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니 아파트 통째 봉쇄"… 일장춘몽 된 中 정밀방역

손일선 특파원(isson@mk.co.kr) 2022. 11. 23.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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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봉쇄 유턴' 현장
동별 봉쇄 발표 열흘만에
다시 무관용 방역 급선회
코로나 확산 대안 못찾아
다시 유령도시돼 불안 고조
"짐 싸서 한국으로 돌아갈 것"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베이징 차오양구 왕징의 한 아파트 단지가 23일 통째로 봉쇄돼 단지 출입구가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다. <베이징/손일선 특파원>

"자고 일어나니 아파트 단지가 봉쇄됐어요."

23일 기자가 거주하고 있는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 왕징 지역의 아파트 단지 주민 단체위챗방(중국판 카톡방)에서 이른 아침부터 알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 출구가 모두 닫혀서 출근하려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람부터, 아이가 아파서 약을 사러 나가야 하는데 방역요원들이 결국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는 사람까지 다양한 하소연이 쏟아졌다.

기자가 1층으로 내려가 보니 아파트 현관문에 '코로나19 확산이 엄중한 상황이어서 아파트 단지를 임시 봉쇄한다'는 공지문이 붙어 있었다. 그야말로 자고 일어났더니 아파트 단지에 갇힌 꼴이 된 것이다. 주민들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날 수 없고, 단지 내 놀이터에 임시로 설치된 유전자증폭(PCR) 검사소에서 매일 정해진 시간에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지침도 내려왔다.

기자는 이날 중국 외교부를 방문해 외신기자증 갱신 신청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 신청이 늦어지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아파트에 거주하는 지인에게 서류를 대신 제출해달라고 급하게 부탁을 했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지인이 도착하자 방역요원은 서류 봉투에 소독약을 뿌린 후에야 철문 사이로 서류를 건넬 수 있도록 허용했다.

23일 중국 정저우시 폭스콘 공장의 방역요원들이 폭행당해 쓰러진 것으로 추정된 한 직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트위터 캡처】

사실 기자는 지난 19일자 매일경제 지면을 통해 과거와 달라진 베이징 '정밀방역' 상황을 전하는 현장기사를 썼다. 확진자가 발생해도 과거처럼 아파트 단지 전체를 봉쇄하지 않고 해당 동만 봉쇄한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당시 기자가 거주하는 아파트 옆 동에 확진자가 발생했지만 옆 동 현관문만 틀어막고 다른 동은 봉쇄하지 않았었다. 중국이 제로 코로나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정밀 과학방역'을 강조하면서 나타난 변화 중 하나였다.

하지만 감염자가 급증하면서 중국 당국이 고심 끝에 내놓은 정밀방역이 불과 10여 일 만에 갈 길을 잃은 모습이다. 기자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에서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 동까지 봉쇄하는 방안을 선택한 것은 중국 방역당국이 정밀방역의 한계를 자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확진자가 나온 동만 봉쇄됐을 당시 "정밀방역 덕분에 우리 동은 봉쇄되지 않았다"며 안도감을 표했던 한 주민은 "일주일 만에 정밀방역이 어디로 사라졌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2년 11월 19일자 매일경제 6면 보도.

확진자가 나온 동과 나오지 않은 동의 차이는 핵산 검사를 집에서 받느냐, 아니면 놀이터에 설치된 임시 검사소에서 받느냐뿐이다. 일단 위험한 지역은 무조건 틀어막고 보자는 무관용 제로 코로나 관행이 꿈틀꿈틀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뿐 아니라 오피스빌딩에서도 무차별 봉쇄가 다시 시작되는 분위기다. 베이징 최대 번화가 중 한 곳인 싼리툰 지역 오피스빌딩 입주 기업들은 지난 22일 저녁 급작스럽게 봉쇄 소식을 전달받았다. 싼리툰 중우빌딩에 중국법인 본사가 있는 한 한국기업 관계자는 "저녁 늦게 갑자기 밤 12시에 건물을 폐쇄할 테니 반드시 건물에 상주해야 하는 인력이 있으면 12시 전에 들어가야 한다는 통보가 왔다"고 전했다. 확진자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일단 위험성을 차단하라는 지방 방역당국의 지시로 불가피하게 건물 폐쇄를 결정했다는 게 건물 관리소 측 설명이었다. 결국 이 회사 직원 24명은 회사로 복귀해 사무실에서 긴 밤을 지새워야 했다.

중국 방역당국은 지난 11일 격리기간 단축, 2차 접촉자 판정 폐지, 의무적인 전원 핵산검사 지양 등을 담은 방역 최적화 20개 조치를 발표했다. 당시 외신들은 "중국이 제로 코로나 출구전략 모색에 나섰다"는 평가를 내놨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중국 내에서 코로나19 일일 신규 감염자가 상하이 도시 봉쇄 이후 반년 만에 최대치로 급증하자 지방 방역당국은 오히려 방역의 고삐를 더 조이는 모습이다. 방역 완화 조치를 취했다가 확진자가 대거 발생하면 지방정부 수장이 책임져야 하는 구조여서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미 베이징은 지난 5월처럼 유령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식당 내 취식이 금지됐고 슈퍼, 약국 등 필수업종을 제외한 대다수 매장이 문을 닫았다. 또 사무실 출근 인원을 5~10% 이내로 제한하고, 초·중·고교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했다. 주요 공원과 놀이시설도 모두 폐쇄됐다.

베이징 주민들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빠른 만큼 이 같은 준봉쇄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가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인 커뮤니티에는 "가족들이 짐을 싸서 한국으로 귀국하기로 결정했다"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나마 귀국도 운이 따라줘야 한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거주하는 아파트가 봉쇄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방역완화라는 풍선은 쏘아 올렸지만 급증하는 확진자 숫자 앞에서 전면봉쇄를 대신할 만한 대안을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수뇌부는 중국의 대규모 코로나19 확산은 곧 시진핑 국가주석의 패배라고 인식하는 듯하다. 정밀방역 구호가 벌써 희미해져 가는 이유다. '방역 유연화→감염자 증가→방역 재강화'라는 쳇바퀴 속에서 중국이 제로 코로나 늪에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베이징/손일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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