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유엔 안보리

이용수 논설위원 2022. 11. 24.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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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외교관들은 불법이 일상이다. 대사관 운영비와 충성 자금 상납액을 위해 마약·위조지폐 유통을 한다. 아프리카에선 코끼리뿔, 상아를 외교 행낭으로 운반하다 적발되는 일이 다반사다. 이 스트레스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북한 공관이 유엔 본부가 있는 뉴욕이다. 평양에서 생활비를 어느 정도 챙겨준다. 차마 미국 땅에서 불법을 저지르라고는 못 하는 것이다.

지난 8월 11일(현지 시각)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긴급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945년 유엔 창설 당시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중화민국(대만)이었다. 중화민국은 공산당과 전쟁에 져 1949년 대만으로 쫓겨간 뒤에도 이 지위를 유지했다. 소련은 이게 불만이었다. 1950년 1월 중화민국 축출 결의안이 부결되자 안보리 회의 불참을 선언했다. 5개월 뒤 북한이 남침했다. 안보리는 유엔군 한국 파병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소련의 안보리 불참이 없었다면, 중화민국이 상임이사국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 유엔 회원국도 아니면서 1970년대까지 유엔 창설일을 국경일로 지켰다. 북한은 1991년 한국과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다. 줄기차게 가입 신청서를 낸 한국과 달리 북한은 한동안 ‘고려연방공화국’이란 국호로 가입하겠다고 버텼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로 소련·중국이 한국과 수교하자 위기감을 느낀 북은 마지못해 동시 가입을 택했다.

/일러스트=양진경

▶6·25 전쟁 이후 유엔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미·소의 극한 대치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소련 붕괴 이후 평화 유지 활동의 길이 열렸지만 미숙한 대처로 소말리아, 보스니아, 르완다에서 대량 학살을 막지 못했다.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보호책임 원칙’(R2P)을 도입했다. 특정국이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르면 주권을 무시하고 국제사회가 개입한다는 원칙이다. 2005년 유엔 정상회의에서 채택돼 2007년 케냐 인종 학살, 2011년 리비아 내전 등에 유엔이 개입하는 명분이 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안보리 무용론이 거세다. 평화 수호 의무를 진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침략자로 돌변해 안보리의 개입을 봉쇄했다. 유엔은 2차 대전 참상에 대한 반성이 낳은 결과물이다. ‘더 이상 힘으로 국경선을 바꿔선 안 된다’는 것이 기본 정신이다. 그런데 상임이사국이 힘으로 국경선을 바꾸려 다른 나라를 침략했다. 그런 러시아와 중국은 자신들이 찬성한 안보리 결의를 북한이 올해에만 63차례나 위반했는데도 북을 감싸고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안보리의 권능을 스스로 짓밟는다. 유엔 역사가 80년이 다 돼간다. 100년을 맞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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