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를 걷어차는 돌봄
[숨&결]
[숨&결] 양창모 | 강원도의 왕진의사
두달 만에 박 할머니 댁에 왕진을 다녀오는 길. 전에는 걸었던 분이 그날은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걸 보고 마을활동가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할머니의 병명이 뭔데 저렇게 갑자기 안 좋아졌어요?” 내 대답은 간단했다. “병명은 입원이에요.”
입원은 그 자체로 노인의 건강에 커다란 충격을 준다. 입원한 중년 성인이 침대에서 절대안정하고 있는 경우 1주일에 15%씩 근력이 감소한다. 하지만 노인의 근력은 이보다 3배나 빠르게 감소한다. “이젠 저기도 못 가. 침대에서 나가면 자빠질 것 같애. 병원에 입원해 옴짝달싹 못 하고 있어서 이렇게 망가진 거야.” 침대 옆에 있는 요강을 보며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혔다. 할머니가 입원이라는 병에 걸린 이유는 뭘까. 고통의 시작은 두달 전 갑자기 열이 나면서부터였다. 코로나에 확진된 것이다.
내가 시골에서 만나는 환자의 70%는 홀몸노인이다. 코로나에 확진되지 않아도 요양보호사나 생활지원사 도움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힘겹다. 그런데 이 노인들이 코로나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 더 특별한 돌봄은 고사하고 기존 돌봄서비스마저 모두 중지된다. 격리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모든 접촉이 끊긴다.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돼 있는 동안 할머니의 집도 결국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절간이 됐다. 가족들도 찾아오지 못했고 일주일에 사흘 찾아오던 요양보호사도 올 수 없었다. 심지어 매주 제공되던 반찬서비스마저 끊겼다. 반찬통이 바이러스에 오염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돌봄시스템에서는 지팡이를 짚어야 마당에 겨우 나오던 고령의 노인도, 코로나에 확진되면 자립해야 한다. 숨이 차고 사지가 다 쑤시고 아파도 혼자서 밥을 해 먹고 스스로 돌봐야 한다. 코로나에 걸린 시기는 가장 절실하게 돌봄이 필요하지만, 돌봄은 가장 필요할 때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러니 노인들에게 코로나란 돌봄서비스의 무덤과 같다.
지팡이가 돼주던 모든 돌봄이 일시에 끊어진 뒤 며칠을 집에서 버티던 할머니는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코로나 증세가 심해져 의료진의 도움이 필요해서라기보다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였다. 집으로 찾아오는 돌봄이 끊기자 자신이 직접 돌봄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래도 병원은 코로나 환자라고 해서 밥을 안 주지는 않으니까.
국가는 감기나 독감에 걸린 환자를 격리하진 않는다. 그러니 감기와 독감에 걸린 사람에 대한 국가의 돌봄 의무를 주장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코로나는 다르다. 코로나에 확진된 노인을 격리하도록 하는 것은 가족이 아니라 국가다. 공동체에 필요하다고 판단돼 국가가 한 개인에게 격리를 강제하려면 당연히 그렇게 격리된 개인의 돌봄 책임도 국가가 져야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특히 배달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게 불가능할뿐더러 진료센터에 전화하는 것도 힘겨워하는 노인이나 장애인에게, 격리는 죽음의 위협이 되기도 한다. 그 격리 기간을 혼자서 살아내야 하는 개인을 돌봐야 할 책임은 가족이 아닌, 국가에 있다.
할머니가 입원하게 됐을 때 가족들은 미리 구덩이를 파놓았다고 한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 폐쇄 병동까지 들어가게 되니 이번엔 정말 돌아가시는구나 싶어 묫자리를 봐놓은 거였다. 다행히 할머니는 무사히 퇴원하셨고 한동안 근력이 붙지 않아 힘들었지만 이젠 혼자서 마당까지 나올 수 있다. 할머니가 돌봄의 무덤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웃의 돌봄 덕분이었다. 한달 넘게 집으로 직접 찾아와 재활을 도와준 물리치료사가 있었고 ‘좋은 건 제일 먼저 할머니를 맛보게 해준다’는 요양보호사도 있었다.
이제 코로나 7차 대유행이 시작된다고 한다. 지난 여섯번의 대유행 동안에도 수많은 박 할머니들이, 장애인들이 혼자서 살아남아야 했다. 살아남은 그들에게 국가가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이 있다면 이제라도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의 집 문밖에 고단백 밀키트라도 가져다 놓으며 안부를 물어야 한다.
혼자서 코로나를 이겨내야 하는 시민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정말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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