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는 갈등·저항·진보·존중의 역사"

송광호 2022. 11. 23.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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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언론인이 쓴 '자유주의' 출간…자유주의의 200년史 조명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자유'라는 말만큼 우리가 흔히 쓰는 말도 없을 것이다. 일상생활은 물론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자유라는 단어는 자주 사용된다. 하지만 여기에 '주의'(主義)라는 말이 붙으면 말의 무게가 조금 달라지고, 그 내용도 어려워진다. '자유주의'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개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정치 전문기자 에드먼드 포셋이 쓴 '자유주의'(글항아리)는 자유주의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최근 번역 출간된 이 책에서 저자는 183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약 200년간 자유주의가 걸어온 길을 꼼꼼하게 조명한다. 그는 자유주의 정치사상가를 중심으로 자유주의라는 개념이 어떻게 형성돼 왔는지 고찰한다.

에펠탑 상공 수놓은 대혁명 기념 불꽃놀이 (EPA=연합뉴스)

저자에 따르면 자유주의를 한 개의 개념으로 깔끔하게 정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고, 또한 바람직하지도 않다. 자유주의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여러 비극적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과 이런저런 사상이 뒤섞이면서 만들어진 이론이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단시간에 문자로 정리한 성문법이라기보다는 오랜 세월에 걸쳐 관습에 따라 만들어진 불문법에 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는 이렇게 세월과 함께 여러 사상이 스며들었지만 크게 네 가지 정도의 사상적 뿌리를 갖는다.

우선 갈등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16~17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종교전쟁, 이어진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경험에 기인한다. 콩스탕·토크빌·밀 같은 초기 자유주의자는 다양성을 환영했고, 사회 통합을 불신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들은 분열에서 물질적·지적 창의력의 바람직한 잠재력을 보았다"고 설명한다.

두 번째는 권력에 대한 불신이다. 이는 권력은 견제되지 않으면 무자비해질 수밖에 없다는 인간의 오래된 지혜에 근거한다. 가만히 두면 권력은 소수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법과 제도를 마련해 권력에 저항해야 한다고 자유주의자들은 주장했다.

진보에 대한 믿음이 자유주의의 세 번째 뿌리다. 자유주의자들은 진보가 사회와 시민을 덜 무질서하게 만들 것으로 생각했다. 훔볼트는 교육을 통해, 경제학자 마셜은 경제성장과 번영의 확산을 통해, 스마일스는 자기 계발이나 도덕적 고양과 같은 개인의 발전에서 진보를 찾았다.

네 번째는 모든 이를 시민으로 존중하라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국가와 사회가 사람들을, 그가 어떤 사람이건 어떤 생각을 가졌건 상관없이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동조단식 투쟁 시작 [연합뉴스 자료사진]

자유주의는 이런 네 가지 요소를 빠짐없이 고수해야 한다. 그러나 이 네 가지 개념이 상충하거나 섞이면서 내용이 변형되고, 자유주의의 스펙트럼도 또한 넓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컨대 전통적인 관점에서 토크빌은 자유주의자고 마르크스는 자유주의자가 아니지만, 일각에서는 마르크스를 자유주의자로 보기도 한다는 것이다.

시기별로도 자유주의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은 다양한 이론을 쏟아내며 자유주의 발전에 토대를 마련했다. 훔볼트는 인간 능력의 무한함을 가장 소중히 여겼고, 콩스탕은 프라이버시의 절대성을 강조했다. 밀은 가치 있는 삶의 방식과 개별성의 증진을 이야기했다. 이런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자유주의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1880년에서 1945년까지, 자유주의자들은 깊은 좌절을 맛봤다.

자유주의자들은 교육과 문화의 발전으로 합리적 시민이 양성될 것으로 예측했으나 기대와 달리 인종차별, 반유대주의, 호전적 제국주의, 배타적 증오를 조장하는 이들이 선거에서 승리했다. 유럽은 파시즘으로 물들었다.

게다가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무역과 경제적 상호 의존도 평화와 친선을 보장하지 못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이 이를 방증한다. 1930년대 대공황이 발생하자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방임 시장조차 고집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와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책 표지 이미지 [글항아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1945년부터 1989년까지는 복지국가 등의 이념과 결합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주목받았다. 중산층이 늘면서 계급 갈등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베를린장벽까지 무너지면서 자유민주주의는 세상의 중심 이론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그 위상이 추락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1세기 들어 비자유주의적이고 반민주적인 강경 우파가 득세하고, 경제난과 불평등의 가중되면서 자유주의가 다시 한번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저자는 자유주의가 몰락의 길을 가지 않으려면 자유주의자들의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만약 21세기 자유주의자들이 이전 자유주의자들처럼 저항, 진보, 존중이라는 목표를 새로운 도전에 걸맞게 재고할 수 있다면, 만약 그들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많은 결점을 일부라도 고쳐보려고 정치적 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희망의 동상 아래 자유주의를 묻어버리기는 아직 너무 이를 것이다."

신재성 옮김. 828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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