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40년 만에 국가의 인권침해로 규정된 군사정부 녹화사업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3일 1970~1980년대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결론내리고 187명을 피해자로 인정했다.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이 학생운동을 벌이던 대학생들을 강제로 군대에 끌고 가 고문·협박·회유를 통해 전향시킨 뒤 프락치(정보망원)로 활용했던 공작에 대해 국가기관이 처음으로 조사를 거쳐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진실을 드러내는 데 무려 40~50년이 걸렸으니, 늦어도 너무나 늦었다. 국가의 공식 사과와 피해 회복 조치가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
진실화해위는 1년6개월간 조사 끝에 공권력이 국방의 의무를 악용해 개인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동료를 배반하도록 강요했음을 확인했다. 이런 반인권적 행위는 1971년부터 1987년까지 지속적으로 저질러졌다.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은 시위 전력이 있거나 사찰 대상인 학생들을 체포·감금한 뒤 대규모로 강제징집을 하고, 이들에게 프락치 임무를 맡겨 학생·노동 운동 정보를 수집하도록 강요했다. 특히 전두환 정권은 ‘좌익으로 빨갛게 물든 머리를 푸르게 한다’는 뜻의 ‘녹화사업’이라는 명칭으로 강제징집과 프락치 공작을 더 치밀하게 진행했다.
당시 강제징집에는 국방부는 물론 병무청·문교부·법무부·대학이 다 협조했다. 경찰은 운동권 학생들을 체포하는 행동대 역할을 했고, 보안사는 군대에 끌려온 대학생들을 전향시키고 프락치 활동을 강요하는 녹화 공작을 주도했다. 그동안 5차례나 조사가 있었지만,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1984년 국회 청문회에서 국방부는 강제징집 사실을 부인하며 녹화사업은 정훈교육이라 왜곡했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위가 당국의 개입을 확인하며 정부 사과를 제안했지만 지금까지 응하지 않았다. 참으로 무책임하고 몰인권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진실화해위는 이날 진실 규명 결정과 함께 관련 국가기관의 공식 사과를 권고했다. 국방부 차원의 조사기구 설치와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배·보상에 관한 특별법 제정도 제안했다. 정부는 위법한 공권력에 의해 막대한 고통을 겪은 이들의 피해를 회복시키고 지원할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진실화해위는 이번 조사로 종전보다 500여명 늘어난 2921명의 사건 관련자 명단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피해자 추가 조사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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