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폭풍에 뿌리뽑히지 않으려면

한겨레 2022. 11. 2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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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황산의 인문학 봉인풀기][빛깔 있는 이야기]
픽사베이

몇 년 전 미국 시애틀 인근의 레이니어산 에 오른 적이 있었다 . 높이가 4000m 가 넘고 사계절 내내 정상에는 눈이 덮여 있는 설산이다 . 차를 타고 정상 가까이 올라갔다 . 산 아래 지대에는 숲이 울창했다 . 그런데 여기저기 거대한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서 쓰러져 있다 . 계곡에는 떠내러 온 흉측한 통나무들이 주변에 수북이 쌓여있다 . 놀라운 것은 나무의 높이가 40~ 50m 나 되는데 그 뿌리는 불과 몇 m가 되지 않고, 파 뿌리처럼 짧아 보였다 . 나무의 키에 비해 뿌리가 짧은 이유가 무엇일까 ? 비가 많이 오고 수분이 충분한 지역이기 때문에 나무들이 뿌리를 굳이 깊이 내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그래서 조금만 세찬 바람이 불면 속절없이 넘어지는 나무가 많다 . 그 뿌리가 얕아서 그렇다 .

그 쓰러진 나무들을 보면서 우리네 삶의 모습을 생각했다 . 높이 올라가려고만 하는 무한 욕망 ,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하는 피상성 , 정신적 윤리적 가치를 무시하는 성장주의가 보였다 . 성찰해 보았다 . 내 삶과 내가 속한 공동체들의 뿌리가 너무 얕은 것이 아닌가 ? 좋은 환경에서는 평탄해 보이지만 작은 풍파에 쉬 넘어질 허상의 성채를 쌓는 것은 아닌가 ?

뿌리 깊은 나무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 위로 올라가는 길이에 비례하여 뿌리는 아래를 향해 뻗는다 . 메마른 계절의 목마름과 모진 바람을 견디며 내공을 키운다 . 적절한 속도로 나아가 단단하고 균형 있는 신체를 만든다 . 가정이나 조직이나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 눈에 보이는 영역에만 모든 에너지를 투자하면 내적으로 빈약해진다 . 갑자기 몰락하는 기업 , 추문이나 치명적인 실수로 휘청거리는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바로 그 얕은 뿌리 때문일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 ’ 라는 말은 매력적이다 . 하지만 뿌리를 내리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 아시다시피 건축에서는 기초공사에 가장 큰 공을 들인다 . 음악에서는 기본기가 , 스포츠에서는 체력이 필수다 . 골프 황제라 불리는 타이거 우즈의 일과는 정교하고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 시합이 없는 날이면 그는 매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체력 훈련과 온갖 기술 훈련을 한다 . 아침 식사 전까지 2시간 달리기, 자전거 타기 , 하체 트레이닝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 오전과 오후에는 필드 훈련을 한다 . 저녁 식사 전에 그는 또다시 30 분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 식단도 아주 엄격하게 관리하기로 유명하다 . 우즈가 골프계에 일으킨 가장 큰 혁명은 그간 필드 훈련만 하던 프로들이 기초 체력 훈련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 우즈의 신화는 결코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았다 .

인생에는 예기치 않은 폭풍이 몰아치기도 한다 . 송두리째 뿌리 뽑히지 않는 방법이 무얼까 ? 그 첫째는 뿌리를 깊이 내리는 일이다 . 둘째는 연대의 힘이다 . 비록 뿌리가 얕은 나무라도 나무들이 촘촘히 붙어 숲을 이룬 곳에 있거나 그 뿌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 넘어지지 않는다 . 셋째는 야자수의 지혜다 . 태평양의 섬들에는 자주 태풍급의 바람이 몰아친다 . 그런데 야자수는 온몸이 활처럼 휘어지면서도 쉬 뽑히지 않는다 . 잔가지와 쓸 때 없는 잎들을 제거해 바람의 저항을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 내 삶의 뿌리를 깊게 , 연대의 끈은 든든히 할 일이다 .

황산(인문학연구자·씨알네트워크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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