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안전은 뒷전...규격만 따질 뿐 안전 매뉴얼 없는 ‘위험한’ 한국[스포츠도 안전이다②]

김세훈 기자 2022. 11. 2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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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 인조잔디 제품(왼쪽)과 인조잔디구장 인증 마크(가운데). 맨 오른쪽은 FIFA 인조잔디 인증마크로 FIFA QUALTY PRO가 최고 등급이다.



대한축구협회는 내년부터 인조잔디 인증제도를 시행한다. 충격흡수성, 회전저항 등 다양한 항목에서 일정 수준 이상 성능을 유지하는 인조잔디구장에서 한해서만 경기 개최를 허락하겠다는 취지다. 협회는 2025년까지 3년을 기존 인조잔디구장을 점검하고 개보수하는 유예기간으로 삼는다. 2026년부터 협회는 인조잔디제품을 1등급, 2등급, 3등급으로 나눈 뒤 등급에 따라 개최 경기 수준을 제한한다. 동시에 구장도 3개 등급으로 분류한다. 국가대표와 프로축구를 개최하려면 1등급 구장이 돼야 한다.

협회가 인조잔디 인증제를 도입한 것은 인조잔디 상태가 엉망이기 때문이다. 한국체육시설안전관리협회가 2020년 158곳 인조잔디구장을 대상으로 충격흡수성을 조사한 결과, 무려 129곳이 50%를 밑돌았다. 충격흡수성 50%는 한국산업표준(KS) 인증 기준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기준은 그보다 높은 60%다.

협회는 16개 주요 인조잔디구장을 별도로 조사했다. KS 기준을 통과한 곳은 2곳뿐이었다. 시공 후 관리가 부실해 망가진 인조잔디는 경기력 저하, 부상 가능성 증대, 선수 생명 단축으로 이어졌다.

축구협회는 지난 5월 국가기술표준원과 협업해 선수용 인조잔디 기준을 만들었다. 창피한 일이지만 이제야 선수용 인조잔디 제품 기준이 처음으로 생긴 것이다. 국내 인조잔디기준이 FIFA 수준으로 높아진 것은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지금까지 선수들은 선수용 인조잔디가 아니라 학교 운동장용 인조잔디에서 공을 차왔다.

국내 스포츠 시설에 대한 쟁점은 규격에 그칠 뿐, 안전은 안중에 별로 없다. 종목단체는 대회를 치르기에 적합한 규격을 갖춘 시설인지만 따진다. 바닥, 펜스, 대형 설치물 등에 대한 안전에는 관심이 없다. 최근 풋살 골대가 넘어져 사상자가 발생했다. 아이스링크 벽은 딱딱한 재질로 돼 있어 충돌하면 크게 다칠 수 있다. 쿠션없는 철제구조물로 펜스가 세워진 야구장도 다수다. 대부분 실내 경기장은 가파르고 좁은 계단, 폅소한 통로, 미로식 구조 등 사고에 취약하다.

국내 공공 체육시설은 대부분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한다. 지자체로부터 관리를 위탁받은 시설관리공단, 도시공사는 시설 대관, 부분적 개보수만 신경을 쓴다. 지자체도 시설 관리에 대해 경제성만 따질 뿐 안전에는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으니 안전에 대한 정확한 판단 기준도, 판단 주체도 없다. 당연히 상시 예산도 없다.

국내에서는 축구, 농구, 테니스, 육상 등이 바닥제를 중심으로 제품 인증제를 실시하고 있다. 종목에 따라 설치물 안전에 대한 국제기준이 이미 있는 종목들이다. 이같이 종목별 국제 기준을 근거로 국내에서도 모든 종목과 시설에 대한 안전 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 제품 성능에 대한 철저한 검사, 시공과 관리가 결합된 조달과정 개편, 시공 후 정기 점검을 통한 지속적 관리 등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바닥제, 제품 재질 등 세부 부품뿐만 아니라 여러 부품으로 조립된 완성품에 대한 성능 검사도 이뤄져야 한다. 제품이 고정, 설치된 직후 현장 성능 검사뿐만 아니라 시공 후에도 정기적으로 성능검사를 통해 꾸준히 개보수해야 한다. 체육시설 안전 관리 전문가들은 “과거에는 공급자 중심으로 시설을 설치하면 끝이었지만 지금부터는 수요자 중심으로 시설물이 설치되고 관리돼야 한다”며 “경기단체, 선수, 지도자 등 수요자들이 시설 공급자와 관리자에게 시설 안전성을 높여달라고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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