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종가 잉글랜드의 19살 막내, 새 역사를 쓰다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은 선수 대부분이 국내파다. 자국 프로축구가 세계 최고이기 때문이다. 카타르 월드컵 최종 엔트리 26명 중 25명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뛴다.
잉글랜드의 유일한 해외파가 독일에서 뛰는 주드 벨링엄(19)이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그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중앙 미드필더다. 2022-2023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15경기에 출장해 3골 2도움을 올렸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5경기에 나서 4골(1도움)을 터뜨렸다.
카타르에서 생애 처음 월드컵 무대를 밟은 벨링엄은 첫 경기부터 골 맛을 보며 스타로 떠올랐다. 21일 할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별리그 B조 1차전 전반에 잉글랜드는 극단적 수비 전술을 펼친 이란을 상대로 슈팅이 골대를 맞거나 옆 그물을 때리는 불운을 겪었다. 그때 벨링엄이 해결사로 나섰다. 전반 35분 루크 쇼(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크로스를 받아 헤더를 날려 골키퍼 키를 넘기는 절묘한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이번 대회 잉글랜드의 첫 득점이자 벨링엄의 A매치 첫 골이었다.
벨링엄은 2-0으로 앞선 전반 추가시간에는 쐐기골의 출발점 역할을 했다. 그가 해리 케인(토트넘)에게 패스를 찔러주자 케인이 래힘 스털링(첼시)의 쐐기골을 어시스트해 3-0을 만들며 이란의 전의를 꺾었다. 잉글랜드는 6대2 대승을 거두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벨링엄은 자신의 골에 대해 “처음엔 빗나갔다고 생각했다. 공이 골문으로 빨려 들어가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다”며 “쇼가 내게 멋진 크로스를 올렸고, 난 그저 공을 휙 쳤을 뿐”이라고 했다.
2003년생인 벨링엄은 2000년대에 태어난 선수 중 최초의 월드컵 득점자로 이름을 남겼다. 1998 프랑스 월드컵 마이클 오언(당시 만 18세 190일)에 이어 잉글랜드의 월드컵 최연소 득점 기록 2위(만 19세 145일)에 올랐다. 벨링엄에 대해 잉글랜드의 전설적인 공격수 앨런 시어러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활약”이라며 “태클과 활동량이 훌륭한데 골까지 넣었다. 그와 잉글랜드에 특별한 날이었다”고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레전드 리오 퍼디낸드는 “벨링엄은 때때로 (팀을) 지휘하기도 했다”며 “다른 위대한 미드필더들도 저 나이에 저렇게 하진 못했다. 앞으로 그가 어떻게 성장할지 보는 게 매우 흥미로울 것”이라고 했다.
벨링엄은 ‘축구 종가’ 잉글랜드 대표팀을 이끌어 갈 차세대 재목으로 꼽힌다. 버밍엄 시티 유스팀에서 촉망받는 유망주로 성장한 그는 16세였던 2019년 7월 1군에 올라 2019-2020시즌 잉글랜드 2부 리그 EFL 챔피언십 41경기에서 4골 2도움을 올렸다. 2020년 7월 도르트문트로 이적한 그는 독일축구협회(DFB)컵 우승에 기여하고 리그에서도 주전으로 자리 잡아 독일프로축구선수협회(VDV)가 뽑은 2020-2021시즌 신인상을 받았다. 지난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32경기 3골 8도움을 올려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등 유럽 빅클럽의 영입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벨링엄은 프로에서 단 한 시즌만 뛰고 영구결번의 주인공이 된 특이한 이력도 갖고 있다. 2020년 그의 등번호 22번이 버밍엄 시티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것이다. 17세 소년에게 영구결번을 안긴 이유에 대해 구단은 “짧은 시간이지만 팀의 상징이 됐다”고 밝혔지만, 실제론 돈 문제가 끼어 있었다. 벨링엄은 도르트문트로 이적하며 이적료 2500만파운드(약 402억원)를 버밍엄 시티에 안겨 구단 재정 문제를 단숨에 해결했다. 이적 시장 전문 매체 트랜스퍼마크트에 따르면, 벨링엄의 이적료는 이달 초 기준 1억유로(약 1393억원)까지 치솟았다.
벨링엄의 아버지 마크 벨링엄은 본업이 경찰이지만 세미프로 축구선수로도 오랫동안 활동했다. 1994년 9부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2016년에는 11부 리그에서 개인 통산 700번째 골을 넣은 골잡이라고 한다. 벨링엄의 두 살 터울 동생 조브 벨링엄(17)도 지난 9월 버밍엄 시티와 프로 계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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