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국민과 다투는 정부

국제신문 2022. 11. 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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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처음 만나 인사말로 ‘Who are you’라고 합니다. 비서가 사전에 ‘How are you’라고 알려줬는데 말이죠. 클린턴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힐러리 남편’이라고 했답니다. 외교적 결례일 수도 있는 상황을 부드럽게 풀어나간 클린턴의 여유가 느껴집니다. 대한민국에서의 삶이 하도 팍팍해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해봅니다. 우리 정치에는 왜 이런 여유가 없을까요. 여유가 아니라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싸움을 걸고, 기어코 무릎 꿇리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입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에서 MBC 취재진이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조치를 당했습니다. MBC가 지난 9월 대통령의 뉴욕 순방 때 이른바 비속어 표현을 사실인 양 보도하는 등 가짜뉴스를 생산해 국익을 훼손했다는 것이 근거입니다. 대통령은 지난 18일 출근길 기자 인터뷰에서 “국가안보의 핵심 축인 동맹 관계를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는 아주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악의적인지, 가짜뉴스인지는 국민이 판단할 일이지만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헌법수호 책임의 일환으로서 부득이한 조치’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특정언론에 대해 이렇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다는 자체가 서글픕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달 초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윤석열차’ 작품을 출품한 고교생에 대해서도 칼을 빼든 바 있습니다. 문체부가 ‘정치색이 짙다’며 주최 측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책임을 묻겠다고 했고, 지원 중단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가령 말입니다. 대통령이 MBC 보도를 건설적 비판으로 받아넘겼다면 어떠했을까요. 카툰 고교생을 관저로 초대해 도리어 격려를 했다면 또 어떨까요. 아마도 바닥을 헤매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등했을 것이라는 점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비서가 어느 날 일간신문을 들고 와 처칠 앞에서 그 신문사를 비난했습니다. 처칠을 시거를 문 불독으로 묘사한 만평을 실었기 때문입니다. 처칠이 신문을 보고 비서에게 말합니다. “벽에 걸린 내 초상화보다 훨씬 나를 닮았어. 당장 초상화를 떼어버리고 이 그림을 오려 붙이게.”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검찰총장의 자리와는 또 다릅니다. 검사로서는 피의자의 범죄사실을 명확히 밝혀내는 것이 유능의 척도일 수 있겠지만 대통령은 세상의 모든 강물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바다 같은 존재여야 합니다. 오염된 강물조차도 포용해 건강한 바닷물로 재생산하는 그런 넉넉함 말입니다.

진시황이 외국 출신 고위 벼슬아치들을 진나라에서 추방하겠다는 축객령을 내놓자 승상 이사가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고,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거부하지 않는다’며 반대합니다. 진시황은 수긍했고, 외국인이었던 이사는 벼슬을 유지하면서 천하통일에 기여했습니다.

대통령이 여유가 없다면 참모들이라도 달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 위의 두 가지 사례에서 정부 측 강경반응을 내놓은 대통령비서실 부대변인과 문체부장관이 공교롭게도 언론인 출신입니다. 누구보다도 언론의 속성을 잘 아는 이들이 언론을 흔들고 길들이는 데 앞장섭니다.

사마천은 사기 화식열전에서 정치의 5단계 중 가장 못난 정치가 (부를 놓고) 백성과 다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G10 대한민국의 정치와 국격이 도가의 무위처럼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정치까지는 언감생심이라고 하더라도, 의식주를 풍족하게 하는 정치, 가르치고 깨우치는 계몽의 정치나 법치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사회복지사로서 가정방문 상담을 하다 보면 놀라게 되는 사실 중 하나가 혼자 사는 기초수급자 중에서도 의외로 심리적 여유가 있는 이가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생활 불편사항이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있냐고 여쭈어보면 국민의 세금으로 많이 도움을 받고 있는데 또 뭘 바라겠느냐고 하십니다. 기초수급비 중에서 주거급여를 제외한 생계급여 월 58만여 원으로 생활이 고단하지만 그래도 감사하며 지내십니다. 그런 분들을 대할 때마다 대한민국이 그래도 살만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우리의 최고 권력자도 국민에게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김찬석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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