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있어요!" 외친 바리스타 로봇… 5초 만에 라테 위 낙엽을 그렸다 [영상]

이서희 2022. 11. 23.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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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봇 카페 '아틀리' 이용해 봤더니...
스타트업 투자 가뭄 속 112억원 유치
아틀리 커피의 인공지능 기반 커피 제조 로봇. 방금 아이스 아메리카노 제조를 마친 이 봇의 이름은 '아만다'다. 눈이 달린 얼굴이 꽤 귀엽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미국의 연중 최대 할인 행사 블랙 프라이데이(추수감사절 다음 날인 금요일)를 사흘 앞둔 22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대형 아웃렛을 찾아갔더니, 어느 카페 앞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유명 연예인이라도 본 듯한 들뜬 표정으로, 매장 안쪽을 향해 열심히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이날 인파를 모은 주인공은 바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 로봇, 아만다와 자비스였다.

카페 스타트업 아틀리(Artly)가 지난해 문을 연 아틀리 커피는 인공지능(AI) 기반의 바리스타 로봇을 이용해 커피를 제조한다. 이미 로봇이 서빙하고, 배달하고, 치킨도 튀기는 시대지만, 아틀리 봇은 채용 1년여 만에 이 일대 명물이 됐다. 눈길을 사로잡을 수밖에 없는 귀여운 외모, 라테아트(우유 거품으로 음료 표면에 그리는 그림)까지 해내는 신통방통한 실력이 아틀리 봇의 매력 포인트다. 매장엔 수시로 아틀리 봇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저는 라테에 자신 있어요! 한 번 주문해보세요."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 기자도 커피를 주문해 봤다.


로봇이 라테 위에 낙엽, 하트도 그린다

주문은 매장 앞에 비치된 태블릿 PC 또는 아틀리 커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한다. 기자가 시킨 아이스 아메리카노 가격은 3.95달러(약 5,340원)이고, 카페라테는 4.95달러(약 6,692원)로 다른 카페와 큰 차이가 없다. 취향껏 메뉴를 고르고, 이름과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면 예상 대기 시간이 안내된다.

바리스타 로봇을 둔 카페들은 보통 로봇 보호를 위해 손님과 로봇 사이에 유리벽을 설치해 둔다. 그러나 이곳은 로봇 사방이 훤히 뚫려 있어 로봇이 커피 만드는 모습을 자세히 지켜볼 수 있다.

로봇이 일하는 것을 구경하다 보니 기자가 주문한 커피가 아만다에 배정됐다고 매장 모니터에 표시됐다. 아만다는 무심하지만 착실하게 움직였다. 일단 원두를 곱게 갈아 커피 기계에 꽂더니, 에스프레소가 추출되는 동안 아이스커피용 컵을 집어 들어 얼음을 받고, 또 물을 받았다. 그리고는 뽑아낸 에스프레소까지 넣어 커피를 완성했다. 이렇게 한 잔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대략 3분이었다.

아만다 옆에선 자비스가 카페라테를 제조 중이었다. 자비스는 우유 거품 위에 낙엽을 그려냈다. 때론 하트도 그린다고 한다. 커피 제조 솜씨만 보면 아틀리 봇들은 사람 바리스타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아직 실수 잦아... 사람 직원 도움 필요

그러나 아직은 로봇 아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매장엔 아틀리 봇들을 보조하는 직원이 한 명 상주하고 있었다. 그는 "아틀리 봇은 커피 만드는 일만 한다"며 "매장을 닦고 치우고, 재고를 채우고, 손님에게 일이 생겼을 때 해결하는 것은 내 역할"이라고 했다. 실제로 아만다와 자비스가 일하는 것을 유심히 보니, 인간 직원의 도움이 꼭 필요해 보였다. 얼음 기계 정위치에 컵을 놓지 않아 얼음 절반이 커피 밖으로 떨어지는가 하면, 커피를 옮기다 살짝 흘리는 실수도 했다.

'멀티 태스킹'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바리스타 로봇의 약점이다. 주문이 몰리면 여러 메뉴를 동시에 제조하거나 속도를 좀 내주면 좋은데, 이들은 아직 그게 안 된다. 정해진 대로 움직이다보니 손님이 많을 땐 주문량에 비례해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지지 않는 한, 차라리 사람 직원을 더 고용하는 게 시간당 매출이 잘 나올 것 같았다.

미국 캘리포니아 리버모어 아웃렛 내의 카페 아틀리 커피. 22일 바리스타 로봇 아만다, 자비스와 함께 이들을 보조하는 사람 직원이 근무 중이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에도 112억원 유치

그래서 카페 이용 소감은? 한 번은 신기해서 시켜봤지만, 굳이 두 번 갈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손님들의 생각도 비슷한 듯했다. 카페라테를 시킨 한 여성 중국인 관광객은 "20분 넘게 대기했다"며 "구경하는 재미로 기다리긴 했지만 바빴다면 그냥 취소하고 갔을 것"이라고 했다.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지만,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서도 아틀리 커피는 지난달 830만 달러(약 112억 원)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바리스타 로봇의 미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미국은 인건비가 특히 비싸 인력 대체 로봇에 대한 관심이 많고, 팬데믹을 계기로 비접촉식 서비스도 보편화하면서 로봇 산업에 계속 돈이 몰리고 있다.

시애틀에 기반을 둔 아틀리는 현재 실리콘밸리 일대 등에 7개 매장을 두고 있는데, 스타벅스 같은 대형 체인으로 키우는 게 목표라고 한다. 아틀리 같은 로봇 카페가 스타벅스처럼 흔해진다면, 사람 바리스타를 카페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지는 세상이 생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를 일이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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