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0년 걸친 ‘녹화공작’, 국가가 사과하고 피해 배상해야

한겨레 2022. 11. 2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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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23일 군부독재 시절 자행된 이른바 '녹화공작'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결정하고, 신청인 187명을 피해자로 인정했다.

또 국가 차원의 사과와 배상 등 피해 '회복' 조처를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날 국가 차원의 사과와 피해 배상 조처를 권고하면서, 장기적으로 개인별 피해 사실을 규명할 조사기구를 설치하고 배·보상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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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형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팀장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 퇴계로 진실화해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에서 과거 자료를 보며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23일 군부독재 시절 자행된 이른바 ‘녹화공작’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결정하고, 신청인 187명을 피해자로 인정했다. 또 국가 차원의 사과와 배상 등 피해 ‘회복’ 조처를 권고했다. 녹화공작은 운동권 학생들을 강제 입대시킨 뒤 고문·협박·회유를 거쳐 정권의 프락치(끄나풀) 활동을 강요한 장기간의 체계적인 국가폭력이었다. 몇차례 조사 활동에도 아직 전모가 드러났다고 보기 어렵다. 역사와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후속 조처가 절실하다.

진실화해위의 이번 조사와 결정은 앞서 다른 조사기구들의 성과에서 다시 크게 나아간 측면이 있다. 녹화공작을 긴급조치 9호 등에 대한 확정된 판례와 형법에 근거해 불법으로 확인한 것이 그중 하나다. 개인별 사례를 조사해 피해 사실을 처음 인정한 것도 눈에 띄는 성과다. 국가기록원에 이관된 보안사령부의 개인 존안자료를 뒤져 녹화공작 관련자가 2900여명에 이른다는 사실과 1971년에 시작된 공작 활동이 6·10 민주항쟁 이후 노태우 정권 때인 1990년까지 20년에 걸쳐 이어진 사실도 처음 확인했다.

그러나 녹화공작 관련자가 2900명이 넘는데도 이번에 피해 사실이 인정된 사례가 187건이라는 것은 개인별 피해 조사를 완수하기까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뜻한다. 이번에 피해 인정을 받은 이들을 인터뷰한 <한겨레> 기사를 보면,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은 입영 전 체포·감금과 가혹 행위, 복무 중 전향 강요 단계에만 그치지 않는다. 전역 뒤에도 계속된 프락치 활동 강요에 학교를 관두는가 하면, 오랜 시간 자괴감을 견뎌야 했다고 한다. 녹화공작 과정에서 의문사한 이들에 대한 진상 규명도 더디기만 하다.

진실화해위는 이날 국가 차원의 사과와 피해 배상 조처를 권고하면서, 장기적으로 개인별 피해 사실을 규명할 조사기구를 설치하고 배·보상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사안의 무게로 보나,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피해 배상을 위해서나 지극히 합리적인 주문으로 보인다. 그동안 과거사와 관련한 입법이 추진될 때마다 진영 논리가 발목을 잡고는 했던 행태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국민의 신체와 양심의 자유까지 짓밟아온 국가폭력의 참혹한 진상을 온전히 드러내 역사로 기록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다하는 일에 시효는 물론이고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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