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면]한때는 청소 일까지, 지금은 기적을...르나르의 낭만 축구

오광춘 기자 2022. 11. 2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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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모든 별이 우리를 위해 줄지어 늘어섰습니다.”
격정은 잠재우고 낭만을 띄웠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르헨티나를 잠재운 날, 전 세계가 놀라고 흥분하고 충격에 빠져 있을 때 에르베 르나르 감독(54)이 던진 한마디입니다.
그 뒤에 남긴 말도 차분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르나르 감독은 프랑스 출신입니다. 약하고 작은 팀들을 맡아 성공스토리를 쌓고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이게 축구입니다. 가끔은 완전히 미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죠. 월드컵에 오면 축구에선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믿어야 합니다.”
아르헨티나가 주저앉은 이유도 덧붙였습니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지만 때때로 상대 팀이 동기부여가 안될 때가 있어요. 특히 전력이 낮은 팀과 맞붙을 때 그런 일이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아르헨티나가 브라질과 만났을 때 정도의 동기부여는 안 됐을 거예요. 그게 축구의 일부입니다.
승자의 여유일까요. 감독의 승리 소감이 철학자의 말처럼 들립니다. 그렇다고 우쭐하거나 으스대는 느낌은 없습니다. 프랑스 출신 르나르 감독의 인생 여정도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기에 그렇겠죠.
사우디 영자 신문 아랍뉴스 1면.
르나르는 수비수 출신입니다. 1998년 무릎을 다쳐 서른살의 나이로 선수생활을 마쳤습니다. 좌절이었죠. 곧바로 지도자로 나섰습니다. 프랑스 남부의 작은 팀 드라기냥SC 감독으로 축구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했죠. '유로 뉴스'는 '이 무렵 팀을 이끌면서 청소부로 일하기 시작했고, 청소회사도 직접 설립하기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작고 약한 팀을 맡아 조금씩 성공이라는 색깔을 입히며 인정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2010년대 들어서야 빛이 들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잠비아, 코트디부아르를 지휘하며 그 능력을 인정받았죠. 2018년 월드컵이 끝나곤 우리 대표팀 감독 후보로 부상하기도 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9년부터 맡아 월드컵 본선 진출, 나아가 첫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를 꺾는 파란까지 연출했습니다.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꺾다니..사우디아라비아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더 타임스'는 2004년 르나르가 잉글랜드의 케임브리지 유나이티드 감독을 맡았을 당시 심어줬던 지도 철학을 소개했습니다. '지휘봉을 잡고 나선 훈련 첫날 선수들의 몸이 좋지 않다고 판단한 뒤 120분 연습게임을 시킬 정도'였고 '프리시즌엔 오전 6시에 선수들을 깨워 하루 세 번씩 훈련하곤 했다'며 몸 상태를 가장 중시하는 감독이라 설명했습니다. 더불어 섬세한 관리형 지도자로 '선수들에게 탄산음료와 케첩을 먹지 말라'고 주문한 일화도 덧붙였습니다.

선수단 26명 전원이 사우디 프로리그에서 뛰는 사우디 국가대표팀은 한 달 이상의 소집훈련을 이어왔습니다. 해외파가 전혀 없는 그 폐쇄성이 사우디 축구의 성장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그런 단점을 장점으로 끌어냈습니다. 사우디 프로리그는 월드컵 준비를 위해 두 달 전부터 경기를 중단하고 대표팀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르나르도 사우디 선수들도 '공은 둥글다'는 그 말 한마디를 믿었고, '하늘의 별들이 가지런히 정렬하는'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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