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문화를 이해하는 연결고리” 베트남거점세종학당 속으로

김서영 기자 2022. 11. 2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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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호치민시에 있는 베트남거점세종학당에서 수강생들이 한지 체험을 하고 있다. 김서영 기자

“하나 둘 셋 하면 잊어. 슬픈 기억 모두 지워. 내 손을 잡고 웃어.”

“예쁘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달 초 베트남 호치민시에 소재한 베트남거점세종학당을 방문했다. 한복이 여러 벌 전시된 현관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베트남 학생들이 손글씨로 ‘오늘도 좋은 하루’, ‘풍성하고 즐거운 한가위’ 등을 비롯해 케이팝 가사를 적어놓은 카드가 벽면에 놓여 있었다. 복도에는 이제 막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학생들이 시험을 기다리며 막판 공부를 하고 있었고, 교실에선 한지로 책을 만드는 문화체험이 한창이었다. 수강료는 무료다.

이곳에서 만난 이규림 베트남거점세종학당 소장은 “한국의 국가 브랜드가 이렇게 호감과 신뢰를 받는 경험은 건국 이래 처음이지 않을까. 국가 브랜드는 실질적으로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배우고 한국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세종학당의 존재나 역할이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세종학당은 ‘공공외교’의 일환으로 출발했다. 공공외교는 외교를 ‘정부 대 정부’의 활동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한국 정부와 외국의 일반 대중을 잇는 형태의 외교를 뜻한다. 외교부 설명을 보면, 공공외교란 외국 국민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 전통, 문화, 예술, 가치, 정책, 비전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고 신뢰를 확보하는 활동이다. 이를 통해 외교 관계를 증진시키고 우리의 국가 이미지와 국가 브랜드를 높여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영향력을 높이는 외교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베트남 호치민시에 있는 베트남거점세종학당에 수강생들이 한국어로 쓴 손글씨가 전시돼 있다. 김서영 기자

세종학당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세종학당재단의 지원을 받는다. 그렇다 보니 ‘왜 세금으로 외국인들의 공부를 지원해야 하느냐’는 반응도 종종 나온다고 이규림 소장은 전했다. 한류 콘텐츠가 인기를 얻으며 자발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굳이 정부가 나설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규림 소장은 “홍콩이 더이상 1990년대와 같은 문화강국으로 인식되지 않듯, 이 인기가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 한류를 지속하는 방법으로 나온 것이 한국어 교육과 한국 문화 체험 기회 확산”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언어는 문화가 휘발되지 않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연결고리다. 그것이 바로 (정부가 한국어를) 보급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다른 나라 또한 해외에 자국어 보급 기관을 두고 있다. 프랑스는 1883년 알리앙스프랑세즈를 설립, 외무부 및 교육부를 주무부처로 131개국에 832개를 운영한다. 영국은 1934년부터 브리티시카운슬을 시작해 109개국 179개를 설립했다. 독일 괴테인스티튜트는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98개국 157곳이 있다. 일본은 일본국제교류기금에서 1972년부터 일본어를 교육하기 시작, 24개국에 25개를 뒀다. 후발주자인 중국은 2004년부터 공자학원을 설립해 154개국에 1741개를 운영 중이다. 모두 자국 언어 및 문화에 대한 인식을 증진시키고 문화 교류, 우호 관계 발전을 목표로 한다.

한국의 세종학당(King Sejong Institute)은 2007년 시작했다. 세종학당은 정확히는 법인이나 교육기관의 명칭이 아니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와 한국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일컫는다. 올해 6월 기준 전세계 84개국에 244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출범 첫 해 3개국 13개소와 비교하면 약 19배 증가했다. 그 사이 세종학당 수강생도 740명(2007년)에서 지난해 8만1476명으로 약 110배 늘었다. 그간 세종학당을 거쳐간 학습자는 약 58만명이다.

그중 베트남은 좀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세종학당은 베트남에 2011년 처음 3개소가 지정됐다. 올해는 23곳이다. 수도 하노이를 포함한 북부에 8곳, 다낭이 있는 중부에 2곳, 호치민시가 있는 남부에 13곳이 있다. 올해 기준 베트남은 전세계에서 세종학당이 가장 많은 국가이며, 호치민시는 세종학당이 가장 많은 도시(6곳)다. 이전까지 세종학당이 가장 많은 국가는 중국이었다고 한다.

베트남 한국어 학습자는 다른 지역에 비해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비율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베트남에서 한국어는 지난해 제1외국어로 지정됐다. 제1외국어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하는 10년짜리 외국어 교육 과정을 의미한다.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독일어, 러시아어, 프랑스어가 제1외국어에 속한다. 이규림 소장은 “외국어 교육과정에 들어갔다는 건 (한국어 교육이) 성숙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학교가 이중 하나를 선택해 가르치는 형식이다. 아무래도 주로 영어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서 한국어는 영어를 제치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규림 베트남거점세종학당 소장이 세종학당의 한국어 및 한국문화 전파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서영 기자

한국어 뿐만 아니라 한국문화를 알리고 전파하는 것이 세종학당의 기능과 목적이다. 베트남 대학들에 한복, 전통혼례, 한옥 키트 조립, 김장 담그기 등 문화 체험 기회와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연수를 제공했다고 이규림 소장은 소개했다.

한국문화를 배우려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는 점이 베트남 한국어 교육계의 주요 현안이다. 중고등학교에는 문화 체험 기회가 거의 없으며, 대학에선 문화원이나 기업이 후원해 행사를 개최하기도 하나 수요에 비하면 매우 부족하다. 전문가를 초청해 지역을 순회하게 하거나 세종학당을 거점으로 인근 기관을 지원하는 것 등이 방안으로 꼽힌다. 이규림 소장은 “한국어 교육을 통해 서로의 문화의 차이를 깨닫고 자문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 세종학당의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KPF 디플로마 베트남 전문가’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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