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잘 되고 처우 좋아 인기···교원·교재 부족은 과제” 베트남 한국어교육 현장을 가다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린다. 한국어가 제1외국어로 지정됐고, 한국어능력시험(TOPIK) 시험장이 북적인다는 보도도 종종 나온다. 베트남 젊은이들은 한국어를 왜 배우려고 하며, 한국어를 배울 경우 이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효용이 있는 것일까. 한국언론진흥재단(KPF) 디플로마 베트남 전문가 과정의 일환으로 이달 초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하노이국립외국어대를 찾았다. 이곳에서 한국어 및 한국문화 학부의 쩐 티 흐엉 학장과 도 프엉 투이 부학장을 만나 베트남의 한국어 교육 환경을 비롯해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기쁨과 어려움에 관해 들었다.
취업 잘 되는 한국어전공, 대입 성적 ‘상위권’
이날 방문한 하노이국립외대는 1~2학년까진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교육하고, 2학년까진 TOPIK 5급 도달을 목표로 한다. 3학년부터 한국어 통번역, 한국어학, 한국어 교육 등으로 세부전공을 나눈다. “베트남을 통틀어 52개교에 한국어 전공이 있는데, 하노이국립외대가 가장 다양하게 세부전공을 운영한다”는 것이 쩐 티 흐엉 학장의 설명이다.
그는 최근 5~6년 동안 이 학교를 포함한 많은 학교에서 한국어 전공의 입학 점수가 상위권에 속했다고 전했다. 한국어 전공이 가장 높은 입시 성적을 차지한 학교도 있지만, 대부분 영어에 이어 2~3위를 기록했다고 했다. 학과 규모와 모집 인원에 따라 경쟁률과 입시 성적은 다소 상이하지만 그래도 한국어학과의 입학 점수는 다른 학부에 비하면 높은 편이다.
이 같은 인기의 이유 중 하나로 졸업 후 진로를 들 수 있다. 공무원을 비롯한 일반적인 직종의 임금 수준이 높지 않은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배워 한국 기업이나 대도시에 있는 직장에 취업하면 처우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쩐 티 흐엉 학장은 “학부 졸업생 대부분이 한국 기업이나 한국 관련 기관에 취업한다. 회사에 다니는 이들이 교수보다도 월급이 2~3배 더 많다”고 귀띔했다. 그는 “요즘은 민간 분야 교류도 활발하기 때문에 프리랜서를 하거나 학원을 운영하기도 한다. 다른 외국어를 전공하는 것에 비하면 아직까지는 쉽게 취업해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교원·교재 부족···문화까지 배우려 노력
한국어를 가르치는 데에 어려움이 무엇이냐고 묻자 “교원이 부족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어를 배운 이들이 학교에 남지 않고 처우가 좋은 기업으로 가거나 통번역 프리랜서로 뛰어든다는 것이다. 흐엉 학장은 “요즘 한국어 교육기관은 많은데 베트남인 교사가 많이 부족하다. 한국 기관에서 한국인 교사를 파견받기도 하지만, 베트남 전임 교수를 양성해야 하는데 월급 등 여러 문제로 쉽게 채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3학년부터는 전공과목 비중이 커지고, 전공과목 강사는 석사 이상 박사과정생부터 할 수 있다. 그런데 수많은 학생에 비해 선생님이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한 학습자의 수준과 유형별로 알맞은 한국어 교재도 부족하다. 베트남에서 개발, 출판한 한국어 교재보다는 한국 교육기관이 발행한 교재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흐엉 학장은 “한국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원,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과 예스24 등 사기업이 도서를 지원해준 적이 있다. 그래도 다양한 학습자에 부응하기엔 아직까지 한국 도서가 부족하다. 학생들이 빌려서 복사해 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책이 중요한 이유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선 한국 문화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는 것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어 뿐만 아니라 어떤 언어를 배우든 마찬가지다. 흐엉 학장은 “언어만 공부하는 세상이 아니다. 언어와 문화를 함께 공부해야 그 나라에 대한 지식, 이해를 깊이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기업 관계자들로부터 베트남 학생들이 한국어를 잘 배웠음에도 회사에서 당황한다는 피드백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인의 사고방식이나 한국 문화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그렇다”며 “가끔 한국 기업인을 초청해 특강을 열고 사투리 억양도 익히도록 한다”고 했다. 도서 기증에 관해 묻자 도 프엉 투이 부학장은 “소설이든 한국 여행 서적이든 어떤 책이든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문화 교류의 교두보이자 성과
베트남의 경제 성장 못지 않게 베트남 내 한국어 학습 환경도 빠르게 변했다. 이 학교 한국어 전공 1기인 쩐 티 흐엉 학장이 1997년 입학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상전벽해 수준이다. 그는 “그 당시엔 한국어 선생님이 코이카에서 파견온 분이나 한인교회·한인회 밖에 없었다. 요즘 학생들은 한국인과 직접 대화하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한국어 학습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전했다.
과거와 현재의 공통 분모는 한류다. 쩐 티 흐엉은 드라마 ‘가을동화’를 보고 한국을 알게 돼, 영어를 전공하려 했으나 시험 전날 한국어로 바꿨다고 했다. 투이 부학장은 “한국 드라마를 한국어로 감상하고 싶다는 것이 한국어를 배운 계기였다. 그 꿈을 이룰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수업 중에 학생들과도 종종 K팝과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만 앞서 드라마 ‘작은 아씨들’ 속 대사가 베트남 비하 논란을 일으켰던 것처럼, 대중문화에 의존하는 교류는 늘상 위험이 잠재한다. 투이 부학장은 “과거사에 대한 접근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베트남 사람들도 많이 보는데,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상처를 주면 안되지 않나”라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반대로 그는 베트남 사람들도 한국 영화 ‘하얀 전쟁’을 보면 좋겠다고 했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한국군 용사의 아픔과 갈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한국인의 고뇌를 잘 알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돌아보면 한국어는 베트남과 한국을 잇는 매개인 한편 두 나라 교류의 결과물로서 베트남에서 부상했다. 흐엉 학장은 “베트남과 한국의 관계는 이미 포괄적인 동반자 관계로 승격됐다. 민간 교류도 활발하고, 사돈 나라로 발전해왔다. 이는 다른 국가와 비교해 특별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는 “문화가 비슷해 한국인이 베트남에 와서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인구가 젊고 잠재력이 높은 나라라는 점에서 베트남을 주목해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KPF 디플로마 베트남 전문가’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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