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질환을 앓은 후… 화가는 섬세했던 붓터치를 잃었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2022. 11. 2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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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속 의학] [37] 에드가르 드가
드가가 시력을 잃기 전에 그린〈목욕 후 빗질하는 여인·왼쪽〉에서는 몸동작이 세밀하고 선명하게 묘사되어 있다. 시력을 잃고 그린〈목욕 후 머리 말리는 여인·오른쪽〉에서는 동작 선이 두루뭉술하다. /러시아 에르미타시 미술관 소장

프랑스 인상파 화가 에드가르 드가(1834~1917년)는 발레 무용수들의 춤 동작과 목욕하는 여인을 즐겨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그는 움직임을 묘사하는 데 뛰어난 데생 화가였다. 이를 통해 인간의 복잡한 심리와 외로움을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드가는 36세에 프로이센 프랑스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격연습 중 오른쪽 눈 시력 저하를 느낀다. 이후 왼쪽 눈 시력도 점차 잃어 갔다. 드가의 시력에 대한 안과 학술지 연구에 따르면, 드가 초기 작품에서는 미세한 그림자, 섬세한 얼굴 표정, 근육 움직임 등이 표현되었으나, 후기로 가면서 시력 저하로 거친 검은색 윤곽과 다소 굵은 그림자 라인들이 화폭을 차지했다고 분석한다.

조희윤 한양대구리병원 안과 교수는 “드가는 유전성 망막질환이나 망막 중심부 황반 질환을 앓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중심 시력의 저하를 초래하기 때문에 보고자 하는 중심부의 형태가 왜곡되거나 흐려지게 된다”고 말했다. 황반부가 손상되면 대부분 눈부심을 심하게 느끼며, 색각 이상도 온다. 조희윤 교수는 “그런 증세로 드가는 주로 실내 침침한 조명 아래서 그림 작업을 했다”며 “황반 변성은 빛을 감지할 수 있는 세포인 황반부의 광수용체들이 빛을 볼 수 없는 흉터 조직으로 변한 상태”라고 말했다.

요즘은 눈동자 안으로 조명을 비추어 안저 사진 촬영을 하고, 망막에 섬광을 주어 유발되는 전위를 살펴보는 망막 전위도 검사 등을 통해 망막 질환을 정확히 진단할 수 있다. 난치성 질환인 황반 변성에 최근에는 유전자치료, 줄기세포치료 등이 시도되어 일부 시력 회복 효과를 보고 있다.

드가가 살던 당시에는 뚜렷한 진단과 치료가 없었기에 젊어서부터 찾아온 어둠의 생활에 그는 절망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죽을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그림에 매달렸으니, 화가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태어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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