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와 달, 그리고 닳은 사발···‘연결의 미학’으로 재탄생하다

도재기 기자 2022. 11. 2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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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익중 작가, 갤러리 현대서 ‘달이 뜬다’ 작품전
신작과 유명 연작 등 200여점 출품
“인간과 자연, 남과 북, 너와 나의 연결 통해 풍요로운 세상 꿈꿔”
국제적으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는 강익중 작가가 갤러리 현대에서 작품전을 열고 있다. 사진은 달과 달무지개를 표현한 강익중의 신작 ‘달이 뜬다’(2022)의 전시 전경. 갤러리현대 제공
강익중의 드로잉 연작 ‘달이 뜬다’ 전시 전경. 갤러리현대 제공

그는 예술가의 상상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갈등과 대립·혐오보다 조화와 배려·공존으로 보다 풍요로운 그런 세상으로다. 동양과 서양, 인간과 자연이 공존·공생하고, 분단된 남한과 북한이 하나가 되며, 성별과 인종·종교 등은 다르지만 서로 연결되고 이어져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 강익중(62)은 그래서 미술가로서 연결과 공존의 가치와 의미를 작품에 끈질기게 담아 오고 있다. 캔버스만이 아니라 공원·광장 등 국내외의 공공미술 작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존재와의 연결은 우리 삶의 필수적 요소인데 예술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그는 “작가로서 제 역할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미국 뉴욕을 기반으로 국제적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강 작가가 갤러리현대 신관·두가헌에서 작품전 ‘달이 뜬다’를 열고 있다.

처음 선보이는 신작과 더불어 ‘달항아리’ 등 유명 연작, 설치, 공공미술 아카이브 등 모두 200여점이 출품됐다. 출품작 저마다에 연결과 공존의 아름다움, 의미 등이 녹아들어 그의 작품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다. 전시장에서 만난 강 작가는 “끊어진 것들을 잇는 게 제 역할이고, 하늘과 땅 사이를 연결하는 안테나가 저”라며 활짝 웃는다.

신작 ‘달이 뜬다’는 달무지개를 형상화한 9점의 개별 작품이 하나로 모여 설치된 작품, 마치 구름이 지나는 듯한 둥그런 보름달을 표현한 작품, 드로잉 연작 30여점 등으로 모두 같은 작품명을 달고 있다. 보기 힘든 달무지개를 본 순간을 담으려 한 작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지러지는 달과 달무지개가 묘한 대비와 조화를 이룬다. 드로잉 연작은 밝고 경쾌한 색, 자유로운 붓질이 두드러진다. 종이에 먹으로 산과 들, 집, 사람, 달과 달항아리, 강아지, 새 등을 그리고 다양한 색의 오일 스틱을 사용했다. 인간과 동물, 자연의 공존이 읽혀진다.

연작 ‘달항아리’는 잘 알려진 그의 대표작이다. 둥그런 보름달을 닮은 백자 달항아리는 많은 작가들의 소재다. 도예는 물론 회화·조각·사진·영상 등 여러 작가들이 끊임없이 변주하고 있다. 강 작가는 풍요를 상징하는 달항아리의 형태와 함께 위아래 부분을 따로 만든 뒤 하나로 붙여 구워내는 독특한 달항아리 제작방식에 특히 이끌렸다. 둘을 하나로 연결해 융합하는 제작의 상징성을 오롯이 담아내려는 게 그의 달항아리 작품이다.

10여년에 걸쳐 수집한 닳은 밥그릇 사발들과 비무장지대에서 녹취한 새 소리로 분단된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적 연결을 기대하는 설치작품 ‘우리는 한 식구’(2022) 전시 모습. 갤러리현대 제공

설치작품 ‘우리는 한 식구’는 수백개를 쌓아 놓은 옛 사발과 새 소리로 구성됐다. 닳은 사발은 분단 이전 남북한 모두가 사용하던 사기 밥그릇이다. 남북한 사람들이 언젠가는 한 식구처럼 따뜻한 밥을 함께 나눠 먹는 날에 대한 기대가 담겼다. 사발은 작가가 10여년 동안 수집한 것이고, 새 소리는 남북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에서 녹취했다.

소소한 설치 작품이지만 최근 화해보다 대립 일변도로 긴장이 높아지는 남북관계 속에서 분단의 아픔과 안타까움, 분단체제의 한계를 새삼 떠올리게 한다. 강 작가는 “‘우리는 한 식구’에서 ‘우리’는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존재, 남과 북 등을 뜻한다”며 “한 식구처럼 정답게 밥을 나눠 먹는 그 언젠가를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밥그릇들마다에 끊어진 남북의 연결을 시도하는 작가의 뜻이 깊게 스며들어 있다.

강익중의 대표적 연작인 ‘달항아리’(2018-2022, 나무에 혼합재료, 187 x 187 x 10 cm, 왼쪽)와 ‘달이 뜬다’(2022, 린넨에 아크릴릭, 120 x 120 x 4 cm). 갤러리현대 제공
강익중의 연작 ‘산’(2020, 나무에 혼합재료, 왼쪽) 설치 전경과 작품의 세부 모습. 갤러리현대, 도재기

‘우리는 한 식구’와 같은 공간에 배치된 ‘산’ 연작은 높이 4m에 가까운 작품으로 장엄한 풍경의 수묵산수화 같다. 사실 가로·세로 48㎝의 작은 개별작품 수십개가 모여 큰 화면을 구성한다. 특히 개별작품은 채색을 한 높이가 다른 작은 나무 조각 수십개로 구성됐다. 자그마한 나무 조각이 개별작품으로, 개별작품이 결국 큰 ‘산’을 이룬 것이다. 화면을 불로 태우거나 그을려 깊고 묵직한 세월의 흔적을 시각화했다.

강익중의 연작 ‘내가 아는 것’(2003-2022, 나무에 혼합재료, 가변 설치, 왼쪽 뒷편) 설치 전경과 작품의 세부 모습. 갤러리현대, 도재기.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작가가 선보인 공공미술 프로젝트 자료들, 그의 작품철학을 잘 보여주는 연작 ‘내가 아는 것’ 등도 관람객을 맞는다. ‘내가 아는 것’은 가로·세로 3인치(약 7.6㎝) 크기의 나무 패널 수백개에 한글·알파벳·달항아리 등을 그려넣은 작품이다. 언뜻 보면 별 의미 없어 보이지만 글자들을 연결하면 단어가 되고 단어들은 갖가지 문장이 된다. 보고 읽는 재미가 있으면서도 연결성이라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도드라진다.

공공미술 프로젝트 자료는 23개국 어린이 1만2000여명의 그림을 모아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설치한 ‘광화문 아리랑’(2020) 등 국내외 작업 스케치 등이다. 특히 남북한 어린이·실향민들의 그림을 모아 임진강에 남과 북을 잇는 다리 설치 작업인 ‘임진강 꿈의 다리’의 구상안도 볼 수 있다. 강 작가는 “이 구상안은 2015년에 발표했는데 아직 실현되지 못해 안타깝다”며 “여전히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결국 그 꿈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12월11일까지.

도재기 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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