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귀'닫고 '입'만 연 사회
인터넷과 뉴 미디어의 발달로 지금은 그 어느 시대보다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존중받는 시대가 됐다. 스마트 폰으로 온라인 뉴스 기사를 읽는 동시에 댓글로 기사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트위터 같은 개인 SNS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리고 이제는 개인의 의지에 따라 누구나 오피니언 리더가 될 수 있는 기회도 열렸다. 학벌이나 직업, 성별, 출신에 제약받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내 의견에 반응한다면 그 자체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계속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것이고, 이를 통해 점점 더 빠르고 더 다양한 방식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개인의 생각과 의견을 전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누구나 제약받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 건전한 민주주의의 한 모습이라고 할 것이다. 자유롭게 견해를 개진하고, 건전한 비판과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성숙한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인데, 그러나 과연 우리 사회가 그런 성숙한 사회인지 묻고 싶은 요즘이다.
‘심심한 사과’ 사건에서 전문가가 지적했듯이 ‘내 생각은 절대적으로 옳고, 네 생각은 틀렸다’는 태도를 우리 사회에서는 자주 목도하게 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정치인들의 싸움만 봐도 그렇다. 건강한 정쟁은 없고, 모든 논쟁을 진영논리와 유치하리만큼 단순한 선악 구도로 희석시켜 버린다. 그리고 정치 영역에 스며든 팬덤 문화까지 합세해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 비판은 금기시되고, 금기를 깬 상대방에게는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 붓는다. 의혹 제기는 ‘음모론’으로 폄하하고, 검찰 수사는 ‘검찰 탄압’이라고 울부짖으며, 불리한 판결은 판사의 ‘정치적 편향’ 탓으로 돌린다.
토론이 업인 정치인들부터 이러하니 일반 국민들은 말할 것도 없다. 언제나 상대방 의견에 동의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와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그러한 자세가 바로 관용일텐데 우리 사회에는 관용이 없다. 반론이 제기되는 것조차 수용하지 못하고 곧바로 적의를 드러낸다. 흔히 볼 수 있는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댓글 싸움을 보면 글 속에는 혐오와 인신공격만 가득하다. 그리고 손쉽게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행사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는 일선 경찰서 사이버수사팀에 접수되는 어마어마한 양의 명예훼손과 모욕죄의 고소·고발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다.
열려있으나 동시에 배타적인, 이 모순적인 상황은 뉴 미디어들이 더욱 가속화 시키고 있는데 짧고 간편한 정보를 원하는 수요에 맞춰 지극히 단순화한 뉴스나, 선동에 가까운 자극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1인 미디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안을 입체적이고 종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다. 더욱이 자신의 태도와 일치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노출시키는 알고리즘은 내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신념을 강화시켜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형성된 확증 편향으로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가로막고 점점 더 집단 간 갈등과 간극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가 널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유는 다양한 의견을 수용해 통합과 분쟁 해결을 꾀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분쟁 해결 수단 중 하나인 소송의 과정을 단순화하면, 원고의 주장과 피고의 항변, 그리고 그에 대한 원고의 재항변 등 원·피고의 주장과 반박이 번갈아 이뤄지며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 과정의 전제는 상대방의 의견을 듣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누구도 듣지 않는다. 용산 집무실 앞과 광화문에서 벌어지는 시위대만 봐도 저마다 소리 높여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전달되지 않고 허공 속으로 흩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판과 이견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단절과 분열만 초래할 뿐이다. 표현의 자유만큼이나 관용의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송길호 (khso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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