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강제동원 역사 감춰…7년째 약속 안 지키는 일본

김소연 2022. 11. 2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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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도쿄 ‘산업유산정보센터’ 가보니, 역사왜곡 여전
유네스코 경고장 일본, 새달 1일까지 이행보고서 내야
일본 도쿄 신주쿠구 ‘산업유산정보센터’ 내부에 조선인 강제노동으로 악명이 높은 하시마(군함도)의 모습이 파노라마 영상으로 전시돼 있다. 산업유산정보센터 제공

“하시마 사진을 빼고는 바뀐 것이 없습니다.”

18일 오전 도쿄 신주쿠구 일본 총무성 제2청사 별관 1층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 센터 관계자는 지난해와 달라진 전시 내용이 있느냐는 <한겨레> 취재진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군함도’로 불리는 일본 나가사키 앞바다에 있는 하시마의 전경 사진만 좀 더 잘 나온 것으로 바뀌었고, 나머지는 그대로라고 했다. 전시 내용 변경 계획에 대해선 “(일본) 정부가 결정하는 일이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2시간여 동안 전시를 보러 온 사람은 1명뿐이었다. 센터는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내부 사진은 찍을 수 없고 방문 시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를 적는다. 다른 전시관과 달리 굉장히 엄격하게 운영되고 있다.

2020년 3월 문을 연 이 센터는 1078㎡ 크기로, 3개의 전시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일본의 산업유산 개요(1구역)와 산업화 모습(2구역)을 담은 전시를 지나면 한-일 사이에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는 군함도와 관련한 코너가 나온다. 전시를 샅샅이 둘러봤지만 조선인 강제동원, 가혹한 노동 환경, 차별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군함도에서 겪은 참혹한 역사적 사실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이를 부정하는 내용만 가득했다.

‘진실의 역사를 추구하는 하시마 도민회’ 마쓰모토 사카에 명예회장의 증언이 대표적이다. 태평양전쟁 시기 군함도 탄광에서 일한 그는 “적어도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조선인은 일본의 국민이었다.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었겠는가”라고 말했다. 그의 증언은 요약돼 별도로 전시돼 있고, 영상으로도 무한 반복되고 있다. 군함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재일동포 2세 스즈키 후미오의 생전 증언도 “주위 사람에게 귀여움을 받았다. 조선인이라며 손가락질을 당한 적도 없다”는 내용 위주로 전시돼 있다.

이에 반해 15살 때 군함도 탄광에 끌려가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고 호소하다 2001년 사망한 서정우씨와 “군함도는 지옥같았다”고 증언한 최장섭 할아버지(2018년 89살로 별세) 등 조선인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아예 빠져있다.

2015년 7월5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일본대사가 한국인의 강제 노역 사실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지난해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이 근대 산업시설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당시 권고한 후속 조처를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을 채택했다. 유네스코는 2015년 7월 군함도를 포함한 일본 근대산업시설 23곳이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당시 일본 정부에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해석 전략’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사안이기도 했다. 2015년 7월 사토 구니 당시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정보센터 설립 등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해석 전략에 포함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이 전체 역사를 알리겠다고 만든 것이 산업유산정보센터로 7년이 지난 지금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유네스코의 경고장을 받은 일본 정부는 내달 1일까지 이행보고서를 내야 한다. 이행 여부에 대해선 아직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도쿄 신주쿠 일본 총무성 제2청사 별관 1층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 건물 모습. 도쿄/김소연 특파원

일본 강제동원 관련 시민단체들은 유네스코의 권고를 이행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크워크’는 지난 9월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권고를 이행해 나가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보여줄 의사가 있다면 가토 고코 산업유산정보센터장을 해임해야 한다”는 요청서를 기시다 후미오 총리 등에 보냈다. 가토 센터장이 유네스코를 공공연히 비난하고, 이 센터의 해설전략 등의 형태를 고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야노 히데키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사무국장도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일본 산업혁명유산이 진정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센터를 그대로 방치해 놓은 정부가 어떤 이행보고서를 제출할지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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