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범 컬럼] NBA 미디어데이의 핵심 키워드 : MENTAL HEALTH

손대범 2022. 11. 2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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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손대범 편집인] 2022-2023 NBA 정규시즌의 문을 여는 행사는 미디어데이다. 여름 동안의 근황, 새 시즌과 새 식구 이야기, 지난 시즌 동안 털어놓지 못했던 아쉬움 등이 주제가 된다. 그런데 최근 자주 들리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멘탈(mental)이다. NBA 선수들은 “우리도 사람이다”라며 고충을 토로한다. 코트 위에서는 멋진 덩크를 꽂고 강렬하게 포효하고, 코트 밖에서는 고가의 정장에 슈퍼카를 몰고 다니는 덕분에 ‘화려함’이 중점적으로 부각되던 그들이었지만, 마이크 앞에서 털어놓은 이야기들은 정반대였다.

※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제국을 잃을 뻔 했던 존 월

LA 클리퍼스의 포인트가드, 존 월은 국경을 막론하고 놀림감이 됐다. 2022-2023시즌을 앞두고 성공적으로 복귀하긴 했지만 그 전 몇 년간 경력이 거의 단절된 상태였다. 2016-2017시즌 이후 그는 단 한 번도 41경기 이상을 뛰지 못했다. 2019-2020시즌은 통째로 쉬었고, 2020-2021시즌은 40경기에 그쳤다. 2021-2022시즌은 코트를 밟지도 못했다. 공교롭게도 이렇게 쉬기 시작한 시점이 바로 4년간 1억 7000만 달러라는 초대형 계약을 맺은 직후였다. 계약 직후 무릎, 아킬레스건 등을 차례로 다치면서 휴업했다. 한번은 수술 부위에 감염 증세까지 생겨 고통을 받았다. 때문에 ‘먹튀’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존 월이 비아냥을 받은 건 부상과 결장 때문은 아니었다. 2018년, 존 월이 못 마친 학업을 따기 위해 대학교로 돌아갔다는 말이 돌면서 조롱을 받았다. 존 월은 그 시기가 가장 괴로웠다고 말한다. 나름대로 부상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도 치고, 그 사이 어머니도 암으로 여의는 등 안 좋은 일도 겪었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돈 많이 벌고 유명하다고 해서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도 사람이다.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똑같은 일을 겪는다. 사람들은 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다. 케빈 러브나 더마 드로잔이 말한 것처럼 우리도 우울할 때도 있고 실망스러운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다.”

2021-2022시즌 클리퍼스로 트레이드 되어온 노먼 파웰은 존 월의 이런 말에 공감한다. 파웰은 지난 시즌 클리퍼스 유니폼을 입고 뛴 경기가 5경기밖에 되지 않는다. 5경기에서 21.4점을 기록했지만, 2월 10일 왼쪽 다리 부상으로 2개월 이상을 쉬는 등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불가피한 부상이었지만 눈총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저 우리를 운동선수로만 보지만, 우리도 일상이 있다”라는 그는 개인 멘탈 코치를 고용해 어드바이스를 따르고 있다. 데이비드 널스는 농구선수 출신으로 한때는 슈팅 코치라는 명함이 있었지만, 지금은 NBA 선수들의 멘탈 코치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자존감을 높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마이애미 히트의 아시아 스카우트를 돕고 있는 밥 피어스 코치와 NBA 선수들의 행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여러 차례 방송에서도 언급했던 내용이긴 하지만, 이 글을 이어가기 위해서도 필요할 것 같다. 피어스 코치는 “오늘날 NBA 구단과 선수의 관계는 그야말로 비즈니스다. 선수들은 하나의 대기업이나 다름이 없다”라며 선수들의 자산 규모가 10년 전, 2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음을 귀띔했다. 익명을 전제로 인용을 허락한 NBA의 한 국제 스카우트 역시 “일단 드래프트에 지명되어 생존하는 순간, 그들에게는 다른 세상이 열린다”라고 말했다. 바라보는 것, 주변의 것들이 모두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고급’으로. 미국 스포츠 전문지《디 어슬레틱(The Athletic)》은 그 현상을 ‘그들만의 제국’이라고 표현했다. 수십, 수백억을 벌어들이고 주변에는 수많은 조력자들이 달라붙게 되니, 과거처럼 소속팀 감독과 코치들이 선수 하나를 붙잡고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를 하고 숙제를 내주던 시절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1980년대 LA 레이커스의 황금기를 이끈 팻 라일리 감독(현 마이애미 히트 사장)은 선수들 리바운드 실력을 키우기 위해 매일 차트를 그리고, 벌금을 내게 하는 등 혹독하게 시켰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프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손편지’를 써서 과제를 내줬다. 그러나 이는 30~40년 전의 ‘낭만’일 뿐이며, 지금은 감독과 선수, 특히 감독과 스타 선수 간의 관계는 그 낭만으로 지속되기는 힘든 시점이다. 이런 이야기만 듣고 본다면 선수들은 정말 다가가기 힘든, 초월적인 비즈니스 맨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다른 한편으로 그들이 그렇게 힘겹게 쌓아올린 ‘제국’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고 생각하면 어떻겠는가? 그것도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경기 중에 일어난 불운한 사고로 말이다. 예컨대, 착지하다 발을 밟아 한 시즌을 쉰 카와이 레너드나, 점프하고 내려오다 무릎을 다친 데릭 로즈 같은 선수들을 들 수 있다. 촉망받던 슈퍼스타들이 한참 코트에서 부와 명예를 쌓아야 할 시기에 끝을 알 수 없는 재활에 돌입했을 때 말이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티브 커 감독은 그러한 상실감과 불안감 속에서 82경기 장기레이스를 소화하는 선수들의 스트레스가 군인들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조언을 받고 곧장 해군부대의 군사 심리상담 전문가를 초빙하기도 했다. 이처럼 선수들 역시 언제 모든 것이 단절되고, 자신이 쌓은 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고, 이것이 결국 멘탈 트레이너의 필요성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세라 히크먼 박사는 클리퍼스의 로렌즈 프랭크 사장이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영입한 인물 중 하나다. 히크먼은 NFL 뉴욕 제츠를 돕던 멘탈 전문가였는데 최근에는 클리퍼스에서 활동 중이다. 프랭크는 “정신 건강은 굉장히 중요한 이슈이며, 우리 구단이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부분이다. 멘탈 퍼포먼스와 관련된 인물을 고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라고 강조했다.

NFL 시절 히크먼 박사의 과거 인터뷰를 보면 인상적인 멘트가 몇 가지 있다.
- 패배가 닥쳤을 땐 혼자 담지 말고, 다같이 대화를 나누면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 서로 남 탓을 하지 말고, 메시지를 취합하여 수렴하고자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 선수들이 하나의 목표에 집중한다면 그때 비로소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기초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NFL이든, NBA든 전 세계에서 가장 돈을 잘 벌고 유명한, 그리고 자존심 강한 슈퍼스타들의 신뢰를 얻고, 그들이 솔직히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말이라면 다를 것이다.

멘탈에 대한 NBA의 움직임

스포츠 미디어는 ‘리더’를 늘 강인한 사람으로 표현해왔다. 특히 우리가 ‘지도자’라 부르는 감독, 코치들의 이미지는 늘 그랬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엄격하고 때로는 거친 언행도 마다하지 않는 지도자들이 스승, 코치의 전형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다. 스타 선수들도 마찬가지인데, 그들은 인터뷰에서 좀처럼 ‘힘들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짐작건대 약해 보일 수 없다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운동선수에게 요구하는 잣대는 여전히 엄격하다. 소셜 미디어에서도 게으르다는 말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야니스 아데토쿤보(밀워키 벅스)는 미디어데이에서 “잘 쉬는 것도 중요하다. 때로는 더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해 부르열심히 훈련하는 것만큼이나 잘 내려놓고 가족과 여유를 보내고, 무의미하게 의자에 기대어 TV를 보며 빈둥거리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정신 건강에 대한 인식은 최근에는 달라지고 있다. 선수들은 자신의 고충을 토로하길 주저하지 않고, 잠깐 내려놓고 긴장 상태로부터 ‘잠금 해제’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케빈 러브는 지난 2018년, 자신이 시즌 중 공황 발작 증세를 언급했다. 러브는 수백억 연봉을 버는 선수이지만 부상 때문에 코트에 못 서는 날도 많았다. 그런 스트레스 탓인지 힘든 시기를 오래 겪었고, 급기야 인터뷰에서 고백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악동’ 혹은 ‘기인’으로 여기는 메타-월드 피스(전 론 아테스트)는 10여 년 전부터 개인 심리치료사를 두고 정기적으로 상담을 가졌다. 2010년 LA 레이커스 우승 직후 메타-월드 피스는 “선생님이 계신 덕분에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라며 공개적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전국으로 방영되는 TV 인터뷰였기에 당시 사람들은 ‘용기있는 발언이었다’라고도 했다. 이처럼 ‘심리 상담’이 주는 어감은 2000년대 들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고백하고 함께 이겨가야 하는 이슈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플레이오프에서의 부진으로 소셜 미디어에서 크게 야유를 받았던 폴 조지는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300만 달러의 기금을 조성, 도움이 필요한 일반인들이 언제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을 설립하기도 했다. “정신 건강에 대해서는 사실 말을 많이들 안 하는 편이다. 그러나 모두가 각자의 사연이 있고 어려움이 있는 걸 안다. 꺼려지는 면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 걸음을 돕고 싶었다.” 폴 조지의 말이다. 보도에 따르면 폴 조지는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정말 많은 전문가들을 만나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NBA는 이런 분위기를 감안해 2019-2020시즌에 앞서 각 구단에게 선수들을 전담하여 돌볼 멘탈 전문의를 한 명씩 고용할 것을 권고했다. 기사마다 표현이 다른데, ‘must’라는 단어가 들어간 보도도 있었기에 단순 ‘권고’ 차원은 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NBA 선수노조(이하 NBPA)도 전담 부서를 두고 있다. NBPA의 카운셀러 마이클 그리넬은 “모두에게 상처 하나씩은 있다”라고 말한다. NBPA는 그리넬과 같은 카운슬러 뿐 아니라 NBA 선수출신 상담사도 육성하고 있다. 아무래도 같은 선수 출신만 공감할 수 있는 내용도 있고, 선수들도 믿고 털어놓기가 용이해 ‘공감 격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감독님, 저 오늘 발목이 너무 아파서 훈련을 소화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나도 아파 임마”, “야, 내가 너희 나이였을 때는 다 참고 뛰었어” 등으로 대답할수록 공감 격차는 벌어지게 된다. NBA 구단이 젊은 감독을 선호하는 동시에 ‘굳이’ NBA 출신만 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리더가 ‘커뮤니케이터’이자 ‘굿 리스너가 되길 바란다.)

NBA는 조만간 NBPA와 CBA 협상에 돌입한다. 연령 제한, 수익 배분 등 여러 중요한 이슈가 있지만, 안건 중 하나로 ‘멘탈 이슈’가 올라갈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의사가 진단한 부분에 한하여 정신 건강도 ‘부상’ 중 하나로 다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보도다. 지나치게 선수 위주(player-friendly)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보도도 있다. 그 정도로 선수들을 챙겨주는 리그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NBA라는 큰 사업체가 빛나기 위해서는 개별 선수들, 즉 큰 사업체를 지탱하는 ‘개인 사업자’들이 건강히, 열심히 일(농구)을 해야 하는 구조이기에 이런 움직임은 비즈니스 파트너를 위한 예의로 해석하는 매체도 있다. 나는 후자 손을 들어주고 싶다. NBA 현장을 가보면 2만 명의 관중들이 일제히 스마트폰을 들고 선수들만 쫓고 있다. 스마트폰뿐이겠는가. 갈수록 TV 카메라는 늘고 있고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누가 팬이고, 누가 콘텐츠 생산자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집중하여 선수들을 쫓아다니다 우연히 실수가 발각되면 아주 오랫동안 반복되어 수십만 번 재생된다. 각종 조롱이 따르며 말이다. 르브론 제임스는 “그들은 내가 하품하는 장면까지도 안 놓치려 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는 KBL이나 국내 프로스포츠, 연예계도 다르진 않을 것이다. 규모의 차이일 뿐) 국내 프로농구에서도 이대성과 박지수 등이 멘탈에 있어 어려움을 호소한 바 있다. 박지수의 경우 잡지가 마감되는 10월 21일 현재까지도 팀에 합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단순히 ‘우리 때는 안 그랬어’, ‘너 너무 나약하다’ 정도로 낮춰볼 수는 없다. 네이버의 ‘뉴스 라이브러리’를 비롯한 옛날 신문 DB(데이터베이스)에서 ‘피로골절’을 키워드로 기사를 검색해보면, 운동선수에게 이 단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90년대였다. 몇몇 원로 농구인들은 ‘피로골절이란 걸 들어본 적이 없었어’라며 의아해하지만,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증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피로골절이란게 구체적으로 왜 나타나고, 어떤 것인지, 그리고 피로골절 증세가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연구했을 것이다. 정신 건강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스포츠 심리를 공부하기 위해 유학길에 오르는 학생들도 서서히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이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운동선수 출신 전문의도 많아졌다. 한국 프로농구도 연맹과 구단 차원에서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단순히 나약해서 그런 것만이 아닐 수도 있다.

#사진_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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