구의를 중심으로 천문학자와 지도제작자 8명과 천체의 고도를 측정하는 직각기cross staff를 든 천사 같은 전사戰士가 그려져 있다.

천구의 오른쪽이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Tycho Brahe이고, 그 옆에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Abraham Ortelius는 앉아서 책을 읽고, 철학자 프로클루스Proclus는 어깨 너머로 보고 있다. 천구의 왼쪽에는 아르키메데스Archimedes가 지구의를 측정하고 있는 프톨레마이오스를 보고 있고, 유클리드Euclides와 메르카토르는 아틀라스를 보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리고 원주의circumferentor를 보고 있는 사람은 스페인의 왕 알폰수스Alphonsus Rex Hispanes이다. 이 삽화 오른쪽에는 삶과 일이 죽음의 형상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바니타스화Vanitas가 그려져 있다.

17세기 문화적 아이콘

또한 양반구 외곽에는 4대륙을 의미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위쪽 가운데가 유럽이고, 오른쪽이 아시아, 왼쪽이 멕시코인Mexicana이다. 그리고 아래쪽 우측은 아프리카이고, 가운데가 미지의 남방대륙인 마갈라니카, 좌측은 페루인Peruviana이다. 바깥쪽 테두리의 그림은 설명이 필요하거나 그렇지 않은 것도 있는데, 위쪽 3개의 큰 그림은 스페인의 왕과 여왕Rex et Regina Hispaniae, 로마의 황제Imperator Romanorum, 프랑스의 왕과 왕의 어머니Rex Gallia et Mater Reg이고, 아래쪽 3개의 큰 그림은 잉글랜드ㆍ스코틀랜드ㆍ프랑스ㆍ아일랜드의 왕Magnae Brit. Gal. et Hib. et Reg., 신비로운 연금술적인 튀르키예인들Rex Magorum.,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과 왕비Rex et Regina Daniae et Norw. 등이다.

1994년 출판된 피터 휘트필드Peter Whitfield의 저서 <The Image of the World : 20 Centuries of World Maps>에 "이 지도는 장식이 실질보다 앞서 결국 이국적인 화물의 무게로 침몰하는 배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이 지도는 암스테르담의 상인이 여가시간에 지구상의 왕, 도시, 사람들을 자유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든 사실상 세계의 종이 극장이다. 중세의 마파문디와 같이 당시의 지식과 가치관에 의해 해석된 세계의 이미지이자 문화적 아이콘이다"라고 평했다. 판덴 케이러는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은 판화만을 판매하다가 1630년 60세의 나이로 고향 헨트에서 사망했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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