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빛만 봐도 병세 알아챈 중국名醫 '편작의 兄'처럼…AI·빅데이터로 고장 예방 심텍에 재난방지 답 있다 [사람과 현장]

손현덕 기자(ubsohn@mk.co.kr) 2022. 11. 2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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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B 세계1위 심텍 송문섭 회장
청주 소재 심텍 PCB 제조 공장에서 임직원들이 구리 도금 설비 라인에 부착된 센서에서 이상 신호가 감지되자 음향 카메라로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총 34m 길이 라인에 도금을 하는 펌프가 20개 달려 있고 펌프마다 센서가 붙어 있다. 왼쪽부터 박태근 상무, 송문섭 회장, 박현범 팀장. <이충우 기자>

초년병 기자 때부터 알고 지내는 전직 언론인 이세정이 중앙일보 기자 시절 '편작(扁鵲)의 형(兄)'이란 칼럼을 쓴 적이 있다. 2006년의 일인데 이 칼럼이 나가고 반응이 좋았던지 채 두 달이 안 돼 '편작의 형Ⅱ'라는 속편을 썼다. 둘 다 금융시장에 대한 당국의 선제적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한 글이었다.

왜 '편작의 형'인가? 스토리는 이렇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쯤 중국 전국시대에 발해군 출신의 명의(名醫)가 있었는데 그가 편작이다. 죽은 사람 살려낸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의술이 뛰어났다. 괵나라 태자가 침을 맞고 되살아났다. 소문이 꼬리를 이으면서 그의 명성이 온 천하를 뒤덮었다. 어느 날 위(魏)나라 문후가 편작을 불러 "당신이 용하다 하는데 정말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명의인가"라고 물었다. 이때 편작의 답. "저에게 큰형님이 계신데 그분이 제일 명의이고, 둘째형이 그다음이며, 저는 세 번째입니다."

칼럼에 따르면 편작의 큰형은 사람들이 병의 증상을 느끼기도 전에 얼굴빛만 보고 장차 병에 걸릴 것을 알아내 미리 병의 원인을 제거해준다. 사람들은 아프지도 않았기 때문에 치료를 받았다고 생각조차 안 한다. 둘째형은 사람들의 병세가 미미할 때 병을 알아채고 치료해준다. 이 경우도 사람들은 둘째형이 자신을 낫게 해주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편작은 사람들의 병이 커지고 고통을 느낄 때 비로소 병을 알아보고 치료를 해준다. 편작이 명의로 소문나고 두 형은 잘 알려지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는 얘기다.

동료 기자의 글을 새삼스럽게 소환한 이유는 자명하다. 곳곳에서 터지는 사고 때문이다. 모든 사고에는 징후가 있었을 텐데 그 징후를 얼마나 일찍 알아차렸는지, 그래서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에 따라 편작의 큰형이 있고 편작의 둘째형이 있고 편작이 있을 것이다.

지난달 핼러윈 축제 때 이태원에서 발생한 끔찍한 압사사고를 생각해보자.

만약 재난을 책임지는 컨트롤타워의 책임자가 편작이었다면 어땠을까? 언제였을지는 모르나 그에게 압사사고의 위험성이 전달된 순간 최고의 행정력을 발휘해 현장 수습을 했을 것이다.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겠다. 그래도 골든타임을 지나서 알게 됐다면 희생자가 발생하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밤 10시 15분이 넘어 알게 됐다면 결과는 지금과 같을 것이다.

편작의 둘째형이었다면 어땠을까? 이태원에 사람이 몰려들고 있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 리스크 관리에 들어갔을 것이다. 위험지역이 어디인지를 사전에 체크하고 그곳에 경찰력을 집중 배치해 현장 안내를 했을 것이다. 그래도 시민들 통제는 잘 안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희생자를 최대한 줄일 수는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편작의 큰형이었다면 어땠을까. 장담컨대 "핼러윈데이에 이태원에 무슨 일이 있었어?" 이러고 넘어갔을 것이다. 며칠 전부터 인파가 몰릴 거란 예상은 하고 있었다. 편작의 큰형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작전을 세우고 사전에 안전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아마도 사고 난 골목길 앞뒤로 통제선을 치고 질서 있는 통행이 가능하도록 행정력을 동원했을 것이다. 시간을 정해 이태원 전철역도 무정차 통과시켰을 것이다. 그날 이태원에는 편작의 큰형, 편작의 둘째형은 고사하고 편작조차 없었다.

무려 127시간30분이나 서비스 장애를 가져온 카카오 먹통 사태. 원인은 카카오가 백업 서버를 제대로 만들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주 데이터센터와 같은 시설을 원격지에 두고 사고가 날 경우 이 예비 데이터센터를 가동한다. 비용 문제가 있어 정확하게 쌍둥이 데이터센터를 구비하지는 못하더라도 중요한 데이터는 그렇게 관리한다. 소위 재난복구(DR)센터다. 불난 판교 SK데이터센터에는 카카오뿐만 아니라 네이버, IBM 서버도 있었다. 이들 기업은 카카오 같은 치명상을 입지 않았다.

그런데 1차 원인은 데이터센터 지하 3층 배터리실에서 불이 났기 때문이다. 지하 3층 전체가 불이 붙은 게 아니다. 리튬이온배터리 모듈을 11개 쌓아놓은 선반, 이를 랙(RACK)이라고 하는데 그게 5개가 탔다. 거기서 발생한 열기가 그 옆에 있는 납축전지 일부를 녹였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고작 이 정도 불에…"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렇다면 화재가 나기 전 미리 예방할 수는 없었을까. 이 배터리실을 관장하는 책임자가 편작의 형이었다면 막을 수 없었을까? 그런데 편작의 형은 있긴 하다. 사람이 아니라 기계다. 그게 배터리 관리시스템(BMS)이고 자동소화설비시스템이다. BMS는 배터리에 부착된 센서가 배터리 작동의 이상을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전류, 전압, 온도 등 배터리에 이상신호가 발생하면 경고를 울리는 시스템이다. SK 측은 이 시스템에선 아무런 신호가 없었다고 한다.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이곳 BMS는 '편작의 형'은 고사하고 편작 발끝에도 못 미치는 장치임에 틀림없다. 센서를 더 많이 달아야 하고 기능을 고도화해야 할 것이다.

그다음은 자동소화설비시스템. 이건 화재를 감지하는 시스템인데 배터리실 내 공기를 지속적으로 흡입해 화재가 나는지 살핀다. 불이 나서 열이 발생하면 이미 늦고 연기를 보고 사전에 알람을 울려야 한다. 그러면 이와 연동해 소화약제가 뿌려진다. 할로겐 화합물인데 하얀 분말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치명적 문제점. 알람이 울리고 규정대로 소화약제가 분사되긴 했는데 그걸로 턱없이 부족했다. 소방관이 출동했는데도 진화가 안 됐다. 결국 "물로 끄자"는 말이 나왔고, "그러면 전원을 차단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카카오 먹통은 그래서 일어났다.

만약 연기분석시스템이 좀 더 정교해 일찍 알아내 소화작업에 들어갔더라면 어땠을까? 그리고 알람이 울렸을 때 충분한 소화약제가 뿌려졌더라면 굳이 물로 불을 끌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문다.

어쩌면 편작의 형은 있긴 했는데 처방전이 부실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소화약제와 관련해서는 '화재 예방, 소방시설 설치 유지 및 안전관리에 의한 법률'에 따라 소방청이 고시하는 화재안전기준에 규정돼 있다. 이 기준 제7조에 계산식은 나오는데 좀 복잡하다. 결론적으로 SK 배터리실 체적이 8439㎥인데 이에 맞는 소화약제량은 4472㎏이다. 요건은 충족. 그런데 이 분량으로 불을 끄지 못했으니 문제다. 리튬이온배터리는 납축전지와는 다르다. 납축전지야 안이 황산과 납으로 구성돼 있고 겉은 플라스틱이다. 불나면 그냥 플라스틱은 녹고 안은 잘 타지 않는다. 반면 리튬이온배터리의 경우 셀 안에 있는 전해액이 불이 붙는 유기물이며 밀폐가 돼 있어 한 곳에 불이 붙으면 폭발이 일어난다. 그래서 이에 대한 소화약제의 기준이 충분한지는 따져봐야 한다는 전문가들이 많다.

요약하자면 이태원과 카카오 참사의 교훈은 단순하다. 세 가지다. 첫째, 사고 예방은 사람이 아닌 기계가 해야 한다는 점. 휴먼 에러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둘째, 그 기계의 핵심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인데 그 기능을 고도화할수록 훨씬 정확하게, 그리고 사전에 위기 징후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 이태원에 사람이 어느 정도 몰리는 게 사물인터넷으로 파악되고 그 데이터가 모여 인공지능이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사람 판단 개입 없이 전철은 안내방송이 나가고 이태원역은 무정차 통과하는 그런 식의 시스템이다. 세 번째 기계가 인지한 후에는 충분한 예방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 판교 데이터센터에 화재를 인지했는데 불도 제대로 끄지 못할 정도의 소화약제가 뿌려지면 곤란하다. 리튬이온배터리와 납축전지가 동일 조건의 화재 진압 규정에 묶여 있다면 그건 화학의 화 자도 모르는 무식의 소치다.

사실 이런 예방활동은 재난 예방이든, 설비 보전이든 목적은 달라도 많은 기업들이 실천하고 있다. 소위 스마트공장인데 디지털로 모든 게 이뤄진다. 대표적 현장을 찾아봤다. 충청북도 청주시에 소재한 심텍이란 회사다. 1987년 충북전자로 시작한 이 회사는 반도체 인쇄회로기판(PCB)을 만드는 기업으로 코스닥 상장업체다.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작년 매출이 1조3000억원을 넘어서는 PCB 세계 1등 기업이다. 중국 일본에도 공장이 있고 최근엔 말레이시아까지 진출했다.

PCB라는 제품은 반도체칩을 올려놓는 녹색 필름이다. 표준 규격은 51.3㎝×41.3㎝ 직사각형인데 이걸 잘라서 사용한다. 가격으로 치면 2만~4만달러 정도. 여기에 반도체칩이 100개 정도 올라가는데 그 칩의 가격은 PCB의 30~40배는 된다. PCB 자체도 비싸거니와 거기에 올려놓는 반도체는 더더욱 비싼 제품. 그러다 보니 두 개의 제조원칙이 있다. 첫째. 불량을 최소화한다. 둘째, 불량품이 고객에게 안 가도록 한다. 그런데 불량품이 생기는 건 장비의 결함이 주원인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설비는 구리 도금 설비다. 청주 공장에 가면 34m 길이의 라인이 있는데 여기서 전기가 통하도록 구리를 도금하고 그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라인 위로 약 20개의 펌프가 있다.

심텍은 2019년 핵심 인재 한 명을 스카우트했는데 그가 이 공장의 혁신을 가져왔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을 나와 1989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송문섭 회장. 이건희 전 회장이 비서실 기술팀으로 발령 낸 핵심 인재인 그는 삼성을 나와 스마트폰 제조업을 직접 경영하다 리인터내셔널이란 특허법률사무소에 고문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다.

그는 "2018년 매일경제가 주도한 부트캠프 독일 투어에서 소위 디지털전환(DX)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며 "이듬해 심텍에 고문으로 영입돼 이를 실현할 기회를 잡았다"고 한다. 심텍에는 총 621대의 주요 공정 장비가 있는데 이 중 예방 차원에서 점검하는 비율이 22%밖에 안 됐다. 매뉴얼이 있긴 한데 이러저런 이유로 실천하지 않았다. 돈도 돈이지만 "설마 고장 나겠어" 하는 사고나 재난으로 치면 일종의 '안전불감증'이 만연했다. 실제 고장이 잦았다. 월평균 246건. 고장이 나면 라인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사후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크다. 따져보니 투자금액보다 더 큰 손실이 났다. 이걸 올해 초 94%까지 올렸다. 그랬더니 고장이 월 22건으로 줄었다. 10분의 1 수준이다. 고장률로 치면 3.5%.

송 회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건 일종의 예방(Preventive)보전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규정대로 하는 것이지요. 그 결과치를 눈으로 직접 보니 직원들의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정작 하고 싶었던 일, 예지(Predictive)보전에 착수했습니다. 이걸로 나머지 3.5%를 잡겠다는 것이지요."

편작의 형처럼 얼굴빛만 봐도 병세를 알 수 있는 것. 기계의 진동과 소음, 그리고 온도만 봐도 언제 고장 날지를 알 수 있는 것. 그건 사람이 못 한다. 기계가 한다. 기계가 주는 데이터를 보면 사람이 할 수 있느냐? 그것도 불가능하다.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짜서 인공지능이 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실시간 받아 보지만 사람이 놓칠 수도 있다. 그래서 자동으로 알람이 울리고 그때 자동적으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심텍이 이런 시스템을 도입한 건 약 1년 전이다. 문제가 있다. 데이터 축적이 덜 됐다. 예를 들어 펌프에 설치된 센서가 신호를 준다. 그 신호는 앞으로 30~180일 후에 고장이 난다는 시그널이다. 오차범위가 너무 크다. 이걸 줄이기 위한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데이터가 더 축적돼야 한다. 그래서 심텍의 예지보전 시스템은 이제 시작이다.

"그렇게 하니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한 입증자료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송 회장은 '편작의 형'으로 역습을 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해서 부품을 교체한 걸 두 건 봤더니 안 했으면 얼마 안 가 사고가 날 게 확실했다"며 "시간이 지나면 고장률이 0에 수렴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걸로 증명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시골 중견기업보다도 못한 국가 재난방지시스템. 심텍 가서 한 수 배웠으면 한다.

'사람과 현장'은…

머리보다는 가슴, 가슴보다는 발로 쓰는 글을 좋아한다. 경제기사가 따분한 이유는 발로 쓰지 않고 머리로 써서 그렇다. 발품을 팔아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쏘다니다 보면 글이 나온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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