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전에 들라 하라[편집실에서]

2022. 11. 23.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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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순방 기간 동안 윤석열 대통령이 전용기에 동승한 기자 중에서 2명을 따로 불러 1시간가량 환담을 했답니다. 본 거나 들은 게 있으면 어떻게든 알리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언론의 생리상 시간의 문제일 뿐 환담 내용은 세상에 알려지게 돼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대통령실이 이런 행태를 반복하더라도 업계 용어로 ‘물 먹을까봐’ 두렵거나 떨릴 일은 전혀 없습니다. 그보다는 전 국민이 지켜보는 공간에서 21세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언론을 가려 전용 공간에 들였다는 사실과 그 발상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가뜩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취지로 MBC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거절한 직후 아닙니까. 참모들이 이를 막기는커녕 멀뚱멀뚱 지켜만 봤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넘어 심각한 우려를 낳습니다.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10년도 더 지난 일입니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한창이었습니다. 양국을 오가며 수차례 협상이 열렸습니다. 당시는 미국 몬태나주의 빅스카이라는 지역에서 양국 협상단의 담판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경향신문에서 통상교섭본부를 출입하던 터라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협상 기간 내내 비판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정부로선 경향신문이 얼마나 눈엣가시였겠습니까. ‘몬태나 협상’이 막바지로 향하던 어느날 밤이었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호텔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타사 기자들은 물론, 협상단 일행도 모두 함께 묵는 호텔이었습니다. 무심결에 창밖을 보다가 순간, 두 눈을 의심했습니다. 한국 협상단을 이끌던 대표가 기자 서너명과 함께 그의 방에서 간단한 ‘주안상’을 앞에 두고선 담소를 나누고 있었거든요. 기자들이 속한 매체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세간의 기준에서 볼 때 유력매체였고, 또 협상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기자들이었습니다. ‘협상단 대표는 무슨 배짱으로 커튼도 치지 않고 환한 전등 불빛 아래 저리 대담하게 소수의 기자를 따로 만나는 걸까.’ 지금도 풀지 못한 미스터리입니다. 몰래 만나려고 했다가 실수로 그만 들켜버렸을 수도 있겠습니다. 다음날, 협상단의 홍보담당자한테 넌지시 말을 건넸더니 당황스러워 어쩔 줄을 모르더군요.

대통령도 사람인데 어찌 마음에 드는 기자가, 선호하는 매체가 없겠습니까. 특정 언론사랑 손잡고 이른바 ‘언론 플레이’를 벌이고 싶은 유혹이 어찌 없겠습니까. 그렇다고 마치 왕이 신하를 들이듯 공공연히 특정 매체의 기자들만 불러들일 계제(階梯)는 아니지요. ‘영광인 줄 알아!’ 심보가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지금이 무슨 봉건왕조 시대도, 권위주의 독재 시대도 아니지 않습니까. 굳이 하겠다면 은밀하게 하십시오. 보안이 지켜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과 매체 환경의 다변화로 ‘언론통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세상이 됐으니까요. 끝까지 비밀을 지킬 자신이 없다면 언론 플레이는 아예 꿈도 꾸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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