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만도 못한 돌봄노동[플랫]
‘돌보는 이를 착취해 사회를 지탱하자’는 제안이 공개적으로 나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9월 27일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육아도우미 도입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육아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월 38만~76만원 수준”이라고도 했다. 지난 10월 19일 방송 인터뷰(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선 한술 더 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하시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굉장히 임금이 높은 수준”이라며 출신 국가에 따라 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이미 2011년에 ‘먹는 일’(학교 무상급식)을 등지면서 큰 실책을 했다. 이번에는 ‘돌보는 일’에 등을 돌렸음을 선언하는 중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문제와 저출생 시대의 육아 문제를 논하려면 멀리 싱가포르까지 찾아갈 이유가 없다. 앞을, 옆을, 뒤를 보면 된다.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이주 여성들이 무슨 일을 하는가? 깻잎을 딴다. 화장실도 못 가 자루에 변을 봐가며 온종일 딴다. 아이는 누가 돌보는가? 할머니들이 돌본다. 허리가 휘고 연골이 닳아가며 돌본다.
📌[플랫]캄보디아 여성 노동자들의 ‘일그러진 코리안드림’
📌[플랫]“값싼 외국인 육아 도우미 도입하자”는 서울시장이 무시한 현실
📌[플랫]이주 여성의 ‘돌봄 돌려막기’가 한국의 절반을 지탱하고 있다
이주민 노동의 값을 지금보다 싸게 치를 방법이 있을까. 연구자 우춘희의 르포 <깻잎 투쟁기>엔 이주민의 노동 실태가 세세하게 나와 있다. 이주노동자 가운데 돈을 떼였다고 신고한 사람은 2020년에만 3만1998명, 체불 금액이 1287억원이다. 고립돼 신고할 생각조차 못 한 노동자를 포함하면 액수는 훨씬 커질 것이다. 이미 최소 1300억원어치 노동을 싼값에 쓰고 있다고 봐야 한다. 오 시장이 좋아하는 ‘시장논리’를 들이대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예컨대 수확철의 깻잎 밭에선 사람을 못 구해 난리가 난다. 일이 너무 고돼 내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웃돈을 줘도 데려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 깻잎을 전에는 누가 땄는가. 할머니들이 땄다. <깻잎 투쟁기>에는 깻잎 밭을 하는 김미자씨 이야기가 나온다. 서울에서 살다 농촌으로 시집온 그는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비가 오면 비옷을 입고 나가 엉엉 울며 일을 했다. 그런 그도 60대 후반이 됐다. 이제는 20대 이주 여성들을 고용해 깻잎을 딴다. 할머니들 출퇴근 시키랴, 입에 맞는 점심을 챙겨주랴 바빴던 그는 이제 “정말로 얘네들 덕분에 너무 편해졌다”고 말하며 미등록 이주 여성을 어르고 달래 붙잡아둔다.
깻잎을 따는 단순노동도 이처럼 복잡하게 굴러간다. 육아노동의 값을 깎을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이 깻잎보다 다루기 쉽기 때문인가? 아이돌보미, 요양보호사, 간병인들은 열악한 처우 속에서도 누군가의 삶을 낫게 한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돌봄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지금,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돌보는 이에게도 이 일이 ‘좋은 노동’이 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일을 ‘싸게’ 대체하면 그만인가? 오 시장은 외국인 육아도우미 제안을 내놓으면서 “경제적 이유나 도우미의 공급 부족 때문에 고용을 꺼려왔던 분들에겐 반가운 소식일 것”이라고 했다. 이주노동자에겐 표가 없다고 함부로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온몸을 갈아넣어 시스템을 떠받쳐온 돌봄노동자들도 투표권이 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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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랑 기자 rang@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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