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62] 미국 간판 박물관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미국 간판박물관(American Sign Museum)’이 있다. 가족이 운영하던 간판 전문 잡지에서 26년간 근무하던 창업자 토드 스웜스테드(Tod Swormstedt)가 1999년부터 이 프로젝트를 계획, 2005년 박물관을 개관했다. 전국을 다니면서 흩어져있던 간판들을 모으고, 제작 회사들로부터 오래되고 쓰지 않는 간판들을 기증받으면서 컬렉션을 완성했다.
2000평이 넘는 면적에 19세기 말부터 1980년대까지 거의 100년간 미국의 주요 도로와 건물에 걸렸던 간판과 네온사인, 그 작동 장치들 200여 점을 전시해 놓았다. 주유소나 쇼핑센터, 모텔의 간판은 물론이고 반짝이 조명의 도넛 사인, 빅보이 햄버거 간판 등 친숙한 상표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큰 시골 헛간의 외벽에 칠한 대형 광고물이나 지금은 사라진 각종 회사, 은행들의 간판도 눈에 띈다.
미국 산업과 상업의 역사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값진 기록이다. 이곳의 특별한 프로그램은 고장 난 간판을 박물관 내부에 마련된 공방에서 수리, 복원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 관람객들에게 공개되어 교육적 효과도 증진시킨다. 이런 사인을 만든 디자이너와 기술자에게 감탄과 존경하는 마음도 가지게 된다.
포스트모던 건축의 대가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는 유명한 그의 1972년 저서 ‘라스베이거스의 교훈’에서 일반 대중과 소통이 없는 근대건축의 폐쇄성과 오만함을 비판하였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라스베이거스의 건물과 거리를 뒤 덮은 간판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사인들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소통과 유머를 제공하는 상황을 비교했다.
실제로 여행을 하거나 도시를 방문할 때 간판은 낮선 환경 속 거의 유일한 정보이며, 간판을 보고 레스토랑, 주유소, 상점, 유적지, 호텔 등을 찾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간판들은 또한 먼 거리에서도 잘 보이도록 대형으로 제작되었기에 박물관 내부에서 바로 앞에 놓고 볼 때 다가오는 커다란 스케일의 느낌도 색다르다. 간혹 이렇게 상업적 생산품이 하나의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되는 현상을 발견하는 건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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