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임대 확충이 ‘정상화’다

한겨레 2022. 11. 2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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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지난 7일 오전 48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 저지를 위해 모인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이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세상읽기]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내년도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둘러싼 공방이 한창이다. 정부의 5조6천여억원 예산 삭감에 항의하기 위해 48개 시민단체가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을 조직하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도 한달이 훌쩍 지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예결소위)가 지난 16일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전액 복구하기로 의결했으나, 정부와 여당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전 정부가 전세 불안 상황에서 지난 2년간 한시적으로 증액한 예산을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새 정부 예산은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안정을 위한 공공임대보다 공공분양주택 건설이나 민간임대 활성화에 비중을 두고 있다.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정상화’했을 뿐이라는 정부와 여당의 주장이 당황스럽다. 2015년 6월에 제정된 ‘주거기본법’은 주거권을 “물리적·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로 정의하고 있다. “물리적·사회적 위험”은 가난한 사람들이 감당하기에 원래도 버거웠으나, 팬데믹과 기후재난을 거치면서 이들이 인간성을 스스로 내려놔야 할 지경까지 초래했다.

몇가지만 짚어보자. 서울역광장에서 머물다 코로나19에 감염된 한 홈리스는 정부로부터 “가만히 있으라”는 답변을 들었다. 경찰은 그가 병원으로 이송될 때까지 구경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변을 맴돌며 감시했다. 내가 만난 고시원 거주 청년은 코로나 방역으로 인근 카페마저 영업이 중지됐을 때 모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좁디좁은 방에 갇혀 타인의 말, 숨, 걸음, 샤워 소리를 온종일 듣다 보니 이런 상황에 내쳐진 저 자신이 극도로 싫어졌단다. 밀폐된 수인들이 제집 일부로 연결해낸 급식소, 경로당, 복지관, 도서관, 공원 정자는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번번이 문을 닫았고, 접근금지 테이프가 쳐졌다. 그뿐인가. 지난 8월, 제집에 멀쩡하게 머물던 가족이 폭우로 익사하는 사태가 21세기 선진국 수도에서 벌어졌다. 영국 <비비시>(BBC)는 ‘반지하’(banjiha)라는 고유명사를 써가며 이 나라의 기이한 주거 실태를 전세계에 알렸다.

기후재난, 불평등, 바이러스 감염이 얽히면서 어떻게 거주할 것인가가 시대의 화두가 됐다. 현재도 문제이거니와, 주거 불안이 최소한의 안전과 존엄을 짓밟는 상황은 앞으로 더욱 전면화될 것이다. 주거권 보장과 거리가 먼 참상이 어째서 누구보다 앞서 움직여야 할 공무원과 정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까? 어째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위한 행정의 기본인 공공임대주택을 대대적으로 확충하기는커녕 예산을 전면 삭감해놓고 ‘정상화’를 운운할까? 경북 봉화 갱도에서 221시간 만에 생환한 박정하 광부는 관료들의 축하 인사에 날 선 비판으로 화답했다. 안전을 점검해야 할 사람들이 “옷에 흙 하나라도 묻을까 봐 벌벌 떨며 슬금슬금 다니다가 이렇게 된 게 아니냐”며 거침없이 따졌다(<한겨레> 11월19일치 인터뷰). 공공임대주택 예산 전액 복구에 반발해 국토위 예결소위 의결에서 모두 퇴장한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도 “흙”을 피하기는 매한가지다. 편안한 집에 머물다 자가용으로 국회까지 직행하는 의원님들에게 주거 불안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와 감각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잘못일까? 공공의 책무를 다하도록 선출된 사람들이 집단 퇴장까지 감행하며 공공을 우습게 보는 현실이 슬프다.

나는 의원님들이 국회 앞 농성장 천막을 찾아주길 바란다. 구두에 먼지가 약간 묻더라도 자가용에서 잠시 내려 법에 적시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한다. 자신을 나무라거나 공격하지 않을 ‘안전한’ 빈자를 찾아 연민을 보태고 연출사진을 찍는 대신, 잠깐이라도 살아 있는 빈자들의 거친 아우성과 직접 대면하길 바란다. 11월24일 저녁에는 농성장에서 북콘서트도 열린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가 제 터전에서 쫓겨난 자들의 잊힌 기억을 찾아 <가난한 도시생활자의 서울 산책>을 썼다. 공공임대주택이 불안정한 삶에 짓눌린 사람들한테 얼마나 절실한 화두인지 의원님들이 몸소 느끼기 어렵다면 이참에 독서도 하면서 새롭게 공부해보시는 건 어떨까. 똑똑한 의원님들이라면 공공임대를 지금보다 두배, 세배 확충하는 것이야말로 ‘정상화’임을, 국가가 공공임대를 당연히 ‘내놔야’ 함을 금세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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