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과학수사는 AI가 아닌 사람이 한다

이학준 기자 2022. 11.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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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과학과 만나다' 시리즈를 취재한 지 1년이 넘었다.

그간 과학수사와 관련된 민간 전문가를 비롯해 과학수사요원 등 경찰 관계자를 만났다.

다수 경찰관들은 과학수사 분야에서 일하는 게 달갑지 않다고 한다.

경찰국 신설과 경찰대 개혁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지만 과학수사요원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이 왜 경찰대에는 없는지, 경찰의 숙원사업인 '치안과학원' 설립은 왜 10년 동안 추진과 무산만 반복하는지에 대한 질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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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준 사회부 기동팀 기자.

‘경찰, 과학과 만나다’ 시리즈를 취재한 지 1년이 넘었다. 그간 과학수사와 관련된 민간 전문가를 비롯해 과학수사요원 등 경찰 관계자를 만났다. 이들 대다수는 새로운 과학수사 기법 개발만큼 중요한 게 전문인력 양성이라고 강조했다.

민간의 한 전문가는 “사람들이 인공지능(AI)이다 뭐다 하니까 버튼 하나만 누르면 기계가 자동으로 막 분석해서 결론을 딱 내놓는 줄 알지만 실상은 사람이 다 분석해야 한다”며 “경찰이 특정 기술이나 외부 업체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등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안 된다. 사람이 핵심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과학수사 현장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사람이었다. 드론전문요원은 실종자 수색에 동원되는 드론을 조종했고, 혈흔형태분석전문수사관은 살인 현장에 남겨진 핏자국 모양을 하나하나 분석해 범죄 상황을 재구성했다. 이들이 없었으면 1억원에 달하는 드론 ‘스캔비’도, 혈흔의 크기·각도를 분석하는 애플리케이션 ‘스펙토’도 무용지물이다. 다년 간의 실전경험과 훈련 등을 통해 쌓인 수사 ‘노하우’가 과학과 만나야 비로소 과학수사가 완성되는 것이다.

진정한 과학수사를 위해 경찰이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방법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경찰 내부에서 교육과 현장경험을 통해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과 외부 민간기업 등에서 훈련된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부족하다는 게 경찰 안팎의 시선이다. 경찰청 연구개발(R&D) 예산은 2015년 22억원에서 올해 592억원으로 훌쩍 뛰었지만, 전문인력 양성 인프라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다수 경찰관들은 과학수사 분야에서 일하는 게 달갑지 않다고 한다. 뚜렷한 성과를 내기가 어려워 진급에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아무리 과학수사가 중요하다고 해도 높으신 분들은 ‘그래도 경찰은 형사’라고 말한다”며 푸념했다.

외부 전문가 영입도 요원하다. 민간기업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연구원 등의 전문가를 영입하면서도 그에 걸맞은 혜택은 제시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민간의 한 전문가는 “경찰이 석·박사급을 채용하는데 합격하면 순경이 되라고 한다”며 “이러면 누가 과학수사 분야로 가냐. 연구실 생활하면서 연봉 1억~2억원 주는 기업으로 간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전하면 경찰 관계자들은 “우리도 안다”며 “누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토로한다.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인프라 구축은 경찰 혼자 힘으로 되지 않는다. 예산은 물론 법·제도 보완도 필요하다. 정부는 물론 국회의 도움이 절실하다.

최근 진행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에서는 본질에서 벗어난 질문만 쏟아졌다. 경찰국 신설과 경찰대 개혁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지만 과학수사요원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이 왜 경찰대에는 없는지, 경찰의 숙원사업인 ‘치안과학원’ 설립은 왜 10년 동안 추진과 무산만 반복하는지에 대한 질의는 없었다.

이른바 ‘제2의 n번방’ 사건에서 경찰 대응이 미흡했다고 비판하면서도 현재 사용하는 기술보다 진일보한 음란물 탐지 시스템 개발이 왜 무산됐는지에 대한 질타는 없었다. 범죄를 예측·분석하기 위해 빅데이터를 구축해 놓고도 제대로 활용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은 아무도 모르는 듯했다.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당정은 지난달 26일 “과학수사를 강화하도록 AI 등 기술 도입을 적극 검토할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인프라·인력 부족으로 단순 마약 소지·투약자에 대한 소변검사조차 2~4주가 걸리는 현실에서 AI가 얼마나 대단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AI만 강조하고 인력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과학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되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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