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詩:選)>나선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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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다보면// 발 아래서 누군가의 머리가/ 머리 위에서 누군가의 발이/ 차곡차곡 쌓여 꿈틀거립니다// 11월은 나 혼자 쌓은 것이 아니어서/ 단풍을 따라 뛰어내릴 수 없습니다.// 계단 혼자서 계단을 오르내립니다.'
내가 운영하는 서점은 나선계단 위에 있다.
책 꾸러미들을 나르거나 화장실에 오갈 때, 누군가를 마중하거나 배웅해야 할 때 빙글빙글 돌며 삐걱삐걱 소리 내면서 오르내리는 나선계단.
이 나선계단이 그저 좋은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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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다보면// 발 아래서 누군가의 머리가/ 머리 위에서 누군가의 발이/ 차곡차곡 쌓여 꿈틀거립니다// 11월은 나 혼자 쌓은 것이 아니어서/ 단풍을 따라 뛰어내릴 수 없습니다.// 계단 혼자서 계단을 오르내립니다.’
- 심언주 ‘계단이 오면’(시집 ‘처음인 양’)
내가 운영하는 서점은 나선계단 위에 있다. 서점에 닿거나 떠나려면 이 나선계단을 통과해야 한다. 이 방법뿐이어서 나는, 하루에 수십 번씩 오르내린다. 책 꾸러미들을 나르거나 화장실에 오갈 때, 누군가를 마중하거나 배웅해야 할 때 빙글빙글 돌며 삐걱삐걱 소리 내면서 오르내리는 나선계단.
이 나선계단을 사람들은 신기해한다. 흔치 않은 모양과 형식 때문일 것이다. 이 작은 서점의 상징물이 된 계단을 가장 사랑하는 것은 아이들이다. 에너지 넘치는 그들은 일단 계단을 오르고 본다. ‘이 신기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근사한 사건이 일어날 거야.’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선계단은 위험하다. 아이들이 덥석 계단에 올라서면 나는 화들짝 놀란다. 그쪽으로 가서 아이들의 소매를 잡고 그들이 무사히 올라갈 수 있게, 혹은 내려갈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용감히 올라섰지만, 올라가기 쉽지 않고, 어느덧 내 팔에 기대고 마는 그들의 작고 따뜻한 균형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사실, 계단에서 데굴데굴 구른 사람은 나뿐이다. 나만 조심하면 된다.
이 나선계단이 그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혼자의 힘으로 걷기 어려운 사람들.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을 짚은 이들이 찾아와 물끄러미 계단을 볼 때면 미안해지고 나선계단이 싫어지기도 한다. 다음엔 1층에 서점을 하고 싶다 바라면서. 그래도 ‘나선계단의 시절’. 나는 지금의 나와 나의 환경을 이렇게 기억하고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빙글빙글 돌며 삐걱삐걱 소리 내는 내 청춘의 한때로.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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