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과 최백호, 가왕과 가객의 다시 빛나는 ‘찰나’

서정민 2022. 11. 23. 07: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같은 제목의 신곡 나란히 발표
칠순 넘은 나이에 새로운 시도
‘가왕’ 조용필(왼쪽)과 ‘낭만 가객’ 최백호, 1950년생 동갑내기 두 가수가 나란히 신곡 ‘찰나’를 발표했다. 와이피시(YPC)·유니버설뮤직·한국음악발전소 제공

찰나. 불교에서 말하는 시간의 최소 단위. 아주 짧은 순간을 뜻한다. 한국 대중음악계 두 거장이 나란히 찰나를 화두로 들고나왔다. ‘가왕’ 조용필과 ‘낭만 가객’ 최백호, 1950년생 동갑내기 두 가수가 70여년 평생 무수히 쌓아온 찰나들을 꾹꾹 눌러 담은 노래를 내놓았다.

조용필은 지난 18일 디지털 싱글 <로드 투 트웬티-프렐류드 원>(Road to 20-Prelude 1)을 발표했다. 내년 말 발매가 목표인 정규 20집을 향한 여정을 내딛는 첫번째 전주곡이란 뜻을 담은 제목이다. ‘찰나’ ‘세렝게티처럼’ 두 곡을 실었는데, 2013년 19집 <헬로> 이후 9년 만의 신곡이다.

가수 조용필. 와이피시(YPC)·유니버설뮤직 제공

첫 곡 ‘찰나’는 청량한 느낌의 팝록이다. 외국 작곡가 3명이 공동으로 작·편곡했고, 조용필이 편곡에 참여했다. 조용필은 지난 19집 발매 때 이미 ‘바운스’ ‘헬로’ 등 외국 작곡가 곡을 내세우며 동시대 최신 트렌드를 반영했다. 당시 거장의 새로운 시도에 대중과 평단이 환호했다. 이번에도 최신 트렌드를 품었다는 점에서 그때와 비슷하면서도 한발 더 나아간다. 19집 때는 트렌디한 곡을 특유의 살짝 꺾는 창법으로 불렀다면, 이번에는 직선적이고 모던한 창법으로 불렀다는 점이 다르다.

“우리가 처음 마주친 순간/ 내게 들어온 떨림/ 그때는 뭔지 나는 몰랐어”라고 담백하게 시작한 노래는 “반짝이는 너 흐트러진 나/ 환상적인 흐름이야” 대목에 이르면 자신의 목소리를 변조한 랩으로 바뀐다. 이후 “결정적인 찰나/ 반짝이던 찰나”로 절정에 치닫는 후렴구가 이어진다. 이렇게 전반부-후렴구가 한번 더 반복된 뒤 또 다른 변주가 등장한다. “할 말이 끊기고 가까워질 때면/ 농담이나 툭툭/ 화제를 돌리고 돌리며/ 할 얘기가 넘치는 척/ 여유 부리는 척” 하는 대목은 랩과 노래를 혼용한 ‘싱잉랩’처럼 들린다. 요즘 힙합에서 유행하는 방식이다. 새로운 창법 시도는 다음 곡 ‘세렝게티처럼’에서도 마찬가지. 바이브레이션을 자제하고 직선으로 뻗어나가도록 부른다.

가수 최백호. 씨제이이엔엠 제공

최백호가 지난 10일 발표한 앨범 제목도 <찰나>다. 타이틀곡 ‘찰나’를 비롯해 8곡을 담았다. 이 앨범은 특별하다. 최백호가 2018년부터 멘토로 참여해온 씨제이이엔엠(CJ ENM)의 신인 작곡가 육성·발굴 프로젝트 ‘오펜 뮤직’ 출신 작곡가들, 콘텐츠 크리에이터 그룹 피앤피(PNP) 소속 작곡가들과 협업한 결과물이다. 지코, 콜드, 죠지, 타이거제이케이(JK), 정승환 등 후배 가수들도 목소리를 보탰다.

타이틀곡 ‘찰나’는 오펜 뮤직 1기 헨(Hen)이 작사·작곡한 팝발라드다. 도입부에서 잔잔하게 시작한 노래는 갈수록 오케스트레이션 사운드가 켜켜이 쌓이면서 웅장해진다. 최백호는 처음엔 담담하게 부르다 뒤로 갈수록 특유의 깊이와 울림 있는 창법으로 감정을 증폭시킨다. ‘찰나’에선 기존 창법의 매력을 내세웠지만, 다른 곡에선 색다른 시도에도 나섰다. 죠지와 함께한 일렉트로팝 ‘개화’와 타이거제이케이와 함께한 힙합곡 ‘변화’에선 힘차게 내지르는 창법도 선보인다.

조용필의 디지털 싱글 <로드 투 트웬티-프렐류드 원> 표지. 와이피시·유니버설뮤직 제공

가사 측면에서 보면, 조용필의 ‘찰나’는 젊고 감각적이다.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이 바뀌는 운명적인 순간, 그 찰나를 포착한 가사가 반짝인다. 가사를 쓴 작사가 김이나는 “가장 한결같아 보이는 사람에게 변화가 일어나는 건 찰나 때문”이라며 “어떤 찰나는 사람과 사람 간의 거대한 우주를 새로 만들기도 한다”고 전했다. 조용필이 새로운 노래를 만나 변화하는 찰나를 상징하는 듯도 하다.

최백호의 ‘찰나’는 묵직하고 사유적이다. “처음 모든 게 두려웠던 날/ 한숨조차 힘겨웠던 날”은 “조금 세상에 익숙해지고/ 문득 뒤돌아 생각해보면/ 두번 다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날들”이다. 그래서 “빛나는 순간/ 희미한 순간/ 그 모든 찰나들이/ 나의 삶을 가득히 수놓았음을” 곱씹는다. 최백호는 “젊은 시절에는 그때가 마치 긴 겨울 같고 어둡게 느껴졌다. 중년 언저리에서는 삶의 크고 작은 변화들이 참 무겁게 다가왔고, 추억 속에 머물던 순간과 사람은 불현듯 떠나고 오늘은 어느새 어제가 되었다. 이 짧은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듯하다”고 앨범 설명글에 적었다.

최백호의 앨범 <찰나> 표지. 씨제이이엔엠 제공

최백호는 마지막에 이렇게 노래한다. “지금 이 순간도/ 나의 빛나던 찰나여/ 이미 지나버린 찰나여/ 나의 영원한 찰나여/ 지금 빛나는 순간이여” 최백호와 조용필, 칠순을 넘긴 두 거장은 지금 이 순간도 반짝반짝 빛나는 ‘찰나’를 빚고 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