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흑인 여성, 美 네바다주 대법관 됐다

박영준 2022. 11. 23.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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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린 시절에 노숙과 학대, 가난을 경험한 외국 태생의 혼혈 여성입니다."

미국 네바다주 대법원에 신임 대법관으로 임명된 한국계 흑인 여성 패트리샤 리(47·사진)는 주(州) 법관인선위원회에 제출한 후보자 답변서에서 신상과 관련한 글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다.

시설랙 주지사는 "리 변호사를 대법관에 임명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그가 지닌 능력의 폭과 깊이, 그리고 개인적이고 전문적인 경험은 대법원에 상상 이상의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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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 출신 패트리샤 리
미군 딸로 태어나 4세 때 이주
7살 부모 이혼 후 가장 역할
어린 시절 학대 등 아픔 극복
州 최초 아시아계 대법관으로
“저는 어린 시절에 노숙과 학대, 가난을 경험한 외국 태생의 혼혈 여성입니다.”

미국 네바다주 대법원에 신임 대법관으로 임명된 한국계 흑인 여성 패트리샤 리(47·사진)는 주(州) 법관인선위원회에 제출한 후보자 답변서에서 신상과 관련한 글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다.

전북 전주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리 대법관은 자신의 출발이 순조롭지 못했다고 소개했다.

4살 때 한국을 떠나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반덴버그 공군기지로 이주했지만 아버지는 곧 알코올 중독자가 됐고, 7살 때 부모가 이혼했다. 리 대법관은 어머니가 영어를 잘 말하지 못해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두 동생을 돌보는 가장 역할을 해야 했고, 8살 때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 지원서를 직접 작성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적었다.

리 대법관의 가족은 1년에 2∼3차례 아파트에서 쫓겨나길 반복하다 결국 노숙을 해야 했다. 몇 달간의 노숙 생활 후 다행히 학대 여성을 위한 보호소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재혼한 뒤에는 의붓아버지의 학대를 받았다. 15살에 집을 떠나 여러 집을 떠돌고, 친구 집에 얹혀살며 고등학교를 마쳤다. 리 대법관은 “아이러니하게도 내 어린 시절을 괴롭게 했던 상황은 내 성격을 강하게 만들었고, 남은 인생 동안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끈질긴 직업윤리를 심어주었다”고 적었다.

지역 매체에 따르면 스티브 시설랙 네바다 주지사는 21일(현지시간)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법무법인 허치슨앤드스테펀의 파트너 변호사인 패트리샤 리를 대법관으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흑인 여성이나 아시아계가 네바다주 대법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설랙 주지사는 “리 변호사를 대법관에 임명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그가 지닌 능력의 폭과 깊이, 그리고 개인적이고 전문적인 경험은 대법원에 상상 이상의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리 대법관은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심리학과 커뮤니케이션학을 복수 전공했으며, 이 학교 흑인학생회장을 지냈다. 이어 조지워싱턴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2002년부터 허치슨앤드스테펀에서 일해 왔다. 리 대법관은 상업소송과 함께 특허법, 가족법 소송도 맡았다. 리 대법관은 9월 사직한 애비 실버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임명됐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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