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불운이 불행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한 노력들

기자 2022. 11. 2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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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4년, 스코틀랜드의 목사였던 알렉산더 웹스터와 로버트 윌리스에게는 고민이 있었다. 그것은 안타깝게 먼저 떠난 동료 목사들의 가족들 생계에 대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그다지 부유한 편이 아니었고 여성의 사회적 참여도가 매우 제한되던 시기였기에,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사고로 한 집안의 가장인 목사가 하늘의 부름을 받게 되면, 남은 가족들의 삶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가장을 잃은 목사의 가족들에게 최소한 삶의 안정성을 보장해주려면 기금이 필요했다. 이들의 주장은 매우 이상적이었고, 방식도 합리적이었으나, 여전히 현실적 문제가 남아 있었다. 남은 가족에게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주려면, 다달이 얼마나 기금에 적립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였다. 불입금이 너무 높으면 당장의 생활이 어려워지니 가입률이 떨어질 테고, 너무 낮으면 나중에 돌려받는 돈도 보잘것없을 테니 기금의 취지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도대체 얼마를 적립해야 가장 적절할 것인가.

이은희 과학저술가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뜻이 아무리 이상적이라도 구체적인 사안들을 꼼꼼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들은 바로 그렇게 행동했다. 그들은 이 난제의 해답을 영적인 조언자가 아니라, 현실의 학자에게서 구했던 것이다. 그들이 찾아간 사람은 에든버러대학의 수학 교수 콜리 매클로린이었다. 두 목사의 고민을 들은 매클로린 교수는 그들에게 ‘핼리의 생명표(Halley’s Life Table)’에 따른 해결책을 제시한다. 핼리의 생명표란, 1693년 영국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가 독일의 한 도시 거주민들의 출생 기록과 사망 기록을 분석해 찾아낸 것으로, 각 연령에 따른 사망 가능성에 대한 통계치였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사망 가능성이 늘어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핼리의 생명표에는 각 나이 대에 따른 구체적 사망 가능성이 실질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들은 스코틀랜드 전체 목사의 수와 연평균 사망하는 목사의 수, 이에 따라 남겨지는 과부와 미성년 자녀들의 수, 과부가 재혼하기까지 걸리는 기간 등 다양한 변수들을 대입해 적절한 적립 금액을 계산해내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 계산 결과에 따른 예측 금액과 훗날 기금의 실질적 운영 액수는 거의 일치했고, 이 기금은 남편과 아버지를 잃고 가난의 고통까지 겪어야 했던 목사의 가족들이 슬픔을 이겨내고 세상을 살아가는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근대 이전, 우리에게 세상은 삶의 터전이자 죽음의 각축장이었다. 반복되는 자연재해 앞에 인간은 속수무책이었고, 질병과 기아와 사고는 늘 끊이지 않았다. 사람은 아주 사소한 일로도 죽을 수 있었고, 태어난 아이가 어른으로 무사히 자라나 자신의 아이를 키워내는 비율은 둘에 하나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고, 그랬기에 그저 이 모든 위험들을 ‘불운’으로 여기고 견디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운명의 신이 변덕을 부려서, 행운의 신이 손길을 내밀어주지 않아서 찾아오는 불운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 수학과 과학의 발전은 그저 받아들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삶의 ‘불운’을 어쩌면 통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심어주게 된다. 가장의 죽음은 불운한 일이지만, 적절한 계산을 통해 기금을 마련하면 남은 가족들의 삶은 덜 불행해진다. 대서양을 건너는 배가 폭풍우를 만날 불운은 피해갈 수 없을지 몰라도, 보험을 들어두면 전 재산을 일순간에 날리는 불행은 막을 수 있다. 이처럼 불운으로 인한 불행의 정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위험의 정도를 측정하고, 이에 따른 이해득실을 계산하며, 위험의 원인을 파악해 발생할 확률을 예측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측정과 계산과 인과관계 파악과 확률 계산을 하기 위해서는 이성에 바탕을 둔 과학적 사고 방식과 확률적 예측 이론이 필요하다. 그래서 혹자는 근대인은 과학과 이성을 바탕으로, 불운을 벗어나 위험을 ‘발명’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불운은 손댈 수 없는 종류의 것이지만, 위험은 적절한 대비를 통해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과학이 우리에게 준 것 중 하나는 미래의 위험을 측정하고 계산하고 예측하여 미리 대비한다는 안도감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과학 역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기도 했고, 발달한 과학 그 자체가 새로운 위협이 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위험에 대한 과학적 접근법은 이를 조절하는 가장 유용한 수단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유용성에 너무 익숙해져 측정과 계산과 예측과 대비를 소홀히 하는 순간, 인류가 오랫동안 쌓아온 안정적 시스템은 다시금 무너질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어떤 불행이 닥칠지, 어떤 불운한 운명이 덮칠지 알 수 없는 그 시대로 말이다.

이은희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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