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무너진 농촌…면인구 3000명대면 OO 사라져

김소영 입력 2022. 11. 23. 05:11 수정 2022. 11. 23.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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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간 인구감소 면 612곳 기초생활시설 조사결과
1000명대 식당도 자취감춰
2020년 음식점 전무 144곳
삶의 질 개선정책은 ‘헛구호’
 

이미지투데이


충남 홍성군 장곡면 인구는 2800명 남짓이다. 전국 1169개 면(面)지역 평균 인구가 3000명가량이므로 사람이 크게 많거나 적은 곳은 아니다. 그런데 장곡면 면적은 서울 광진구의 2배에 달한다. 이곳에 미장원이 몇 곳이나 될까. 커피숍과 학원은.

미장원·커피숍·학원 모두 ‘0곳’이다. 광진구 골골샅샅 빼곡한 생활서비스 시설이 이곳엔 전무하다. 상점이 딱 하나 있는데, 소규모 농협하나로마트다. 주민들은 머리를 다듬는 일에도 차를 타고 30∼40분 달려 홍성읍이나 광천읍까지 나가야 한다.

농촌의 생활서비스 수준이 최근 10년 새 총체적으로 빠르게 무너진 것으로 확인됐다. 역대 정부가 강조한 ‘농촌 삶의 질 개선’이란 농정 핵심 구호가 무색해졌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람들이 모이면 생활서비스는 ‘사회·경제→보건·의료→문화·체육 분야’ 순으로 생겨난다. 반대로 사람들이 적어지면 역순으로 먼저 사라진다. 즉 헬스장·공연장이 없어지고, 병원·약국이 문을 닫으며, 세탁소·목욕탕이 폐업한다.

우리 농촌은 어디까지 왔을까. 병원·약국을 넘어 세탁소·목욕탕·주유소가 폐업하는 단계에 처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인허가 자료를 토대로 최근 10년간 인구가 감소한 전국 면지역 612곳의 기초생활시설 변화를 조사했다. 전화번호부를 통해 추정한 연구는 일부 있었지만 구체적인 개·폐업 실적을 보여주는 인허가 자료를 조사한 건 처음이다.

우선 병원이 없는 면은 2010년 547곳(89.4%)에서 2020년 538곳(87.9%)으로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한의원이 없는 곳도 471곳(77%)에서 448곳(73.2%)으로 비슷했다. 의원과 약국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각각 375곳(61.3%)→401곳(65.5%), 345곳(56.4%)→362곳(59.2%)으로 조금 증가했다.

김정섭 농경연 선임연구위원은 “농촌에 그나마 보건소가 있다보니 과거에나 지금에나 보건·의료 시설이 적은 것”이라면서도 “상처가 나서 꿰매는 등의 응급치료를 할 때는 보건소를 갈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문제는 소매·일자리 분야 시설들이다. 이·미용실이 전무한 곳은 2010년 57곳(9.3%)이었지만 2020년 80곳(13.1%)으로 늘었다. ‘노(No) 세탁소 면’은 84곳(13.7%)에서 137곳(22.4%)으로, ‘노 목욕탕 면’은 81곳(13.2%)에서 123곳(20.1%)으로 증가했다. 심지어 음식점이 한곳도 없는 면은 86곳(14.1%)에서 144곳(23.5%)으로 급증했다. 직업소개소가 하나도 없는 곳도 84곳(13.7%)에서 130곳(21.2%)으로 확대됐다.

이들 분야의 시설 감소가 우려되는 것은 이것들이 주민 일상생활과 밀접하기 때문이다. 목욕을 하고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는 등의 사소한 일상생활이 일부 농촌에선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겨우 해낼 수 있는 특별한 일이 됐음을 의미한다.

농경연은 인허가 자료를 토대로 주민 생활서비스 공급이 소멸되는 인구 규모도 추산했다. 사회·경제 생활서비스 존립을 가르는 ‘인구 임계점’을 뽑은 것이다.

5885명이면 헬스장이 문을 닫고 4276명이면 공연장이 사라졌다. 3000명대로 내려오면 의료시설이 간판을 내리기 시작했다.

병원(3205명)·치과의원(3057명)·한의원(2997명)·의원(2685명)·약국(2604명) 순으로 없어졌다.

1000명대로 주저앉으면 웬만한 시설을 찾아볼 수 없다. 식당(1882명)·제과점(1810명)·숙박업(1717명) 주인들이 차례로 자취를 감췄고 세탁소(1751명)·목욕탕(1743명)·이미용실(1531명)·주유소(1109명)를 구경하기 힘들다.

한이철 농경연 부연구위원은 “농촌소멸은 단순히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 외에도 기능이 없어지거나 인식에서 사라지는 것을 뜻하는데 이같은 지표들은 기능 부재를 통한 농촌소멸이 이미 시작됐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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