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연료’ 등유값 급등…“기름보일러 틀기 겁나”
‘유류세 인하’서 제외, 예산도 줄어…“에너지바우처 확대를”
충남 아산의 김모씨(74)는 날씨가 추워졌음에도 기름보일러를 쉽게 틀지 못한다. 최근 등유 가격이 너무 가파르게 치솟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22만원이던 등유 1드럼(200ℓ) 가격은 올해 32만원을 웃돌고 있다. 한겨울이면 한 달 동안 난방으로 등유 2드럼을 쓰는 것을 고려하면 난방비가 지난해보다 20만원이나 느는 것이다.
22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 사이트 ‘오피넷’ 가격 동향을 보면 등유 가격은 전날 기준 ℓ당 1601.57원을 기록했다. 같은 날 휘발유(1648.35원)와의 가격 차이는 46.78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11월 등유는 ℓ당 1096.54원으로 휘발유(1695.39원)와 600원 가까이 벌어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지난 3월 한때 휘발유가 ℓ당 2000원을 돌파하면서 가격 차이는 620원까지 확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유럽에 경유 공급을 사실상 중단하면서 경유 가격이 오르자 정유사들이 경유 생산을 늘리면서 등유 수급 여건은 악화됐고 국제 가격도 뛰고 있다. 이는 경유를 등유와 같은 설비에서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유류세 인하 정책도 등유의 상대적 가격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오를 때마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 폭 확대 등의 대책을 통해 가격 안정에 나섰다. 반면 등유는 이미 낮은 세율이 부과된다는 점을 이유로 대책에서 제외했다. 기획재정부는 “등유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의 기본세율은 ℓ당 90원이지만 서민층이 주로 사용하는 연료임을 감안해 2014년부터 최대 인하 폭인 30%를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 9월 국회에서 유류세를 최대 50%까지 깎아줄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휘발유와의 가격 차이는 더 벌어질 수 있다. 중산층이 주로 쓰는 휘발유, 경유는 세금 인하 혜택을 더 받지만 정작 취약층의 연료인 등유는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 셈이다.
등유 가격이 오르면서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농어촌이나 낙후된 도심 지역에 거주하는 저소득층은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최근 전기요금마저 가파르게 오르면서 전기장판이나 전기히터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등유 가격은 치솟고 있지만 지원 예산은 줄고 있는 추세다. 저소득층에 냉난방비용을 지원하는 에너지바우처 사업에서 등유 바우처의 내년 예산 규모는 13억9500만원으로 올해(16억7400만원)보다 오히려 2억7900만원 줄었다.
등유 바우처는 기름보일러를 사용하는 기초생활수급가구(생계급여나 의료급여 수급권자) 중 한부모 또는 소년소녀 가구에 등유 구입비용으로 최대 31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등유 사용 가구가 줄어들면서 사업 규모를 점점 축소하는 기조”라며 “에너지바우처 사업으로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가 내년 에너지바우처 예산 규모를 20% 넘게 삭감해 등유 가구의 지원 혜택도 줄어들게 됐다. 일단 국회 심사 단계에서 1000억원 넘게 예산이 증액됐지만, 이 가운데는 전기·연탄을 쓰는 가구도 포함되기 때문에 등유 소비 가구의 체감효과는 크지 않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등유를 사용하는 취약계층을 위해 에너지바우처 확대로 직접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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