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혼란 더 키운 말레이 조기총선…정부 구성 난항
(방콕=연합뉴스) 강종훈 특파원 = 계속된 정치적 혼란을 끝낸다는 명분으로 실시된 조기 총선 이후 말레이시아가 더 큰 혼돈에 빠졌다.
사상 처음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당연합이 나오지 않은데다 연정 구성도 여의치 않아 선거 이후 며칠째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총리 지명 권한을 가진 국왕이 나섰으나 곧바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제3당이 연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나서면서 소수 정부 출범 가능성마저 생겼다.
말레이시아는 지난 19일 제15대 총선을 치렀으나 단독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나 연합은 없었다.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가 이끄는 희망연대(PH)가 82석으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고, 무히딘 야신 전 총리의 국민연합(PN)이 두 번째로 많은 73석을 얻었다. 이스마일 사브리 야콥 현 총리가 소속된 국민전선(BN)은 30석에 그쳤다.
전체 222석인 하원에서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하려면 과반인 112석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개표 완료 이후 PH와 PN이 서로 집권에 필요한 과반 의석을 확보해 연정을 구성할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 혼란이 빚어졌다.
이에 압둘라 국왕이 총리 지명을 위한 의회 의견 수렴에 나섰다. 말레이시아 국왕에게는 과반수 의원의 신임을 받는 의원을 총리로 임명할 권한이 있다.
선거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있으면 국왕의 총리 임명은 상징적인 절차가 되지만, 총리 사임 시 등 특수한 경우에는 국왕이 의회 의견을 바탕으로 신임 총리를 결정한다.
왕실은 애초 21일 오후까지 각 연합에 지지하는 새 정부와 총리 후보를 제출하라고 요청했고, 정치권의 논의가 길어지자 시한을 하루 연장했다.
마감 시한이 지난 22일 오후 국왕은 PH와 PN 지도자인 안와르와 무히딘을 불렀다. 그러나 이날 새 정부와 총리는 발표되지 않았다. 두 연합 모두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킹 메이커' 역할을 하게 된 현 집권 연합 BN이 불확실성을 키웠다. PH와 PN 모두 과반 의석을 확보하려면 BN과 손을 잡아야 한다.
애초 BN은 지지 기반이 비슷한 PN과의 연대가 점쳐졌으나 선거 이후에는 오랜 정적인 PH와 연정 구성 협상에 나서는 등 수상한 행보를 보였다.
그러다 BN 지도부는 돌연 PH와 PN 어느 연합도 지지하지 않고 야당으로 남겠다고 밝혔다. BN이 연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소수 정부가 출범할 수밖에 없다.
23일 베르나마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BN 내부에서도 의원 간 의견이 엇갈리는 등 분열 양상을 보였다. 결국 국왕은 BN 의원 30명을 이날 오전 따로 만나 개인별로 지지하는 총리를 묻기로 했다.
BN은 말레이계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을 중심으로 1957년 독립부터 2018년까지 장기 집권한 세력이다.
PH는 BN의 부정부패를 비판하고 개혁을 주장하며 2018년 총선에서 61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뤘다. 그러나 PH 정권이 내부 분열 등으로 무너지면서 말레이시아는 14대 총선을 통한 새 정부 출범 이후 총리가 두 차례 더 바뀌는 등 혼란이 이어졌다.
BN 정권에서 22년간 총리를 지낸 마하티르 모하맛이 야당 지도자로 변신해 PH 정권 첫 총리를 맡았으나 2020년 사임했다. 이어 총리가 된 무히딘 야신이 지난해 8월 물러났고, 국왕이 후임으로 UMNO 소속인 이스마일 현 총리를 지명하면서 BN이 다시 정권을 쥐게 됐다.
BN 정권의 핵심 정당인 UMNO는 더욱 강력한 정권 창출을 노리며 조기 총선을 압박해 성사시켰다. 그러나 제3당으로 밀리는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데 이어 정부 구성에도 '몽니'를 부리며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이스마일 총리는 지난달 10일 의회 해산을 발표하면서 "조기 총선을 실시하기로 한 것은 현 정권의 정당성에 대한 비판 때문"이라며 "이제 안정적인 정부를 구성할 권한을 국민들에게 돌려드리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압둘라 국왕도 성명을 통해 "말레이시아의 정치 발전 수준에 실망해 의회 해산 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선거일 이후 며칠째 정부 구성이 되지 않고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말레이 증시가 약세를 보이고 국민들이 불안감이 커지는 등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정치 안정을 위한 조기 총선 결정이 최악의 한 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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