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初代) 보컬을 초대(招待) 보컬들로 대체한 ABTB의 세 번째 도전[김성대의 음악노트]

2022. 11. 22. 19:5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라퓨타처럼 떠있는 모래성. 그 위에선 하릴없이 노 젓는 청년과 가슴을 부여잡은 채 무릎 꿇은 청년이 대비되고, 드잡이 하는 여성 둘과 멱살 잡은 남성 둘이 겹친다. 다시 2시 방향으론 취한 듯 알몸으로 드러누운 남녀가 보이며, 그림 꼭대기엔 상념에 잠긴 중년 남자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 지친 몸의 노인은 노 젓는 청년의 반대편에서 이제 막 지팡이를 위태롭게 짚으려는 듯하고, 여성의 옆모습이 담긴 원반을 두 팔로 든 반나체 남성은 쓰러진 건지 그냥 누운 건지 모를 여성 곁에 반듯하게 서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추락하는 사람들.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회 현상과 일상을 구성하는 사회 군상을 날카롭고 단호하게 관찰해온 ABTB는 세 번째 작품에서도 역시나 짓무르고 뒤틀린 우리네 현실을 작품의 큰 그림으로 택한 듯 보인다. 'Empire'라는 곡에서 구체화되는 이 우울한 아트워크는 시사(時事)를 음악으로 시사(示唆)해온 뮤지션 김대인의 솜씨로, 처음엔 왠지 그 안에 담긴 음악마저 팎의 연장선일 것만 같았다.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ABTB는 자욱한 포스트록보단 군살 뺀 뉴메탈 그루브와 파괴적인 얼터너티브 록 사운드 쪽에 승부를 건 모양새로 2집 이후 2년 여만에 돌아왔다.

그런 음악적 특징은 첫 곡 'Bully'에서 가장 분명히 또 파격적으로 선언된다. 록에선 잘 쓰지 않는 5/4박 리듬으로 주춤거리며 등장하는 이 곡은 마치 영화의 몽타주처럼 다양한 스타일로 돌변하며 기존과는 다른 음악을 하겠다는 밴드의 의지를 대변한다. 가령 톰 모렐로가 잘하던 유니크한 기타 리프와 프레드 더스트 풍의 랩이 여유롭게 공존하다 본 조비의 'Hey God', 메탈리카의 'St. Anger'에 서식하던 싱커페이션을 공유하는 기타 리프가 신경질적인 턴테이블 스크래치와 만나 곡을 한 차례 뒤엎고 나면, 곧바로 레가토 기타 솔로가 장면을 바꿔 블래스트 비트와 헤비메탈 리프를 브릿지로 안내하는 식이다. 뿌리내리는 대신 방랑하는 쪽을 택한 리프와 템포의 저런 일촉즉발 구성은 지금 이 밴드가 처한 다소 불안정한 상황을 에둘러 보여주는 것도 같아 흥미로운데, 그 상황이란 바로 지난 2집까지 함께 한 프런트맨 박근홍의 부재다.

맞다. 세 번째 ABTB 앨범에는 박근홍이 없다. 박근홍이 누군가. 그는 70년대와 90년대 록의 정신으로 무장한 야성의 보컬리스트였고, 거칠게 옥죄는 보이스 톤으로 해방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진성의 싱어였다. 애초 록 팬들은 그가 참여한 ABTB에 기대를 걸었던 만큼 그가 있는 ABTB를 즐겁게 들었었다. 사람들은 'ESC'의 정치 혐오를 비롯한 냉소, 절망, 분노, 풍자가 뒤섞인 그의 노래 연기가 ABTB 음악을 결정짓는 DNA라는 걸 본능으로 알았다. 크리스 코넬과 에디 베더와 레인 스텔리가 모두 장전돼 있던 그런 박근홍의 극적 절규는 밴드 ABTB를 꿈틀거리게 하는 피요 심장이었다. 그래서 그는 분명 ABTB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밴드는 그가 없어도 계속 가겠다는 뜻을 3집으로 내비쳤다. 'Jump' 같은 곡이 상징하듯 지금 ABTB에선 박근홍이 꿈꾸던 '시대정신' 대신 96년생인 두 기타리스트가 주도한 음악적 '국면전환'이 펼쳐진 셈이다. 그것도 급격히, 깊숙이, 그리고 완전히. 기존 팬들에게 모쪼록 박근홍이 없는 ABTB도 너그럽게 받아들여달란 뜻이었을까. 밴드의 풀네임(Attraction Between Two Bodies)을 얹어 내지르는 'Bully'의 합창 코러스는 돌이켜 들을수록 의미심장하다. 물론 두 곡의 크레디트에 아직 박근홍의 이름이 있는 걸 보면 이들의 헤어짐은 다툼이나 갈등에 따른 것이기보단 서로의 길을 인정한 끝에 평화적으로 합의된 결별로 보인다. 여하튼 지금 ABTB엔 박근홍이 없다.

그럼에도 밴드엔 보컬이 있어야 했기에 남은 멤버들은 고민 끝에 게스트 싱어들을 섭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즉 앨범에서 가장 튀는 'Bully'만 정식 멤버인 곽상규가 부르고 나머지는 피처링으로 처리한 것이다. 그 게스트 명단엔 에이치얼랏의 조규현을 비롯해 시나위 출신의 김바다와 로맨틱펀치의 배인혁, 싱어송라이터 이윤찬이 포함됐다. 부른 곡 수는 조규현이 3곡으로 가장 많았고 김바다와 이윤찬이 똑같이 두 곡 씩을, 배인혁은 'Thriller' 한 곡에만 자신의 목소리를 쏟아부었다. 이처럼 팀 이름이 뜻하는 '두 물체 간의 이끌림'은 자연스레 게스트 보컬들과 ABTB의 만남, 두 존재 간 시너지의 다른 표현이 된다.

결과는 어떨까. 듣는 사람의 저마다 의견이 있겠지만 이 앨범을 스무 번 정도 반복해 들은 나에겐 '반은 좋고 반은 아쉽다' 정도에서 결론이 났다. 여기서 '좋다'는 느낌은 곡 단위로 들었을 때의 완성도에서 받은 것이다. 초대된 싱어들의 실력이야 이미 검증된 것이니 딱히 흠잡을 데가 없을 일이고 밴드의 연주력과 사운드 디자인도 1, 2집 때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할 것 없는 수준이다. 특히 'Empire'와 'End'에서 기타 솔로를 포함한 트윈 기타 플레이는 확실히 인상적이며, 스틱으로 음악을 지휘할 줄 아는 강대희의 리듬 노트는 언제나 느낀 거지만 날쌔고 영리하다. 문제는 몇 명의 보컬이 참여한 탓에 단일 작품으로서 통일성, 앨범에의 몰입도를 다소 해치고 있다는 점인데, 조규현과 이윤찬이 노래를 부르는 순간 밴드 ABTB는 그림자가 되는 식으로 과거에 비해 보컬과 밴드 사이 맞물리는 힘, 같은 장력으로 서로를 지탱하는 긴장감이 확실히 위축된 느낌이다. 가령 'Thriller'의 기타 리프가 가진 에너지, 프레이즈가 직조하는 스릴조차 배인혁이 참여해 얻어낸 성과이기보다 그 자체 배인혁의 노래에 수렴되어 버려 난감한 것이다. 또한 박근홍이 송라이팅에 참여한 'Bluffing'과 'Santiago'는 들을수록 '박근홍이 불렀다면'을 되뇌게 하고, 하물며 'Take Me To'의 김바다는 그런 박근홍의 부재를 훌륭히 메워주고 있으면서 되레 그 부재를 부각한다는 면에서 역설적이다. 나에게 이 앨범의 '반이 아쉬운'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렇다고 오해는 말자. 나는 지금 ABTB 연주자들 실력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이 잘한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다. 다만, 록 밴드에서 보컬리스트가 가지는 상징성(또는 중요성)에 관해 나는 말하고 싶을 뿐이다. 대략 이런 얘기다. 흔히 사람들이 밴드 음악을 들을 때 목소리는 누구 것인지 금세 파악해도 연주의 주인을 가늠하는 데는 애를 먹는다. 아니, 거의 알아맞히지 못한다는 게 맞을 것이다. 예컨대 사전 정보 없이 'Jump'와 'Take Me To'를 들었을 때 당신은 그 곡을 ABTB의 곡이라 자신할 수 있었을까. ABTB 3집 수록곡이라는 사실을 모르고도 두 트랙을 통해 장혁조의 핑거링을 알아채고 강대희의 필인을 잡아낼 수 있었겠느냐는 얘기다. 게다가 황린과 곽상규의 다이내믹한 기타 연주는 또 어떻게 구분할 수 있었겠는가. 이 역시 톤과 연주 패턴, 음향 상의 배치에 관한 전문 지식이 없는 한 어려울 일이다.

하지만 보컬은 다르다. 보통 일반인들은 그 팀의 연주는 잘 몰라도 노래하는 사람만큼은 대번에 구분해낼 줄 안다. 따라서 몰랐을 사람들은 'Jump'를 에이치얼랏의 곡으로, 'Take Me To'는 바다(Baada)의 곡으로 얼마든지 착각할 수 있다. 반면 1, 2집에선 그럴 일이 없었다. 그땐 박근홍이라는 밴드의 간판 보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안정된 라인업은 감상의 안정을 도왔다. 아마도 'Gray Boy'를 박근홍이 불렀다면 그 안정감을 우린 좀 더 누렸으리라. 해서 나는 ABTB가 록계의 토이, 공일오비가 되려는 게 아니라면 하루빨리 고정 보컬리스트를 구해야 한다고 보는 쪽이다. 자동차 두 대의 충돌로 가시화됐던 1집의 응집력과 콘셉트 앨범에 도전한 2집의 꽉 찬 서사를 되찾기 위해선 단단한 라인업이 우선 갖춰져야 한다. 사실 'Bully'는 굉장히 매력적인 싱글이지만 ABTB 3집을 굉장히 좋은 앨범이라고는 솔직히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싱글은 싱글로서, 앨범은 앨범으로서 갖추어야 할 미덕이 따로 있다 믿기 때문이다. 그 핵심을 나는 박근홍으로 봤던 것이고 지금 이 팀엔 그가 없으므로 3집은 곡 단위론 훌륭해도 전체 임팩트에선 뭔가 모를 허전함이 계속 남는 것이다.

곽상규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ABTB 앨범에 참여해 자신의 이름이 올라간 상을 받아보고 싶다 말했다. 같은 인터뷰에서 박근홍은 곽상규가 오면서 ABTB가 비로소 밴드로서 완전체가 됐다고 했다. 간발의 차이로 2집 작업을 함께 못한 곽상규가 마침내 함께 하게 될 다음 앨범(3집)에서 어떤 것이 나올지 기대가 된다던 박근홍이었다. 그런 그는 ABTB를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의미를 둔 밴드"라고까지 했지만 정작 인생은 박근홍을 오버드라이브필로소피와 게이트플라워즈로 이끌었다. 정말 인생이란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다.

*이 글은 본사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필진

[사진제공=뮤슈 레코드]-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