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후의 팔팔구구] 철은 자연스레 들지 않는다

2022. 11. 23.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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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정신의학을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대한정신치료> 라는 책을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 책에는 '50대가 넘는 환자에게는 정신과 치료가 부적절하다'고 쓰여 있었다.

정신과 치료란 무엇일까.

철이 들지 않은 것, 성숙하지 않은 것, 자신을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런 것도 일종의 정신장애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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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고도 철없는 성인들
자기중심적 사고에 갇힌 탓
적응력 약해 정신장애 유발
경험과 나눔 통해 인격성장
‘소통의 습관’ 기르는 훈련을
부족함 깊이 깨달아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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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정신의학을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대한정신치료>라는 책을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 책에는 ‘50대가 넘는 환자에게는 정신과 치료가 부적절하다’고 쓰여 있었다. 당시엔 평균 기대수명이 길지 않을 때라 환갑만 돼도 안방 노인네로 물러나 있던 시절이다.

50대 이상 환자를 치료하지 말라는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나이 오십이 넘으면 습관을 바꾸기 어렵다. 둘째, 바꾼다 하더라도 시간과 비용이 많이 허비된다. 셋째, 바뀐 습관을 가지고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헛수고라는 얘기다. 요즘 교과서에 이런 말이 실렸다간 여론의 뭇매를 맞을 테다.

정신과 치료란 무엇일까. 한 가설을 살펴보자. 정신장애는 생활습관이 잘못돼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지 못해서 생겼다는 주장이다. 습관이 잘못됐다면 습관을 바꾸면 될 일이다.

이론적으로는 아주 간단한데 다들 알다시피 작은 습관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때론 이롭다. 한데 상황에 따라서는 습관대로 행동하면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긴장이 생기고, 타인과 갈등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바로 정신장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습관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은 철이 들었다는 얘기로 바꿔볼 수 있다. 반대로 나쁜 습관을 계속 유지하는 사람은 그만큼 철이 덜 들었다는 뜻이라 믿는다.

철이 든 사람은 보통 주어진 상황을 이리저리 맞춰 적응하는 길을 찾지만, 철이 덜 든 사람은 상대적으로 상황에 적응하는 힘이 약해 정신장애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1918∼2018년) 목사가 ‘사람은 부족함을 깊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좋다. 그것이야말로 행복의 출발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공자(기원전 551∼479년)도 일찍이 이런 말씀을 남겼다. ‘가고 또 가는 가운데 깨달음이 있고, 행하고 행하는 가운데 얻음이 있다.’

성현의 말씀을 종합해보건대 철이 든다는 것은 또 다른 말로 인격이 성장한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철은 나이와도 상관관계가 있다. 우리가 어릴 때 철이 들면 얼마나 들 것인가. 심리학에서는 어린 시기를 ‘자기중심적인 시기’라 정의한다. 타인은 안중에도 없고 자기밖에 모른다는 뜻이다. 어린아이도 차차 나이가 들면서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타인과 소통하려 자신도 양보하고, 상대방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는 타협의 기술을 배워나간다. 이른바 ‘소통의 습관’이 젖어드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 만큼 들었으나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자기주장만을 일삼는 소인배들이 꽤 많다. 자신의 나이를 셈해보자. 나이에 맞게 성숙해가고 있는가 되돌아봐야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사람은 미숙한 인격을 가졌다고밖에는 볼 수 없다.

나이가 들면서 철이 자연스레 든다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그런 기대는 접어두는 것이 낫다. 세월에 따라 많은 경험을 하고, 타인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습관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성숙한 인간으로 바뀐다. 성인이 돼서도 타인과 접촉하지 않고, 새로운 경험을 회피하려 한다면 철이 들 시기를 놓칠지도 모른다.

상대방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다짜고짜 반말을 하거나, 함부로 대하지 마시라. 그가 더 많이 경험했고, 더 많이 세상을 공부했고, 더 많이 성숙한 사람일 수 있다.

정신장애란 것이 다른 것이 아니다. 철이 들지 않은 것, 성숙하지 않은 것, 자신을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런 것도 일종의 정신장애가 아닐는지.

이근후 (이화여대 의과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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