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채 위기에 은행들 ‘소방수’ 역할 투입…‘밑빠진 독’ 우려도

정민하 기자 2022. 11. 2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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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 시장에 은행들이 소방수로 나섰다.

하지만 올해 한전이 30조원의 적자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구하기 어려운 다른 기업들도 은행으로 몰리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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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 시장에 은행들이 소방수로 나섰다. 한국전력공사(한전)에 최소 2조원 규모의 자금을 대출해주기로 하면서다. 대규모 한전채 물량이 쏟아지면서 자금을 빨아들이면 다른 채권 금리가 치솟고 유동성 부족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올해 한전이 30조원의 적자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구하기 어려운 다른 기업들도 은행으로 몰리는 상황이다. 은행채 발행도 여의치 않다. 이 때문에 한전 대출이 ‘밑빠진 독’이 될 것이란 지적도 일각에서 나온다.

한국전력 서울본부. /뉴스1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한전의 운영자금 차입을 위한 은행권 대출 1차 입찰에 참여해 6000억원을 대출해주기로 했다. 이어 우리은행이 2차 입찰에 참여해 9000억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대출금리는 5%대 중반에서 6%대 안팎으로 알려졌다. 은행들은 금융당국과 협의를 통해 한전에 2조원 정도를 공급하기로 했었는데, 추후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도 순차적으로 대출을 실행할 것으로 보인다. 4대 은행이 분담해 한전에 자금을 융통해주기로 한 셈이다.

은행이 한전 대출 창구로 나선 배경엔 정부의 금융시장 안정화 조치가 있다. 올해 들어 적자 폭이 커진 한전은 자금 조달을 위해 대규모 회사채(한전채) 발행에 나섰다. 자금시장 혼란이 본격화된 지난달 이후만 해도 3조1300억원어치 한전채를 발행했는데, 신용도 AAA급 우량 채권인 데다 6%에 육박하는 고금리로 한전채에 자금이 몰렸다.

고금리에 최상위 신용등급인 한전채로 투자 수요가 쏠리자,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은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다. 이른바 ‘한전 블랙홀(한전채로 시중 자금이 흡수되는 현상)’ 사태다. 시장이 빠르게 위축되자 정부는 채권시장 안정화를 위해 한전이 한전채를 발행하는 대신 은행 대출을 늘려 자금을 조달하도록 했다.

은행이 한전에 대한 대출을 실행하면서 ‘블랙홀’처럼 시중자금을 빨아들이던 한전채 사태는 다소 진정될 전망이다. 그러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다. 한전이 올해 30조원 이상의 영업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당분간 자금 수요가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내년까지 한전을 대상으로 3~4조원 규모의 대출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 중구 한 시중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관계자가 5만 원 권 지폐들을 정리하는 모습. /연합뉴스

국회도 한전의 추가 자금 조달 가능성을 열어줬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소위는 전날인 22일 한전채 발행 한도를 자본금과 적립금을 더한 금액의 기존 2배에서 5배로 높이는 내용의 한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한전채는 내년 3월 결산 시점 이후 회사채 발행 한도가 줄어들어 그 이후 회사채를 발행하면 한전법을 위배할 수 있다. 영업 적자인 한전은 대규모 당기순손실이 적립금에 반영되면 현행법상 회사채를 더는 발행할 수 없다.

은행권에선 어려운 시장 상황을 고려해 한전에 대한 자금지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최근 당국 요청에 따라 회사채 시장 안정을 위해 은행채 발행을 줄이고 있어서다. 한전채와 함께 채권시장 자금을 빨아들여 온 은행채는 은행들의 주요 자금 조달 창구다. 여기에 당국이 다른 돈줄인 정기예금 등 수신 금리 인상을 자제하라고 압박하면서 은행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기 처방 대신 한전에 유동성을 공급할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기요금을 대폭 인상하지 않는 한 적자 구조가 바뀌지 않아 한전이 계속 ‘자금시장의 블랙홀’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한전 역시 자체적으로 불필요한 자산을 매각하는 등 기업 경영 개선 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실상 당국이 시중은행에 유동성 공급의 구원투수 역할을 주문한 셈인데, 은행채 발행 규제 등으로 인해 은행도 자금조달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긴 마찬가지”라면서도 “레고랜드, 흥국생명 발(發) 사태에 한전까지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채권시장이 단기간에 안정되긴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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