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업·고용 막는 세계 최악 상속세 고치는 게 왜 ‘부자 감세’인가

조선일보 2022. 11. 24.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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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기획재정부

중소기업중앙회 등 13개 경제단체가 기업 상속 때 상속세 감면 혜택을 확대하는 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상속세 감면 대상을 넓히고 공제 세액도 늘리는 법안에 대해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부자 감세’라며 가로막자 여론에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15%보다 3배 이상 높다. 스웨덴·노르웨이처럼 상속세가 아예 없는 OECD 회원국도 15국에 이른다. 게다가 우리는 최대 주주에 대해 세금을 20% 할증까지 하고 있어 실질 부담 세율은 최대 60%까지 올라간다. 상속세를 세 번 내면 경영권이 사라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외국 언론이 “한국의 고율 상속세가 기업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다.

한국에도 자식이 가업을 승계할 경우 상속세를 깎아주는 제도가 있다. 하지만 가업 상속 후 7년 이상 업종·고용·자산·지분을 유지해야 상속 재산 중 200억~500억원을 과세 대상에서 빼주는 정도의 세제 혜택을 주는 게 전부다. 요건이 너무 까다롭고 혜택도 적어 이 제도를 이용하는 기업인이 연간 100명 남짓에 불과하다. 가업 승계를 포기하고 팔아 치우거나 꼼수·편법의 우회로를 찾다 기업과 개인을 망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독일·일본 등은 후세 기업인이 상속 후 사업을 5~7년만 유지하면 상속세를 전액 면제·유예해주고, 업종 변경 제한도 두지 않아 활발한 가업 승계가 이뤄지고 있다. 독일에선 연간 2만8000여 개, 일본에선 2900여 개 기업이 상속 공제 제도를 활용할 정도로 활성화돼 있다. 일본은 1947~49년 출생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에 따른 가업 단절을 막기 위해 2027년까지 한시적으로 상속세 100% 납부 유예, 공제 한도 폐지 등 파격적 지원책을 가동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일자리 창출,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상속세 부담을 낮춰달라는 기업계 호소를 수용해 가업 승계 공제 적용 대상을 연 매출 4000억원 미만에서 1조원 미만 기업으로 확대하고, 최대 공제 한도도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늘리는 상속세법 개편안을 마련했다. 업종 변경 금지와 고용·임금 유지 요건도 완화해주기로 했다. 이렇게 고쳐도 경쟁국보다 한참 불리한데 민주당은 이것마저 안 된다며 국회 통과를 거부하고 있다.

기업 상속세 완화는 부자 특혜가 아니라 글로벌 표준에 가깝게 조정해 기업 단절을 막자는 것이다. 50년 이상 장수 기업은 매출·이익·고용 창출 등 경영 성과 지표가 비(非)장수 기업보다 30배 이상 우량하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일본은 100년 이상 장수 기업을 3만3000개, 독일은 4900개 이상 갖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 7개뿐이다. ‘폭탄’ 수준의 상속세를 개혁해야 장수 기업이 늘어나고, 세대 간 기술·자본 이전을 촉진해 경제성장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그래야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늘릴 수 있다. 이 기업과 근로자가 내는 세금이 상속세의 몇 배에 이를 것이다. 세계 최악 기업 상속세는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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