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원정] 악마처럼 입 벌린 크레바스들…우린 서로 자일로 묶었다

김낙현(중앙대 산악부 20) 2022. 11. 2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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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트호른 정상 오르고 샤모니 암벽 등반
대학산악연맹 50주년 알프스 원정기 下
브라이트호른 등반 중 바라본 눈 덮인 알프스 산군.

7월 21일 대장의 무게

오늘 인혁 형은 평소 마시지 않던 맥주를 마셨다. 어떤 의미인지 상당히 고민이 된다. 스스로 휴식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쌓인 스트레스를 달래는 것인지. 대장의 무게는 무겁다. 여기 있는 대원 모두는 각 학교에서 대장을 한 번씩 해봤다. 그렇기에 인혁 형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산악부 신입생처럼, 그저 즐기기보다는 함께 고민하며 성장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내일 1,200m를 올라야 한다. 상당히 고된 하루가 될 것이다. 한 번에 오르막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르락내리락하며 고도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7월 22일 우회하다 지체된 모이리산장 가는 길

오늘 산행은 상당히 고된 편이다. 영식 형이 계획한 루트를 따라 갈 경우 거리 8.8km에 오르막 1,200m로 경사는 급하지만 빠르게 운행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오르막 구간에서 현지인들은 다른 길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들에게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로 갈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아마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우리가 가는 루트에서 하산하는 사람은 없었다.

현지 상황에 따라야 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루트 끝머리는 길이 무너진 듯했고, 우리는 산장 도착까지 약 3km를 앞두고 다시 내려와 현지 사람들이 가는 루트로 가야 했다. 상황은 좋지 못했다. 챙겨 온 2리터의 물은 새로운 길로 접어들며 거의 바닥을 보였다. 나는 물을 많이 마시는 편이 아니었기에 약 700ml가 남아 있었지만, 이도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 항상 어딜 가든 샘터가 있었기에 물을 아껴 마실 생각을 하지 못한 우리의 불찰이었다. 식사도 물을 쓰지 않은 채 빵과 행동식으로 간단히 해결했지만, 다들 목마름에 입술이 갈라지고 있었다.

경치가 아름답고 길이 좋아 이번 원정에서 가장 즐거운 길이었던 체르마트에서 몬테로사산장으로 가는 길.

부상자들의 예후도 좋지 않았다. 성민 형은 운행 한 시간 만에 힘들어했다. 결국 성민 형 배낭 속 짐을 다른 대원들이 나눠 들었다. 루트를 변경하고 산장 도착까지 7km 남은 상황에서는 이미 진통제에 취해 눈이 풀려 있었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져 다들 옷을 바꿔 입어가며 운행했다. 특히 배낭이 원체 무거운데 부상자의 짐도 들고 가다 보니, 항상 씩씩하게 걸었던 민규마저 힘들어 했다. 아마 민규의 배낭이 가장 무거웠을 것이다. 여러 악조건이 겹쳤다.

나는 원래 느리게 걷는 편이고, 가장 후미에서 내 페이스대로 걸었다. 그래서 걸을 만했다. 또한 내 역량으로는 성민 형의 짐을 들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도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내 역량 이상을 수행하다 내가 퍼져버리면 그것이 더 큰 문제로 작용할 것 같았다. 그래서 들어줄 수 없었다. 다른 대원들에게는 많이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홍주연 대원이 샤모니에서 알버트산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상황이 너무 힘드니 누군가는 '저 부상자가 없었다면 다른 대원들이 지금 퍼지기 직전인 나의 짐을 대신 들어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가졌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안위가 보장된 후에 타인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거친 산악 환경은 인간의 날것 그대로를 보이게 만들곤 한다. 집에 돌아가서 서로를 보듬는 시간이 그래서 중요하다.

이를 인혁 형은 아는 듯하다. 인혁 형은 차례차례 산장에 도착하는 대원들을 기다렸다가 한 명씩 안아주었다. 그렇게 원시적이었던 우리를 다시 문명인으로 돌려놓았다.

7월 25일 브라이트호른 정상에 오르다

브라이트호른 공격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안티스노 플레이트(크램폰 바닥에 눈이 붙는 것을 방지해 주는 장비)가 없는 재곤이는 자신의 크램폰에 랩과 테이프를 감으며 간이 안티스노를 만들었다. 나름 깔끔하게 개조된 크램폰의 성능이 기대된다.

성민 형의 컨디션도 돌아온 듯하다. 원정 초기에 생긴 부상이어서 앞으로의 일정 소화가 가능할지 걱정이 되었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믿는다. 이제는 자신과의 싸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불필요한 장비들을 모두 빼버렸다. 변수를 위해 준비했던 장비는 운행 자체의 속도를 늦췄고 이것이 오히려 변수가 되었다. 피부에 직접적으로 닿는 내의 및 양말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한 장으로 통일했다. 무게는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이번 원정에서 기록과 촬영을 담당한 박민규 대원.

산타클로스 수염을 한 한 중년 남성이 내가 하는 일을 슥 쳐다보고는 돌아섰다. 우리가 하는 새로운 도전은 마치 산타를 찾아 나서는 여정과 같다. 그곳에 산타가 없을지라도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걸어간다. 비록 안 될 줄 알면서도 그것을 행하는 모습은 인간이 성장하는 본연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체르마트에서 곤돌라를 두 번 갈아타고 브라이트호른 공격 지점까지 도달했다. 그곳에는 산악인 외에 스키나 보드를 즐기기 위해 아침 일찍 나온 관광객도 많다. 곤돌라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목표한 곳은 서로 달랐지만, 그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가짐은 하나였다.

브라이트호른은 크게 어려운 등반지는 아니기에 대원들 모두 정상에 도착했다. 오르는 길은 완만한 편이었지만, 간혹 발이 꺼지는 구간이 있어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안자일렌으로 묶인 우리는 서로를 믿으며 한 발씩 나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4,000m의 높이를 실감했다. 두려움과 환희가 뒤섞여 있는 오묘한, 우리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다.

나는 그저 내 장비를 차고, 내 옷을 들고, 대장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우리는 성장 중이라는 덕담만을 듣고 살아왔지만, 실전에서 느낀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다. 나의 도전은 상당히 부끄럽다. 하지만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그 끝은 창대할 것이라 믿는다. 내일의 나는 나의 반성 위에 올라 더 높은 고도에 서 있을 것이다.

브라이트호른 정상에 올라 50주년 기념 플래카드를 펼쳐 들고 기념 사진을 찍은 원정대.

7월 27일 두포르스피체봉 4,300m까지 오르고 후퇴

두포르스피체에 도전한다. 몬테로사산군 중 최고봉이다. 어떻게든 넘어가야 할 것이지만, 고소에 약한 대원들이 우려된다. 원정 오기 전, 생각이 없고 여유가 있을수록 고소에 강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나름 생각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보다.

일찍 일어난 우리는 강제로 뇌를 깨우기 시작한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내의를 입고, 오버트라우저를 입는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에도 숨이 찬다. 어서 호흡이 올라와야 할 텐데 말이다.

아직은 식당 문이 열리지 않아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다들 긴장한 표정인지, 비장한 표정인지 모를 얼굴을 하고 있다.

헤드랜턴을 밝혔던 시간에서 여명이 눈뜨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크레바스를 마주했다. 어둠은 크레바스의 깊이를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검은 그림자만을 좌우로 두고, 랜턴이 비추는 흰 얼음에만 집중했다. 그래서 모두 자신 있게 크레바스를 뛰어 넘는다. 물론 몇몇은 히든크레바스를 밟고 빠지기도 했다. 민규는 촬영을 위해 사진을 찍던 중 허리까지 빠졌다. 그것을 헤쳐 나오기 위해 다른 곳에 발을 디뎠지만, 그 또한 크레바스였다. 안자일렌으로 엮인 자일을 당겨 민규를 구출해 낸다. 다소 당황하고 두려움에 떨 법도 한데, 민규는 티내지 않고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발산한다.

몬테로사산군에서 만난 알프스 산양.

해발고도 3,000m 중후반대를 넘으면서 대부분의 대원들은 고소 증세를 강하게 호소했다. 대부분 두통에 집중력을 잃어가고 있었고, 중원이를 비롯한 몇몇은 속앓이를 한다. 선두에 섰던 영식 형은 때때로 헛구역질을 한다. 나도 내 앞선 사람들이 빠르다며 예민하게 짜증을 냈다.

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다. 인혁 형은 아파하고 짜증내는 우리들에게 불호령을 내린다. 나는 인혁 형이 얼마나 화를 내는지가 산행 난이도의 척도라고 생각한다. 오뜨루트 둘째날 일정에서도 수많은 크레바스를 넘는 과정에서 인혁 형의 언어는 우리에 대한 걱정에서 시작해 분노로 나아갔다. 오늘은 인혁 형의 언어는 그때보다 더 거칠다. 이는 오뜨루트보다 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음을 뜻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인혁 형의 말에 상처받지 않는다. 걱정하는 마음의 표현 방식일 뿐이기 때문이다.

산악 환경은 때때로 이런 불같은 무언가가 필요하다. 헤파이토스 대장간의 불길처럼 뜨거운 말은 식어 있던 우리를 깨웠다. 그런 담금질 속에서 우리는 더 단단해졌고, 좋은 빛을 내는 쇠가 되어가고 있다. 고소증세는 인혁 형의 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저 봉우리보다 무서운 사람이 우리를 이끌고 있었다.

날씨가 더워 얼음은 확실하게 단단하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산사태와 눈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다들 고소 때문에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고,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과 위험을 저울질했을 때, 위험성이 더 무거웠다. 그래서 우리는 4,300m 구간의 골짜기 맨 위를 거쳐 그대로 하산했다.

물론 하산 길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순 없었다. 길은 좁았으며, 녹고 있는 크레바스의 브리지를 믿어야 했다. 우리는 얼음이 더 녹기 전 빠르게 통과했고, 천운이 도와 그 누구도 빠지지 않았다.

운행이 끝나고 그니페티산장에 도착한 시간은 12시가 채 되기 전이었다. 장장 열한 시간이 넘는 운행을, 그것도 4,000m 고도에서 수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려온 대원들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브라이트호른에서의 고소증세는 오직 졸린 것뿐이었는데, 오늘은 강한 두통을 호소했고 내려오자마자 중원이에게 약을 두어 알 받아먹었다. 힘을 쓰게 되어 더 많은 산소를 쓴 듯하다.

나는 샤워 타이밍을 못 맞춰 빙하 녹은 물로 씻었다. 없던 고소증세도 생기는 것 같다. 모두들, 원하는 지점엔 오르지 못했지만 오늘을 기반삼아 더 높은 꿈을 꾸길 바란다.

락 블랑Lac blanc 트레킹에서 만난 환상적인 블랑 호수의 풍경.

8월 2일 브레방 등반…위험한 낙석 일으켜

원정대 전원이 브레방 등반에 나섰다. 두 개 조로 나누어 진행했다. 주산 형이 선등을 하는 팀에는 중원, 주연, 은정이가 있었고, 보라가 선등을 하는 팀에는 영식 형, 호준 형, 민규, 보미, 재곤이, 그리고 내가 있었다.

우리 조에서는 내가 두 번째로 등반했다. 선등자 확보를 보기도 하고, 고정로프를 설치하기도 하며 나름 바쁘게 노동했다. 세 번째 피치였을까, 스태밍 동작으로 꽤 무서운 동작을 유지한 채 등반하는 구간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수월하게 등반했다. 선등자였던 보라는 스태밍 구간을 재밍으로 통과하려다 꽤 애를 먹었다. 캠을 아래 구간을 통과하는 데 다 써버렸고, 퀵드로도 몇 개 모자라 사이즈가 맞지 않는 캠을 볼트에 걸고, 거기에 줄을 걸어가며 악을 썼다. 선등자가 그곳을 스태밍으로 통과하려면 꽤 많은 담력을 요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그 구간을 통과해 낸 보라가 대견하다. 또한 뒤이어 등반하며 볼트에 걸린 캠을 회수하면서 그것이 참으로 치열한 사투였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우리 조에선 내가 위험한 사고를 저질렀다. 사람 머리만 한 낙석을 떨어뜨린 것이다. 루트가 끝나고 걸어서 약간 트래버스하는 구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했는데, 그때 내가 짚었던 부분의 흙이 쓸려나가며 그 위에 있던 바위가 떨어졌던 것이다. 영식 형은 그것을 보자마자 낙석이 떨어지고 있음을 큰 소리로 외쳤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 나는 오늘 사람을 죽일 뻔했다.

8월 5일 기록을 마무리하며

돌아가는 길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트레킹 팀이 다녀온 아르장티에 후기를 듣기도 하고, 이제 원정이 저물어간다는 사실에 다들 아쉬워한다. 내일은 장비를 마저 패킹하고 집에 돌아갈 채비를 한다.

하루 하루는 길었지만 한 주 한 주는 짧았다. 다소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듯해 아쉬움이 남는다. 등반 환경이 여의치 않아 다같이 움직이는 일정이 후반부로 들어설수록 줄어들었다.

사람의 기억은 유한하고, 깎여 나가기에 온전히 남을 수 없다. 언젠가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가 오더라도, 우리 모두는 낱말과 활자가 되어 이곳에 남아 있을 것이다.

미니인터뷰 | 견연수 원정대장

1 원정을 대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은?

처음 해외 원정을 경험하는 재학생들로 구성된 원정대라서, 무엇보다 먼저 팀워크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또 고산 장기 트레킹에 대비해 체계적으로 체력 강화 훈련을 많이 했습니다.

2 다른 원정과 다른 점은?

보통 원정은 뛰어난 경험이 많은 소수 대원들로 구성하거나 학교산악부나 단위산악부 대원들로 구성됩니다.

하지만 이번 원정은 대학산악연맹 50주년을 기념해 각 대학의 젊은 대원들을 선발해 장차 대학산악연맹의 재목으로 성장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능력이나 개성을 잘 알지 못하는 상태라 원정 중에 이를 조율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또 무엇보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주의했습니다.

3 원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유럽 일대가 유례없는 폭염으로 빙하의 소실이 가속화되어 마르몰라다 빙하가 붕괴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해 원정 전부터 긴장했었습니다. 실제로 등반 둘째 날에는 유실되고 불량한 빙하의 상태로 한 대원이 발목이 접질리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때는 정말 과연 우리의 목표를 완수해 낼 수 있을지 두려운 걱정이 앞섰습니다.

4 원정대원들에게 한마디

여러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며 훌륭하게 원정을 마친 여러분과 함께하여 행복했고 각자 각 대학산악부는 물론 대학산악연맹에서 더 능력을 키워 선후배와 함께 더 큰 산을 목표로 안전하게 산악 활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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