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과기원 예산 이관 논란...혼란에 휩싸인 대학교육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2. 11. 2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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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에 특별회계와 대학 자율의 초대형 태풍이 불어 닥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교육계에 ‘특별회계’와 ‘대학 자율’의 초대형 태풍이 불어 닥치고 있다. 교육부가 내놓은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와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제시한 ‘대학 예산‧규제 권한 지방 이양’ 발언 때문이다. 교육 재정과 대학 교육 정책을 바닥부터 뒤흔들어놓을 역대급 개혁이다. 벌써부터 교육계가 시끌벅적하다. 이미 특별회계를 놓고 기획재정부와 과기정통부가 격하게 충돌했다. 이제는 지방의 초증등 교육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그런데 두 개혁 모두 국회가 법률을 고쳐줘야만 실현이 가능하다. 거대 야당이 틀어쥐고 있는 국회가 정부‧여당의 법안은 무작정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초중등 재정을 나누자는 특별회계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는 장관도 없었던 교육부가 지난 7월 느닷없이 내놓았던 설익은 제안이다. 지난 14년 전부터 정부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는 반값 등록금 정책으로 무너져버린 대학의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라고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고등교육 예산을 초중등 교육에 쓰고 있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충당해보겠다는 것이다.

내국세 20.79%와 교육세의 일부로 조성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고등교육 예산보다 상대적으로 넉넉한 것은 사실이다. 올해 교부금 65조1000억 원 중 내국세 연동 61조5000억 원은 유치원과 초중고교 교육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제화되어 있다. 

학령인구는 줄어들고 있는데, 경제 규모가 늘어나면서 내국세 연동 교부금은 오히려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12년 39조2005억 원에서 25조 원이나 늘어난 규모다. 같은 기간 고등교육 예산은 5조7420억 원에서 12조2000억 원으로 고작 7조 원이 늘어났을 뿐이다. 

더욱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쓰지 못하고 쌓아두게 될 ‘기금’의 규모가 무려 15조1417억 원이나 된다. 지난해 기금 누적액 5조4224억원의 3배에 가까운 엄청난 규모다.

그렇다고 교육 교부금 중 3조 원을 떼어내서 대학혁신, 교육‧연구 환경 개선, 지방대학 육성 등의 목적으로 고등교육에 투자하는 일이 쉬울 수는 없다. 당장 쓸 데가 없어 기금으로 쌓아둘 수밖에 없더라도 틀어쥐고 있어야 하는 것이 예산이다. 교육감들이 자신들의 업무 영역이 아닌 고등교육의 재정난을 걱정해줄 이유가 없다. 당장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유초중고 교육의 질적 저하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격하게 반발했다.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떡을 대학과 나눠가질 생각이 절대 없다는 뜻이다.

상대적으로 넉넉해진 교육 교부금 제도의 개편이 꼭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합리적인 개편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온전하게 교육부의 몫이다. 무작정 줄이겠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시도 교육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교한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교육 교부금이 남아돈다는 교육부의 언론 플레이는 의미가 없다. 교육부가 초중등 교육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도 절대 외면할 수 없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15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특별회계가 만병통치약 아닐 수도

교육 교부금 중에서 3조 원을 떼어내서 11조2000억 원의 규모로 조성하겠다는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가 대학의 재정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특별회계가 대학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섣부른 것일 수밖에 없다.

과기정통부가 관리하고 있는 과학기술원·대구경북과기원·울산과기원·광주과기원의 예산을 교육부가 관리하게 될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로 이관하겠다는 기재부의 어설픈 계획이 무산된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과학기술계의 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어정쩡한 입장이었던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마지막 순간에 적극적인 거부감을 밝힌 결과라고 한다. 예산을 교육부로 넘기면 과기원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기재부의 제안은 과기원 운영비 5252억 원을 과기정통부의 연구개발회계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교육부의 특별회계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긴축 예산을 피할 수 없는 기재부의 입장에서는 과학기술 연구개발 예산에 작은 숨통이라도 터보겠다는 시도였을 것이다. 물론 과학기술원의 예산 편성권과 관리·감독 권한은 여전히 과기원법에 따라 과기정통부가 맡게 된다는 기재부의 순진한 주장이었다. 특별회계의 규모가 충분히 크기 때문에 과기원에 200억 원 정도를 더 배정할 수도 있다는 기재부의 미끼는 설득력이 없었다.

부처간 장벽이 견고한 현실을 무시한 기재부의 제안에 과기계가 발끈했다. 예산 배정권을 잃어버린 과기정통부의 과기원 관리·감독 권한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예산권을 틀어쥐게 된 교육부가 과기원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만다는 것이 과기계의 우려다. 결국 4대 과기원도 일반대학처럼 교육부의 간섭에 시달려 활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 파장은 과학기술계의 연구개발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게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과기계의 거부감은 과기정통부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교육부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기원이 일반대학과 달리 고등교육보다 연구개발을 주로 하는 특수 기관이라는 과기원의 주장도 따져볼 만하다. 과기원이 상당한 성과를 이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기원의 특권 의식은 공정·정의·자유를 외치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일반대학과의 정당한 경쟁을 회피하겠다는 옹색한 변명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일반대학과의 경쟁이 하향평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과기원이 교육보다 연구를 더 강조한다는 주장도 조심스럽다. 과기원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주장이다. 자신의 미래를 위한 교육을 위해서 과기원에 입학한 학생들을 국가 연구개발 사업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연구원으로 둔갑시켜서는 절대 안 된다.

오히려 교육부가 떠안게 될 불편한 진실을 지적하는 것이 더 큰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재부의 제안이 200여 개의 4년제 일반대학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지난 15년 동안 교육부의 강력한 등록금 동결 정책과 과도한 간섭에 시달려온 일반대학의 현실은 참혹하다. 위기에 빠진 일반대학의 입장에서 특별회계로 편입되는 과기원은 볼썽사나운 불청객일 수밖에 없다. 한 푼의 지원금이 아쉬운 일반대학에게 과기원의 넉넉한 운영비는 쉽게 용납할 없는 허세·사치일 수도 있다.

괜한 걱정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에서 이주호 현 교육부 장관이 앞장서서 밀어붙였던 과기부 폐지로 등장한 연구재단의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만족하고 있던 인문·사회 분야의 학자들의 입장이 돌변해버렸다. 과학재단과의 통합으로 과학기술 연구개발 사업의 엄청난 규모가 드러난 것이 문제였다. 결국 인문·사회 분야도 과학기술과 같은 규모의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거친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인문‧사회 분야에서는 학문의 독립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현실은 몹시 안타까운 일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 . 연합뉴스 제공

지자체가 대학을 살려줄 것이라는 환상

대학의 예산과 규제를 지자체로 넘겨버리겠다는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발언도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법 개정과 큰 틀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을 어떠한 절차도 없이 언론을 통해 일방적으로 통보하듯이 공개해버린 것부터 문제라는 것이 야당의 지적이다. 

대학이 지역 사회의 일부라는 지적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지역에 필요한 신산업의 허브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반드시 지자체가 대학을 관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자체가 지방대학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고, 규제할 수 있을 것인지부터 확실하지 않다. 지방자치 업무와 초중등 교육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지방대 살리기가 아니라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의 단초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교육부의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대학 규제가 심각한 문제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교육부의 대학 관련 부서를 폐지하는 것이 능사일 수도 없다. 산업부‧과기부 등에 흩어져 있는 대학 관련 예산을 끌어 모으겠다는 발상도 황당하다. 4대 과기원 예산 배정권의 교육부 이관도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교육부 장관의 허황한 ‘미국 바래기’도 경계해야 한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의 혁신 생태계에 그 지역의 명문 대학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사회‧경제‧역사적 배경이 전혀 다른 우리의 경우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 난마처럼 뒤엉킨 우리의 교육 정책은 장관 개인의 노력만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학을 감당할 수 없는 혼란에 빠뜨렸던 이명박 정부의 실수는 절대 반복할 수 없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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