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제창 거부한 이란 대표팀... “세계서 가장 용감한 팀”
“전 세계에 11명의 침묵이 들렸다.”
21일(현지 시각) 알자지라방송은 이란 선수들의 국가 제창 거부를 이렇게 평가했다. 이날 카타르 월드컵 B조 1차전 잉글랜드와 경기 시작을 앞두고, 이란 국가가 나오는 1분여간 경기장에는 정적이 흘렀다. 카메라가 이란 선수 얼굴을 한 명씩 비췄지만 모두 입을 굳게 다물고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스카프로 머리를 가린 관중석 여성이 눈시울을 붉힌 채 박수를 치는 장면이 화면에 잡혔다. 이를 생중계 중이던 이란 국영 방송은 황급히 경기장 전경을 내보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선수들의 침묵은 이란의 반정부 시위에 대한 지지 표시로 풀이된다. 지난 9월 히잡을 올바르게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2살 마흐사 아미니가 체포돼 숨진 사건을 계기로 이란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강경 진압에 나서면서 지금까지 어린이 47명을 포함해 최소 378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관중석에서도 “여성, 삶, 자유”라는 반정부 시위 구호가 터져 나왔다. 이란 선수들은 두 골을 넣은 후에도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다.
이란 선수들은 국내 정치로 부담이 큰 상황이다. 이날 외신들은 “가장 용기 있는 팀”으로 이란 국가대표팀을 추켜세웠지만, 이란 내에서는 “더 명확히 지지 의사를 밝혀야 한다”는 비판 여론도 나온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특히 앞서 선수들이 출국 전 이란 대통령을 만나 공손히 인사하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대표팀 응원은 정부 지지와 마찬가지라는 부정 여론이 거셌다. 이란팀 주장 에산 하즈사피가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유족과 아픔을 같이한다”고 언급한 것도 이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경기 후 카를루스 케이로스 이란 대표팀 감독은 “선수들이 무대 뒤에서 어떤 협박을 받는지 모를 것”이라며 “다른 나라처럼 이들은 국가와 국민을 대표해 경기하는 것뿐이다. 이들이 게임을 하게 해줘라”라고 분노했다.
FIFA 랭킹 20위로 아시아 국가 중 순위가 가장 높은 이란은 이날 잉글랜드에 6골을 내주며 참패를 당했다. 2018 러시아·2014 브라질 월드컵 6경기 동안 총 6골을 내줬는데, 이걸 이번 대회 한 경기 만에 내줬다. 두 대회 1차전 무실점 기록도 깨졌다. 상대 공격을 곤경에 빠뜨리는 ‘늪 축구’에 능한 이란이지만, 전반 초반 주전 골키퍼 알리레자 베이란반드가 동료 수비수와 충돌 후 뒤늦게 교체되면서 경기 흐름이 급격하게 기울었다. 베이란반드가 충돌 후 코피를 흘리며 뇌진탕 증세를 보였으나 제때 교체해주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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