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보여주는 이의 욕망에 감추어진 진실
사회 곳곳에 ‘이미지 덫’…진실을 보는 눈 가져야
“큰 구도가 필요하다. 폐허를 크게, 조선 황제를 작게 나타내라”. 이토 히로부미는 “무너진 돌계단과 그 너머의 송악산 능선을 구도의 횡축에 들어앉히고 조선 황제의 대열이 그 폐허에 종축으로 길게 늘어선 사진을 요구”했다. ‘미리 현장을 답사한 사진사’는 그 요구를 무리 없이 사진에 담아냈다. 무너져버린 폐허 속에서 걷고 있는 지친 순종의 이미지와, 계단을 내려오느라 대열이 흐트러진 시종과 신하들의 모습이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겼다. 이로써 이토는 사진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조선의 비극적인 미래에 대해 예측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일본, 조선, 그 밖에 여러 나라의 언론기관에 배포하라고 비서관에게 지시했다.” 김훈의 최근 소설 ‘하얼빈’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순종 황제의 순행은 통감이었던 이토에 의해 설계되고 강행된 일정이었다. 이토는 서북 순행 중에서도 개성의 만월대를 돌아보는 일정에 정성을 들였다. 그곳은 고려 태조가 창건하고 머물렀지만 400여 년 후 홍건적에 의해 불타고 폐허가 된 궁궐터다. 이토는 일본인 사진사들을 순행에 동행시켰고, 순종을 찍을 사진의 구도에 대해 상세히 미리 설정해주었다. 멈춰있는 이미지가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생각을 움직일 수 있음을 알고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 벨기에의 한 화가가 캔버스에 파이프 그림을 그려놓고 그 아래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글을 써넣었다.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이라는 작품이다. 이로써 화가는 “지금 당신이 보고 있고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과연 그럴까”라고 반문한다.
붓과 카메라를 통해 순수하게 대상을 담아서 보여준다고 생각했던 회화와 사진들은 사실 철저하게 계획되고 구조화된 것이다. 거기에는 ‘보여주는 이의 욕망’이 주도면밀하게 숨겨져 있다.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감출 것이며 바라보는 이로부터 무엇을 얻어낼 것인가.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만으로는 진실이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이미지가 우리를 배반할 것을 알면서도 현대인들은 점점 더 ‘이미지의 덫’에 갇히고 있다.
유명한 속옷 모델 출신인 카메론 러셀은 2013년의 테드 강연에서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그 사진들이 실제의 자신과 얼마나 다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대중들이 사진 속 이미지만으로 현실의 그녀와는 전혀 다른 왜곡된 생각과 판단을 하고 있을지에 대해서 말했다.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이 사진은 내가 아니에요. 이것은 ‘건축’(construction)같은 거에요. 메이컵 아티스트들과 헤어 디자이너들과 조명 감독과 의상 디자이너들과 사진작가들과 그 외 많은 전문가들이 정교한 설계도에 맞춰 함께 만들어 낸 새로운 상품인 거죠. 거기에 저는 없어요”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미지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을까. 불행히도, 그것이 파이프가 아님을 알면서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면서도, 우리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이끌려 이미지에 눈길을 보내고 그 설계된 의도대로 점차 뇌가 침식당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복제품을 계속 반복해서 보다 보면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복제이거나 조작인지 판단조차 어려워진다. 그러한 구분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한다. 진짜이든 가짜이든 그것이 중요한가라는 사고마저 생겨난다. 보기에 좋으면 그만이지 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앞에서 강조한 것처럼, 누군가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탄생에는 바라보는 이의 생각을 움직이려는 욕망이 깔려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뉴스 속 사진들이 그러하고 정치인들의 사진이 그러하고 광고 속 이미지들이 그러하다. 그러니, 조작에 의해 완성된 가짜 이미지가 아니라,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이의 의도에 의해 지워지고 감추어지거나 혹은 외면된 그 너머의 살아있는 진실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이토 히로부미의 의도대로 설계된 이미지에 속아 넘어가던 오래전의 그들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목적을 가진 채 편집된 이미지로 우리의 사고를 점령하려는 누군가의 작전에 또다시 패하고 말 것이다. “당신이 보여주려고 하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야”라고 말한 후, 세밀하게 디자인된 그 이미지로부터 시선을 돌려 그 너머의 진짜 세계를 바라보아야 하겠다. 보여주는 이의 욕망에 의해 감추어진 진실이 무엇인지, 우리는 이제 그것이 궁금하다.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것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지금 이것은 과연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보여주려 하고 있는가.”(르네 마그리트)
박선정 인문학당 달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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