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사람들은 여기 안오지예” 전통시장 200곳이 닫았다

강다은 기자 2022. 11. 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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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시장은 골목 안 100여 점포 중 30여 곳이 문을 닫았거나 공실이었다. 시장 초입 식당 몇 곳을 빼면 대부분 매장엔 손님이 없었고, ‘임대 문의’ 문구가 붙은 점포도 여러 곳이었다. 이불과 한복을 파는 한 가게 주인은 “코로나가 한창 유행할 때와 다름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상인회 관계자는 “인근에 대단지 아파트들이 들어섰지만 그곳 주민들은 전통 시장을 찾지 않는다”며 “코로나 엔데믹에도 소비자들이 전통 시장으로 안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완화 이후 유통 업황이 살아나고 일부 도심이나 관광지 인근 전통 시장도 활기를 찾고 있지만 대부분의 전통 시장은 여전히 코로나 쇼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통 시장들은 코로나 이전에도 대형 마트·할인점에 밀려 어려움을 겪었지만 시장 현대화와 청년 몰 입점, 온라인 진출 같은 다양한 생존 전략으로 위기를 극복해왔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유통 시장의 무게중심이 온라인으로 급속히 이동하면서 디지털 서비스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진 전통 시장들이 전례 없는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유통업계는 코로나 기간 전국에서 100곳 이상의 전통 시장이 문을 닫은 것으로 추정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에 따르면, 전국의 전통 시장은 2006년 1610개에서 2020년 1401개로 14년간 총 209개, 매년 15개꼴로 사라졌으며, 최근 2년여 동안엔 예년보다 더 가파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지난 21일 오전 서울의 한 전통시장이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유통시장의 무게중심이 온라인으로 급속히 이동하면서 디지털 서비스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진 많은 전통 시장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뉴시스

◇“코로나 유행 수그러들어도 손님 안 돌아와” 매년 15곳씩 사라진다

전통 시장 안에서도 식당들은 배달 앱이나 밀키트 사업 진출을 통해 버텨내고 있다. 하지만 신발, 옷, 생활용품, 정육, 수산물 같은 업종들은 어려운 처지다. 박영안 아현시장상인회장은 “시장 내 식당들 중에는 배달 매출이 늘면서 새로 인테리어를 하고 매장도 넓힌 곳이 있지만 그 외 상점들은 온라인 진출에서 식당보다 제약이 많다 보니 타격이 크다”고 했다.

젊은 손님을 유치하려고 전통 시장 현대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시장 상인들이 고령화하면서 발 빠른 변화가 쉽지 않은 것도 어려운 점이다. 소진공에 따르면, 전통 시장 상인들의 평균연령은 2013년 55.2세에서 2020년 59.7세가 됐다. 서울 지역 한 전통시장상인회장도 “우리 시장 상인들은 평균 60세가 훌쩍 넘는다”며 “시장이 잘될 때는 가계를 승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가게 운영을 소일거리 삼는 고령자가 대부분이라 시장 활성화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최근 몇 년간 부동산 가격이 치솟은 수도권에선 전통시장이 재개발로 사라지거나 시장 내 건물이나 땅 소유자가 오피스텔이나 숙박 시설을 지으려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서울 성북구 장위전통시장은 일대에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을 하면서 2020년 시장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상인 3분의 1은 시장을 떠났고, 남은 상인들은 가게를 이전해야만 했다. 추귀성 서울상인연합회장은 “서울 도심 알짜배기 땅에 있는 전통 시장들의 경우 부동산 개발을 이유로 가게를 비워달라고 하면 상인들은 어쩔 수 없이 장사를 접어야 한다”며 “2030년쯤엔 서울에 있는 전통 시장 30%가 사라질 것 같다”고 했다.

자료=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점포 없이 라이브 방송으로 옷 판매하는 옷 도매상

코로나 기간 전통 시장 상점들이 활발하게 온라인 진출을 한 것이 역설적으로 전통 시장 공실을 늘리기도 한다. 온라인 판매가 자리 잡으면서 더 이상 시장 내 점포가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옷을 도매로 판매하던 김모(43)씨도 작년에 오프라인 가게를 정리하고 작은 사무실을 차렸다. 사무실에서 인스타그램을 통한 실시간 방송으로 옷을 소개하면 옷 소매상들이 카카오톡을 통해 주문을 넣어 구매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김씨는 “홈쇼핑처럼 소매상들이 방송을 시청한 뒤 한꺼번에 주문을 넣으니 더 간편하고 임차료도 아낄 수 있다”고 했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옷 가게를 운영하는 한 사장은 “겨울옷은 단가가 비싸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 지난주 동대문시장에 다녀왔다”면서 “지난 6개월 동안 동대문시장을 가지 않아도 지장이 없을 정도로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택배로 옷을 받는 방식에 익숙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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