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이재명 대표, 거취 숙고할 때 왔다

조일훈 2022. 11. 2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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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상·김용 구속에 사면초가
유동규·남욱 폭로도 큰 파장
베일 벗는 대장동 검은 거래
민주당 방탄은 법치주의 부정
여야 대치로 경제도 큰 피해
명예·명분 잃고 정치 가능한가
조일훈 논설실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권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다.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지지자들은 이 대표의 도덕성이나 과거 이력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들의 관심과 기대는 정권 탈환을 위한 이 대표의 돌파력이다. 숱한 정치적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한 순발력과 활동력이다. 차기 총선에 목을 맨 야당 의원들은 이 대표의 당권을 본인들의 정치적 생존과 동일시한다. 공을 세워 눈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이들을 방탄 대열로 몰아세운다.

이 대표는 살아있는 권력이다. 입법권을 틀어쥔 거대 야당의 대표인 데다 열혈 지지층의 결집도 두텁다. 실질 영향력 기준으로 국가서열을 따지자면 대통령 못지않다고 봐야 한다. 몇 가지 실착과 악재가 겹쳐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권을 맴도는 것도 ‘야당 탄압’ ‘정치 보복’ ‘정권 퇴진’을 외치기에 유리한 환경이다.

전가의 방패도 오래 쓰면 흠집이 생기고 금이 가게 돼 있다. 무엇보다도 이 대표의 왼팔과 오른팔 격인 정진상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구속된 것은 큰 타격이다. 법원은 대장동 일당들로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거액의 뇌물성 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아들였다. 더 결정적인 것은 대장동 사업의 내막을 알고 있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남욱 변호사(천화동인 4호 소유주)의 폭로다. 내용의 파급력도 크지만 “내가 지은 죗값은 치르겠다”는 것을 전제로 다른 혐의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 전 본부장의 화법은 완전히 노골적이다. “내가 벌 받을 건 받고, 이재명 명령으로 한 건 이재명이 받아야 한다.” 이런 식이면 공범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숨을 곳이 없게 된다. 이른바 ‘죄수의 딜레마’가 해제돼버렸기 때문이다.

남 변호사의 법정 증언에는 또 한 가지 의미심장한 대목이 있다. 그동안 검찰 수사에서 대장동 사업에 대한 이 대표의 사업 지분을 거론하지 않다가 이제야 공개한 이유에 대해 “1년 전에는 이 대표가 지지율 1등인 대선후보였고 나는 그쪽에 대선자금까지 준 상황이어서 말할 수 없었다”고 한 대목이다. 비열하다고 해야 할지, 비정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장동 사업 등 이 대표 비리 혐의에 연루된 모든 사람이 이런 종류의 두려움을 가졌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거꾸로, 만약 이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당선됐더라면 이 모든 혐의가 묻혔을 것이라는 점에서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재명 리스크’는 민주당에 치명적이다. 성남시장, 경기지사 시절 벌어진 일에 아무런 관계도 없는 당이 총력대응에 나서면서 사후 책임까지 떠안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과거 수행비서 출신을 최근 민주당 국장급 당직자로 채용한 뒤 허위사실 유포 사건의 증인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전형적인 사당(私黨)의 모습이다. 민주당의 방탄은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법 집행에 대한 정치인의 위협은 법의 지배를 근본적으로 허문다는 점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잘못된 신호를 준다. 그 자체로 중대한 범죄다. 우리 모두는 법에 대한 주관적 평가에 관계없이, 수사·재판 권력에 상관없이 법을 지켜야 한다. 사전에 모르고 어긴 범법도 처벌 대상으로 삼는 게 법치주의의 근간이다. 혹여 방탄이 성공한다면 이 대표는 사법적 제재를 피하겠지만 법 정신 훼손에 따른 피해는 국민과 국가가 감당해야 한다.

이 대표 문제가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여야 대립이 극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5월 정권교체 이후 윤석열 정부가 제출한 단 한 개의 법안도 통과시켜주지 않았다. 반도체산업 발전 법안도 그중 하나다. 대신 민생이라는 이름의 포퓰리즘적 법안만 무더기로 쏟아내고 있다. 그 피해도 고스란히 우리 경제와 산업에 돌아가고 있다.

이 대표는 역대 정치 지도자 중 가장 많은 의혹을 받고 있다. 어찌 된 일인지 주변 인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상사도 끊이지 않았다. 정치적 생존을 위한 온갖 방편이 이제 국민적 민폐로 작용하고 있다. ‘기소 시 직무 정지’를 규정한 당헌 80조도 호락호락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드라마틱한 정치적 굴곡을 겪으며 여기까지 달려왔지만 이제 거취를 숙고해야 할 때라고 본다. 명예와 명분을 잃은 정치인이 권력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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