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마당 있는 집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 소장 2022. 11. 23.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러스트=한상엽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 어려움에 서울 한복판 아파트에서 꿈만 꾸었다. 전원주택을 지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주변엔 집 짓다 고생한 사람 천지였다. 은퇴하고 귀촌한 형님네마저 “집 짓다 십 년 더 늙는다”고 말렸다. 남편은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란 책을 내게 건네주었다.

그럼에도 머물고 싶고 살고 싶은 집들이 눈에 들어와 아른거렸다. 정원을 품은 장소와 이름난 고택을 일삼아 찾아다녔다. 창덕궁 후원인 비원을 비롯한 왕의 정원, 담양 소쇄원, 논산 명재 고택, 남원 몽심재 등 선조의 품격을 지닌 곳에 수없이 찾아가 경의를 표했다.

우리나라 전통 정원은 서양 정원이나 인공적인 중국·일본 정원과 사뭇 다른 결을 지녔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도 마음을 담아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돌 하나도 허투루 놓지 않았다. 그 자연과 교감하는 조경 철학과 방식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도저히 ‘마당 있는 집’에 대한 꿈을 놓을 수가 없었다.

땅에 발을 딛고 나무와 꽃을 가꾸고 살면 온갖 시름과 병이 나을 것 같았다. 가족과 반려견에게도 필요하다 믿었다. 그래서 집짓기는 포기하고 ‘집 찾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그러나 형편에 맞고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발품 팔던 끝에 우리 집을 만났다.

산을 바라보는 것만 해도 숨통이 트였고, 소박하고 정감 어린 동네가 좋았다. 이웃에서 건네준 모종을 심으며, 얼떨결에 손바닥만 한 텃밭을 만들었다. 마음이 먼저 농부가 되어 만듦새 좋은 호미부터 마련하고 정성을 들였다. 마당과 씨름하며 지내다 보니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 듯한 건 기분뿐일까.

끊임없이 생겨나는 풀과 피고 지는 꽃들의 시간에 순응하며 계절을 흘려보내고 맞는다. 늙은 호박을 거두고, 찬 바람에 호미를 씻으며 겨울나기 준비를 끝냈다. 살얼음이 잡히고 땅이 얼기 시작한다는 소설(小雪)이 지났으니, 곧 눈이 내리겠지. 하지만, 눈 오는 날의 낭만보다는 골목길 눈 치우는 걱정을 먼저 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