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그 반동, 생존과 생존의 부딪힘

한겨레 2022. 11. 2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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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의 형제당 대표가 지난 9월26일 로마의 선거운동본부에서 ‘고맙습니다 이탈리아’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세상읽기] 장영욱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일주일에 한번 서울에 올라간다. 이번 학기부터 맡은 국제대학원 강의 때문이다. 과목명은 ‘유럽과 아시아에서의 지역통합’, 두 지역이 세계경제에 편입돼온 역사를 훑는 개론 수업이다. 수강생들 국적이 다양하다. 스무명 중 절반은 유럽, 절반은 아시아 출신이고 그중 한국인은 단 한명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하는 외국인들과의 수업은 늘 특별하지만, 그날은 유독 더 기억에 남는다. 이탈리아 총선에서 반이민, 반유럽통합 성향의 극우정당 ‘이탈리아 형제들’이 승리한 바로 그날, 공교롭게도 나는 세계화와 그 반동(backlash)에 대한 수업을 하게 됐다.

‘첫번째 세계화의 물결’로 불리는 19세기 후반 자유무역 확대와 대규모 국제이민은 곧 경쟁적 농업관세 도입과 강력한 이민제한 정책이라는 반동을 마주한다. 제1차 세계대전과 그 뒤 이어진 대공황은 이미 약화하던 세계화 기조에 결정타를 날렸다. 1910년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5%에 이르던 수출량은 1930년대 5%까지 감소했고, 연간 260만명이 넘던 미주대륙 이민자는 1차 대전 직후 약 40만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무역과 이민이 예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까진 반세기 이상 시간이 필요했다.

20세기 후반 국제질서의 안정 아래 번성했던 세계화가 최근 다시 후퇴하고 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 코로나19로 가속화된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자국우선주의 강화,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마치 한세기 전 탈세계화가 그대로 재현되는 듯하다. 지난 10월 이탈리아에선 무솔리니 집권 뒤 100년 만에 극우정치인이 총리가 됐고, 그로부터 한달 전 스웨덴에선 난민 수용 반대, 외국인 범죄자 추방 등 반이민 정책을 내세운 스웨덴민주당이 제2당이 되며 우파연합의 정권교체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프랑스의 극우 국민연합은 지난 6월 총선에서 직전 선거 때보다 10배 넘는 89석을 확보해 창당 이래 최초로 교섭단체를 구성했다.

수업에서 여기까지 설명하고 토론시간을 가졌다. 여러 의견 중 싱가포르 학생의 말이 인상 깊었다. 자기 나라 같은 소규모 개방국가는 무역과 이민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탈세계화가 자국민의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한다는 얘기였다. 맞다. 자유무역과 이민이 위축되면 누군가의 소득이 줄어들고 일터가 사라진다. 코로나19로 국경이 닫혔을 때 실제로 관광업과 외국 인력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손해가 막심했다. 막힘없는 교류가 평균적인 생산과 소득을 높이고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세계화의 퇴조는 인류가 누리던 유익의 감소를 의미한다.

그러나 세계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다 편협하고 외골수며 인정머리가 없고 경제논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은 아닐 테다. 자유무역이 증가하고 국가 간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면 한편으론 후생이 증진되지만 또 한편으론 피해를 보는 계층이 생긴다. 국제분업으로 인한 전문화는 국내 특정산업을 사양화시킨다. 이민자 유입이 집중되는 업종과 고용 형태―주로 저숙련, 저학력의 비정규직 노동―에서 내국인 임금이 하락하고 실업이 발생한다. 세계화의 과실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는 동안 피해를 보는 계층의 반발은 점점 심해졌다. 19세기 말 임금 하락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이 이민제한 정책에 적극 찬성하였듯, 지금도 경쟁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이 탈세계화에 지지를 보낸다. 즉, 세계화를 막는 것이 이들에게도 ‘생존의 문제’라는 말이다.

세계화와 그 반동은 생존과 생존이 부딪히는 문제다. 연대니 협력이니 포용이니 하는 구호는 생존의 문제 앞에 힘을 잃는다. 자유무역과 이민으로 인한 혜택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한, 세계화는 자멸의 씨앗을 심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제 교류의 실익을 지속해서 누리기 위해선 반드시 불평등 문제가 먼저 해소돼야 한다.

수업 말미에 이탈리아 출신 한 학생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민자에 대한 적대감이 가져온 자국의 선거 결과에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세계화가 생존의 문제라는 동료 학생의 발언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스스로 타향살이 중인 학생들은 자유로운 물적·인적 교류가 가져올 유익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말로 서로를 위로했다. 적어도 그 공간 안에서 ‘유럽과 아시아의 통합’은 이미 이뤄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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