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89] 저주하는 성직자들
- 내세가 어떤 것인지 이제까지 깊이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만, 만일 그런 곳이 있다면 진실로 그곳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길 꼭 부탁드리고 싶군요. 신부님, 전에 말씀하셨죠.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고, 어느 종교에도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고요. 종교의 좋고 그름은 그 귀의자를 보면 잘 알 수 있어요. 신부님, 당신은 모범적으로 저를 정복하셨습니다. 당신과 나는 이제 형제입니다. 당신의 주님은 저의 주님이기도 합니다. - A. J. 크로닌 ‘천국의 열쇠’ 중에서
성직자들이 대통령 부부의 죽음을 기도했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정화수 앞에서 자식의 무사를 비는 어머니 같은 마음이었을까? 타인의 소원 성취를 위해 굿판을 벌이는 무속인 같은 책임감이었을까? 가톨릭 신부는 ‘비나이다 비나이다’란 문구와 함께 비행기가 추락하는 풍자 만화를 인용했고, 성공회 신부는 ‘추락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며 노골적으로 소망을 표현했다.
누구든 정치적 의견을 가질 수 있고 자기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미워도 그 사람이 죽기를 바라는 사제라니. 더구나 그 소망이 너무 간절한 탓에 조종사와 승무원, 기자단 등 많은 사람들이 전용기에 함께 타고 있다는 사실은 깜빡한 모양이다. 파문이 커지자 천주교는 정직 처분을 내렸고 성공회는 사제직을 박탈했다.
1944년에 그레고리 펙이 주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져 더 많이 사랑받은 소설은 신이 어떤 사람에게 ‘천국의 열쇠’를 줄까, 질문한다. 청렴하고 강직한 치셤 신부는 외지인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중국의 오지에서 선교에 어려움을 겪는다. 교단의 지적을 받을 정도로 실적이 형편없지만 한결같은 그의 겸양과 헌신은 마침내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진실한 믿음의 길로 이끈다.
원수조차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전하는 대신 지독한 미움에 빠져 저주하고 분노에 불을 지르는 성직자, 아무리 극악한 죄인이라 해도 그가 하루빨리 지옥에 빠져 고통 받길 저주하는 사제에게 신은 정의롭다며 천국의 문을 열어줄까? 만약 치셤 신부가 갈 수 없는 천국이라면, 저주하는 신부들만 가는 천국이라면 그곳에 못 간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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