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수생 증가, 의치한약수 올인… 입시 이대로 둘건가

한겨레 2022. 11. 2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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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왜냐면] 나종석 | 중앙대 영어교육과 1학년

지난 17일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치러졌다. 고교 재학생 35만239명, 고교 졸업생 14만2303명, 고졸 검정고시 1만5488명 등 총 50만8030명이 올해 수능에 응시했다. 이 가운데 고교 졸업생, 즉 엔(n)수생들과 검정고시 출신 비율이 높아진 게 눈에 띈다. 정시비율 확대와 문·이과를 가리지 않는 통합 수능, 약학대학 선발 부활 등 다양한 원인으로 고3이 아닌 졸업생과 검정고시 출신 등의 비율이 31.1%로, 26년 만에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고교 졸업생 가운데는 재수생, 삼수생 등도 있지만 대학생 신분으로 또다시 수능을 준비한 ‘반수생’도 포함돼 있다. 최근 언론보도(<한국경제> 9월22일치 ‘지방→인서울, SKY→의치대…반수생 10만명’)를 보면, 자퇴·미등록 등 중도탈락 대학생이 지난해 9만7326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서강대·한국외국어대의 중도탈락률은 3.6%로 신입생만 보면 10% 이상이 자퇴했고, 이른바 스카이(SKY)의 중도탈락률(서울대 405명·1.9%, 연세대 700명·2.6%, 고려대 866명·3.2%)도 역대 최고치였단다. 지방대→인(in)서울대→SKY(서울·고려·연세)대→메디컬(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 의치한약수)로 이어지는 이른바 ‘학벌 사다리타기’가 공고해졌기 때문이다.

문·이과 통합 수능의 문제도 만만치 않다. 통합 수능이어서 어떤 선택 과목을 골라도 모든 과에 진학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공대, 자연과학대, 의대 등 이과 쪽으로 진학하려면 수학의 경우 미적분·기하, 선택 및 탐구에서는 과학탐구 2과목을 봐야만 지원할 수 있다. 반면 상경대학, 인문대학 등 문과 쪽은 아무런 제약이 없다.

학생들이 시험에서 받은 원점수가 같다고 가정하면, 미적분·기하와 과학탐구를 봤던 학생들의 표준점수(응시영역과 과목의 응시자 집단에서 해당 수험생의 상대적인 위치를 나타내는 점수)가 확률·통계, 그리고 사회탐구를 봤던 학생들의 표준점수보다 훨씬 높다. 결국 미적분·기하, 과학탐구를 선택했던 수험생(이과생)이 문과 쪽으로 눈을 돌리면, 높은 표준점수 덕에 자신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받은 문과생들과 어깨를 겨누게 된다. 반대로 확률·통계와 사회탐구를 선택했던 수험생(문과생)은 자신들보다 훨씬 낮은 점수를 받은 이과생들과 경쟁해야 한다. 교차지원 허용으로 생긴 이런 현상을, 수험생과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이과 침공’이라 부른다.

입시원서 접수대행기업인 유웨이가 지난 4월1~3일 문과로 교차지원해 간 이과생들을 설문조사한 결과가 흥미롭다. 이과생 상당수가 문과계열에서도 인기 학과인 경영학과로 몰렸지만, 이과와 거리가 먼 언어와 문학 , 인문학 쪽으로 진학한 경우도 꽤 많았다. 이 가운데는 분야(전공) 대신 간판(대학)을 택한 이들이 상당수다. 실제 대학 간판만 보고 교차지원했다고 답한 비율이 40.7%에 달했고, 교차 지원에 후회하고 반수를 고려한다는 응답도 각각 57.5%, 55.9%를 기록했다. 이 얼마나 학벌주의에 매몰된 사회인가.

대학에서는 흔히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고교 3년 동안 어떻게 학교생활을 했는지 자세히 알 수 있고, 자신이 선호하던 학과에 지원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학과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정시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 가운데는 반수생이 많고, 성적에 맞추다 보니 계열이나 평소 바라던 전공에서 바꾼 경우가 많아 학과 만족도가 낮은 편이다. 나 또한 수능 성적에 맞춰 대학과 학과를 선택해 학과 만족도가 낮고, 코로나 19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 이뤄지면서 학우들과 관계도 깊지 않아 학교 소속감 역시 옅었다. 이는 반수를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반수생 증가는 사회적으로 큰 낭비다. 대학으로서는 기껏 뽑은 학생들 상당수가 중도에 이탈하면 입학정원은 채웠는데 실제 다니는 학생은 그만큼 줄게 된다. 수험생 당사자는 경제적 부담이 크다. 교육계에서는 1년 재수할 때 사교육비가 약 2000만원 정도 드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필자 역시 지난해 반수를 했는데, 1학기 때는 기존 합격한 대학 등록금에 인터넷 강의 및 교잿값 등으로 비용 지출이 많았고, 2학기에는 휴학하고 재수학원에 들어가면서 꽤 많은 돈을 써야 했다. 수능에서 원하는 성적을 받지 못해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반수의 장점이지만 비용은 재수 때보다 더 든다.

학원에서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다. 당시 상위권 학생들 대부분이 의대 같은 메디컬 학과 진학이 목표라고 말했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멋있다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입결(입시결과)이 가장 좋기 때문이란 답도 많았다. 입시 커뮤니티를 둘러 보라. ‘메디컬 학과를 가야만 성공한 인생’을 모토로 3수, 4수까지 치르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대학 중도탈락률은 나날이 높아지고, 의치한약수-스카이-인서울-지방대란 서열화는 갈수록 강고해지고 있다. 대학 학과를 선택할 때 정말로 가고 싶은 학과인지 진정성 검증 제도라도 도입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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